[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51] 영화 '김정일리아'의 엔씨 하이킨(N.C. Heikin) 씨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11.09
nancy_heikin-305.jpg 지난해 5월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자유주간 행사 때 시사회에 앞서 영화 '김정일리아'를 소개하는 낸시 하이킨(N.C. Heikin)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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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와 개인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N.C. 하이킨 씨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엔씨 하이킨 씨는 극작가, 영화제작자,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뉴욕 실험연극의 중심지로 불리는 라마마 극장의 수많은 작품에 배우와 가수로 출연했고, '마나나'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어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향력 있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미국 문화예술계에서 이렇게 '잘 나가는' 하이킨 씨가 기록영화 감독으로 인생이 바뀐 것은 2002년 우연히 남편과 함께 일본에 갔다가 함경도 요덕 수용소 출신 탈북자인 강철환 씨가 전하는 북한 실상에 관한 증언을 들으면서였습니다.

강철환: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조총련의 핵심간부로 계시다가 63년에 북송됐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양시에서 백화점에서 활동하셨고, 저희 할머니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시다가, 할아버지가 김일성/김정일의 세습을 술자리에서 비판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세습이라는 것, 이상하다고요. 그 후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갔습니다. 저도 할아버지 때문에 함경남도 요덕군에 있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인간 이하의 생활을 겪었습니다...

하루도 쉴 날이 없는 강제 노동, 불결한 환경으로 인한 피부병, 폐결핵, 위장병. 개구리, 뱀, 쥐, 등 닥치는 대로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터무니없이 적은 식사배급량. 영하 20도의 겨울에 난방은커녕 겨울바람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하는 집. 어디선가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면 시체의 옷가지를 도둑질하는 일이 다반사고, 심지어 땅속에 묻으려던 시체의 누더기마저 서로 가져가려 싸움이 일어나는 곳. 이런 생지옥에서 9살의 어린아이가 10년이나 살아야했다는 게 도저히 사실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엔씨 하이킨: I knew that North Korea was a very terrible oppressive state, but I didn't know the extent of it...

(더빙) 북한이 매우 끔찍하고 억압적인 국가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잔인성이 그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만 잡아다 수용소에 가두는 게 아니라, 연좌제에 의해 3대를 수용시키고,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까지 잡아넣는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현대판 아우슈비츠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비인간적인 수용소의 행태가 지금 이 시대에도 일어난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독일 나치가 1940년대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들었던 폴란드 내 수용소. 북한 수용소 이야기를 하며 나치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인 '아우슈비츠'를 언급하는 하이킨 씨는 이 대량학살로 삼촌과 여러 명의 사촌을 잃은 아픔이 있는 유대계 미국인입니다. 그러기에 북한 수용소에서 탈북자들이 겪었을 고통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책, 잡지, 신문을 부지런히 읽는 편이기에 티베트 독립, 르완다 난민 등 세계의 주요 문제를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하이킨 씨. 하지만 그런 자신이 북한 인권 문제에 그토록 무지했음을 깨닫고는 사람들에게 이를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기록영화의 길에 접어들어 3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놓은 영화가 '김정일리아'입니다.

한국에서는 ‘김정일화’로 알려진 ‘김정일리아’는 다년생 베고니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46회 생일을 기념해 이름을 붙인 꽃입니다. 제목이 역설적이라는 건 영화 시작하고 5분도 안 돼 알 수 있습니다. ‘평화, 사랑, 지혜, 정의’라는 꽃말을 떠올리는 영화 제목과는 반대인 영화의 한 부분, 잠시 들어보시죠.

(다큐멘터리 ‘김정일리아’) “한 끼 먹을 걱정하면서 배고픈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이에요” “처음으로 아이들하고 같이 쥐를 잡아먹으면서, ‘아, 이렇게 해야 내가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총에 맞을지 아니면 전깃줄에 타죽을지 생각했지만, 그땐 자신감이 넘쳐서 당장에라도 넘어갈 것 같았는데” “저희가 도망오고 싶어서 도망간 게 아니잖아요, 정말 살기 위해서 왔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게 전부 거짓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걸 알고 있는 제게는 큰 충격이었죠.”

73분짜리 영화에는 강철환 씨 외에도 개천관리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 자란 뒤 처음으로 탈출한 신동혁 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둘째 부인인 성혜림 씨와 절친한 사이라는 이유로 관리소에 수감 돼 두 자녀를 잃은 김영순 씨, 북한 조선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 출신 김철웅 씨, 인민군 대위 출신의 김성민 씨 등 13명이 나와 북한의 참상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엔씨 하이킨: Films have a different way of impacting people. They are much easier to digest in a way, you know...

(더빙)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정보를 소화하기가 훨씬 쉽고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요. 기록영화 ‘김정일리아’에 나오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북한의 끊임없는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영화가 공개된 뒤 파장이 꽤 컸습니다.

2009년 1월 첫 선을 보인 ‘김정일리아’는 세계 최대 독립영화의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의 2009년 기록영화 부문 수상작으로, 2010년에는 유명한 원월드 영화제에서 ‘올해의 작품’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제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영화제에 초청 상영돼 호평 받았습니다. ‘김정일리아’는 조만간 루마니아 부통령의 요청으로 루마니아 의회, 그리고 이달 말 프랑스의 생모에서 열리는 인권 회의에서도 상영되는 등 유럽 지역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하이킨 씨는 밝혔습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김정일리아'의 후속편을 만들까도 고려했지만, 제작비를 마련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고민만 하고 있다고 말하는 하이킨 씨. 하지만 영화를 본 많은 관람객이 북한의 실상을 밝혀줘 고맙다고 하는 인사말에 보람을 느낀다며 북한 주민에게 한마디 전합니다.

엔씨 하이킨: In North Korea, this is the oppression toward anyone who's against the regime, their own people..

(더빙) 북한 정권은 현 정권을 반대하는 자국민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독일 나치는 타민족인 유대인을 학살한 경우인데 반해, 북한은 같은 민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거죠. 저는 이 점이 특히 역겹습니다(disgusting).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북한 주민이 이 역겨운 상황을 잘 참고 견뎌주기를 바랍니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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