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는 마치 자기 집안일처럼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수년째 뛰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을 위해 뛴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국제적 유대인 인권단체인 '사이먼 위젠탈 센터'를 찾아갑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사이먼 위젠탈: I'm not a Jewish James Bond. I'm not a Don Quijote...(더빙) 저는 유대인 제임스 본드가 아닙니다. 저는 돈키호테는 더더욱 아닙니다. 제임스 본드나 돈키호테의 중간 정도 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나치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생존해 있다는 특권에 감사해 헌신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여러분께서 방금 들으신 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전범의 추적과 범죄 고발, 그리고 유대인 학살에 관한 자료수집 활동에 여생을 바쳤던 사이먼 위젠탈 씨의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위젠탈 씨는 첩보 영화 속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도 아니고,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괴짜 기사인 돈키호테도 아닙니다.
평범한 건축가로 활동했던 위젠탈 씨는 전쟁 당시 여러 군데의 나치 수용소를 전전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나치 수용소에서 일가친척 89명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져 1945년 5월 오스트리아의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나치전범 색출과 전 세계에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 대학살을 알리는 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나치 전범 약 1,100명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 지난 1977년에 설립된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이제 한반도의 북녘 땅에서 오랜 세월 수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런 이야기가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거의 10년째 뛰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의 인권 침해를 잊는다면 이런 만행은 역사 속에 재현될 것이고, 북한판 홀로코스트에서 인류가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수많은 희생자들은 무의미하게 죽어간 것이 돼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이먼 위젠털 센터의 아브라함 쿠퍼 부소장의 말입니다.
아브라함 쿠퍼: 북한 정권은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진 북한의 두 독재자가 쥐락펴락했는데요, 세계 역사상 최악의 두 체제를 섞은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구소련의 스탈린식 통치와 독일의 나치즘을 통합한 거죠. 구소련 전역에 설치된 수천 개의 수용소를 통해 스탈린은 정적을 숙청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사회를 지배하는 공포정치를 폈고, 독일 나치는 독가스로 유대인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북한 희생자의 규모는 구소련이나 독일보다 적지만 북한 정권의 잔인성은 스탈린이나 나치 정권과 똑같습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특히 독가스를 사용한 인체실험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 무자비하고 잔인한 인체 실험을 당했던 만큼, 독가스로 인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무감은 5년 전 이맘때 사상 처음으로 북한 정권이 지난 1970년대 정치범들을 대상으로 독가스 실험을 실시했고, 이런 일은 2002년까지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쿠퍼 부소장은 지난 2004년 한국을 방문해 북한의 과학자 출신 탈북자 3명을 만나, 북한 죄수들이 유리방에서 화학약품에 노출돼 몇 시간 내에 사망한 실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이를 과감히 공개했던 겁니다.
아브라함 쿠퍼: 당시 서울을 떠나기 전에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무려 25명의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해서 취재를 했는데요, 단 한 신문사도 기사화하지 않더군요. 그날 참석했던 미국의 워싱턴 타임스 기자만 서울발로 보도했습니다. 북한의 독가스 실험 기사는 당시 한국 권력자들에게 너무 부담스런 내용이었나 봅니다.
북한에서 생체 실험이 자행되고 독가스 실이 있다는 주장을 접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같은 해 9월 13일을 ‘북한 인권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대규모의 행사에는 북한 인권에 헌신적인 샘 브라운백 연방 상원의원이 주제 연설을 하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직접 증언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최근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에 있는 여러 비정부단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려는 운동은 크게 환영할 만한 노력이라고 쿠퍼 부소장은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북한의 지도자급만을 대상으로 해선 안 된다는 게 사이먼 위젠탈 센터의 판단입니다.
아브라함 쿠퍼: 북한 정권의 지도자가 아닌 실무자급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북한 정권을 떠받쳐 온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북한 정권은 언젠가 종말을 맞을 겁니다. 이때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한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자기는 오직 명령만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할 게 뻔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향후 법정에 세워서 명령에 따랐을 뿐인 하급자도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알려야합니다.
나아가 미국 법무부에 나치 전범을 평생 추적하는 특수조사실이 있듯이, 한국도 북한에서 인도주의 범죄와 관련한 책임자 명단을 만들어 나중에라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북한에 경고를 보내야한다고, 쿠퍼 부소장은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이먼 위젠탈 센터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본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그러나 북한에서 벌어진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직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들만이 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음악: 영화 ‘해바라기’ 주제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