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샤 헤어숍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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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청담동 뷰티헤어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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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아무런 생각이나 계획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좀 더 나은 생활 즉 미래를 준비해야 노년에 편한 법인데요. 현재 하는 일이 남의 눈에는 작고 보잘 것 없을 지 모르나 언젠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미용실 원장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대구에서 나르샤 헤어숍을 운영하는 김향(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향: 저는 남의 밑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에 와서 한국사회 깊숙히 들어가고 싶었던 거예요.

나르샤는 순 우리말로 ‘날아 오르다’ 입니다. 그리고 헤어숍은 영어로 미용실이니까 북한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날아오르는 미용실쯤 될까요? 김 씨는 자신의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손질한 사람들이 멋지게 변한 모습을 보고 하늘을 날 것 같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가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란 뜻인지도 모르죠.

김 씨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2년부터 남한생활을 합니다. 그가 고향을 떠났을 당시는 중국과 무역을 했습니다.

김향: 북한은 2009년에 떠났고 제가 북한에서 장사를 했어요. 중국하고 약초 무역을 했는데 보통 서너톤씩 했어요. 용담초, 세신, 오미자, 고사리 등 닥치는데로 넘겼어요.

북한에서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미용 분야의 일을 남한에 가서 했던 것은 아니고 젊었을 때 그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있게 미용실을 차리게 된 겁니다.

김향: 이미용 쪽으로 이발을 배워서 속도전 돌격대 청년돌격대 이발을 해줬어요. 그 기초가 있어서 내가 40대 중반에 한국에 오게 되니까 내가 하던 것을 다시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나원 나오자 마자 6개월 동안 학원에 가서 자격증을 땄고 그 다음 미용실에서 계속 일했어요. 북한하고 한국의 차이점이 많거든요. 북한은 염색이 없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걸 배워서 작년 5월에 개업했어요.

북한에는 평양 창광원이 유명하죠. 그곳에 있는 미용실에는 최신 유행을 쫓는 젊은이들이 많이들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만큼 창광원 미용실에서 일하는 미용사들은 실력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 씨도 기초지식은 있었지만 남한에서 유행하는 머리모양이나 손질법을 익히기 위해서 많이 노력 합니다.

김향: 북한하고 차이점은 한국은 자유민주국가니까 누가 머리 길다고 통제하거나 하진 않는데 북한은 투블럭도 안되고 이런 것은 자본주의 날라리 풍습을 들여오는 것이라고 통제가 많아요. 머리도 여기로 하면 상고머리 대학생머리 이렇게 분류를 해서 남자는 깔끔한 모양으로 해요. 남한은 자기만의 멋스런 스타일이 있어요. 연애인 모양으로 하고 남자도 여러가지 색으로 염색을 하는데 북한은 까만머리 하나 뿐이예요. 갈색도 없어요. 통제를 해요. 내가 올 때는 남한방송을 보고 살짝 갈색으로 나올랑말랑하게 했는데...

같은 모양으로 자르면 쉽겠는데 미장원을 찾는 손님마다 원하는 모양이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주문도 아주 다양한데요. 그러자면 남한에서 쓰는 말을 알아야 우선 소통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머리물감은 남한에선 염색약이라고 말하고 센머리는 흰머리, 볶음머리는 파마머리, 고수머리는 곱슬머리 이런 식으로 북한에서의 말을 남한에서 쓰는 말로 바꿔서 빨리 알아들어야 하는 데 처음에는 그런 것이 어려웠습니다.

김향: 말하다 보면 연변사람인가? 우리 사람인가 하고 아리송해 하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북한에서 왔다고 말해요. 그러면 깜짝 놀라죠.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언론에서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봤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한쪽으로는 기를 빼았기면서 힘들게 하고 있어요.

옷을 고른다거나 화장을 하는 것 그리고 머리를 손질 하는 것 등은 모두 유행에 민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자주 가는 미용실이 아니고 처음 가는 곳에 가서 모르는 사람에게 머리 손질을 맡길 때는 긴장합니다. 한번 머리 손질을 잘못하면 다시 머리가 자랄때까지 기분이 엉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용사와 손님 사이에는 믿음이 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서로 불편한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김향: 사람나름이겠지만 커트를 하면서도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아니까 조금만 자르라고 긴장돼서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이고 내가 북한 사람이란 것을 모르고 왔다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꺼리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남북한 언어소통이 안돼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전혀 모르고 하니까 언어가 상당히 틀려요.

김 씨는 손님이 원하는 머리모양을 내기 위해서 나름 공부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면서도 고객에게 어떻게 자르겠다고 설명을 하고 가위질을 합니다.

김향: 화보에 나오는 이 모양으로 해주세요. 색깔은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제가 비슷하게 색을 만들어 냅니다. 제가 또 교육도 많이 들으러다니고 인터넷 강의도 많이 들어요. 저는 조심스럽게 손님들에게 몇번씩 물어봐요. 어떤 식을 원하는지 묻고 해드려요.

보통은 월급을 받으면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직접 운영을 하면 같은 시간을 해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김 씨는 아직은 월급 받고 일할 때 보다 별반 수입면에서는 나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미용실이라 남눈치 볼 필요없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에 희망을 갖습니다.

김향: 망하면 큰일 나는 것도 있는데 저는 모든 것을 대담하게 하자고 해서 개업을 했어요. 지난 4년 동안 다른 가게서 열심히 배웠어요. 쉬는 시간에는 가발 놓고 연습하고 퇴근 하고는 교육장에 가서 교육을 받고 보통 집에 새벽 2시 넘어서 들어와 잤어요.

아침 10시면 미용실 문을 열고 저녁 8시면 일을 끝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딸과 함께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미용실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 씨. 부지런 하게 일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김향: 휴일에는 좀 다니고 싶어요. 저는 한국에 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금껏 뛰어 왔어요. 이젠 시간적 여유가 나면 바닷가도 가고 싶고 여행을 다니고 싶고 그래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대구 나르샤 헤업숍을 운영하는 김향(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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