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열정을 가진자들의 것이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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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인쇄소.
서울 용산구의 한 인쇄소.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탈북자가 남한에 가서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착 초기에는 그저 열심히만 일하면 성공할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풀리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면서 몸도 마음을 따라주질 않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되는데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밤잠을 줄이며 노력했더니 성공했더라 하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진성(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진성: 남한에 와서 노가다 일을 하면서 만나서 결혼해서 데려갔다가 아니다 여기는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하고 데려왔죠.

한국으로 간 탈북자가 모두 그곳에서 정착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다른 나라로 또 난민신청을 해서 이주하는데요. 김 씨도 서울에 살다가 독일 즉 도이칠란트로 갔다가 3개월만에 다시 돌아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데려갔다가 그대로 있다가는 성공은 고사하고 고생만 실컷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던 겁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현재 인쇄소 사장이 됐습니다.

김진성: 독일 갔다와서 변한겁니다. 그 전까지는 불평이 많았거든요. 갔다와서 제가 세상을 본 거죠. 좋아도 좋은 것을 모른다. 한국 온 것이 너무 좋았는데 더 좋은 곳을 간다고 했다가 그 좋은 곳마저 떠났구나 이런 생각에 돌아서 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6년이란 세월이 왜 이리 빨리 갔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좀 더 일찍 정신차리고 했었더라면 이런 생각이 들죠. 이제는 삶의 희망이 있거든요. 인쇄업을 하면서 이제 내가 이 방향으로 가면 된다 이런 희망이 있어요.

태어나 자란 곳을 등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탈북해서 남한에 가자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2010년 탈북한 김 씨는 당시 고향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김진성: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이 잘산다는 말을 들었어요. 라디오를 들으니까 95년도에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그것을 듣고는 남한이 잘사는구나 알았죠. 그런데 북한이 자꾸만 먹고 사는데 잡아가고 처형하고 그러잖아요. 국가가 보장을 못해주면 내버려두던가 자유를 주던가 해야 하는데 자유를 안주고 자꾸 잡아 가두고 하니까 못살겠다 이러고 탈북하게 된거죠.

남한에 정착해서도 맘을 다잡지 못하던 한동안의 방황이 끝나고 독일까지 다녀온 김 씨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닭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맘을 독하게 먹고 시작한 일이 인쇄소 일입니다.

김진성: 거기서 1년을 배웠죠. 인쇄는 1년 배워선 몰라요. 지금 저에게 가르쳐 주신분은 30년을 했어요. 그분이 인쇄를 알려면 기본적으로 3년은 배워야 한다 이러시더라고요. 네가 인쇄업을 한다고 하면 3년은 뒤를 바주겠다 이러더라고요. 우리가 일을하면서 배우잖아요.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화를 드리고 물어보겠다고 했죠. 사람이 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그분이 저를 3년 봐주겠다고 해서 과감하게 시작한거죠. 충무로에 사무실 하나 얻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5개월은 주문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어었어요. 그 다음부터 한사람 한사람 다니면서 사람을 만났어요. 통일부, 남북하나재단, 각 단체를 돌면서 주문을 받고 그랬어요. 그렇게 과감하게 주문처를 돌수 있었던 것은 만들다가 모르면 그분에게 전화를 해요. 그러면 가르쳐 주거든요. 그분이 뒤에 있으니까 막힘이 없죠.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받아와서 만들어내면 내 지식이 되잖아요.

최소 3년의 경험을 가지고 시작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개인사업을 과감하게 벌이고 맙니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했던 것을 마감하고 월급을 주는 사장님이 된 겁니다.

김진성: 충무로에 5평 사무실 얻어서 디자인 컴퓨터 2대 놓고 시작했죠. 한 5개월 하다가 주문도 없고 해서 다니면서 재단을 통해서 인맥을 넓혀가고 하니까 현수막, 책자 이런 것을 저한테 다 맡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작년 10월에 사회적기업에 선정이 된 거예요. 사회적기업에 선정이 되니까 설비지원을 해주더라고요. 설비지원금에 제가 가지고 있던 금액을 합쳐서 칼러기, 흑백기, 제봉기, 커팅기 등 다 놔서 중급 인쇄 장비는 제가 다 갖추고 있어요.

혼자 뿐이었던 인쇄소는 시작한 지 2년만에 직원이 3명으로 늘었고 작업장도 15평으로 넓어졌습니다. 보통 가게 간판을 내걸고 6개월을 버티면 최소한 망하진 않는다라고 하는데요. 정말 빈손으로 시작했던 인쇄소가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 기자도 궁금했습니다. 혹시 가격을 다른 곳보다 싸게 해서 고객을 확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김진성: 일을 하다보면 무상으로 일을 할때도 있어요. 하나도 남는 것이 없어도 고객확보 차원에서 그냥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일을 맡기는 사람은 다 이윤이 남도록 주지 완전 남지 않게 주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가격 때문에 애먹거나 그런적은 이때까지 없어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3년을 고생할 생각을 해라 3년을 버티면 성공하는 거래요.

“이 세상은 열정을 가진자들의 것이다.” 김 씨는 이런 좌우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자신의 지켜준 글귀랍니다.

김진성: 인쇄를 배울 때 거의 끝날 무렵에 글을 봤는데 딱 마음에 들더라고요.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뭔가 해보겠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잖아요. 인쇄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겠다 했죠. 우리는 그만큼 사명이 있잖아요. 우리는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서 아이들 책자도 만들고 좋은 책도 주고 그런 사명이 있으니까요. 또 한국에 와서 거지처럼 살다가 통일되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그래서 정말 죽을 각오를 가지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람 사회에서 알게된 사람 찾아다니면서 엄청 다녔어요. 죽기 살기로 했어요.

북한에서 당간부였던 사람도, 배움이 없이 노동자로 살던 사람도 탈북해 남한에 가면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성공하는 반면 절반은 불평과 불만 속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차이는 뭘까요?

김진성: 사람이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내가 새벽에 우유배달하고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대학에 가고 이게 그 간절함이 없었더라면 못했어요. 내가 한국에서 정착해서 성공해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이런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된거죠. 지인이 나서고요.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김진성 씨.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요? 남한생활 6년이 지난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하는 심정으로 산다고 합니다.

김진성: 지금은 엄청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족 데리고 텐트 사가지고 산에가서 놀고 제주도 비행기타고 놀러갔다 오고 베트남에도 갔다 오고요. 성공한 친구들하고 모여서 주말마다 놀러가요. 인생이 정말 이제는 즐겁습니다. 남한분들 주말마다 얼마나 놀러 잘다닙니까. 우리도 이제는 그 대열에 낀 것 같아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인쇄소 사장 김진성(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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