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후회 말아야죠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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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도서관 전경.
경북대학교 도서관 전경.
Photo courtesy of Wikipedia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는 우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취업을 해서 생활합니다. 그런데 당장 시급하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은 나중에 후회를 않기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을 했다고 말하는 청진 출신의 황연희(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지난 2004년에 남한에 입국해 13년째가 되는 황 씨. 물론 그가 탈북한 것은 그보다 몇해 전 그러니까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이 좀 풀릴 때였습니다. 황 씨는 남한생활 절반을 대학생활에 쏟았습니다.

황연희:돈이 중요하지 공부가 왜 필요한데? 공부를 해도 직업이 제대로 된 것을 잡을 수도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일단 공부를 했을 때 애를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부를 했어요. 지금은 아이도 다른 아이들보다 잘 크고 있고 그러니까 내가 공부한 것도 왜 했지 이러지 않고 잘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당장 쓰이질 못한다고 해도 기다리면서 때를 보는거죠.

기자: 석사까지 총 몇 년을 공부한거죠?

황연희: 저는 6년 반을 했어요.

기자: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황연희: 달라진 점이 분명히 있죠. 지금도 생각해보면 제가 영진전문대 2년 졸업하고 아이들 학교에 강의 갔거든요. 그때는 지금처럼 신중하지 못했던 것같아요. 지금은 날이 갈수록 공부를 하고 사람이 생각이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앉을자리 설 자리를 구별한다고 할까요? 배우면 배울수록 이것은 내가 해야할 것이고 안 해야할 것이다 하고 완벽하게 구분이 된다고 할까요? 이런 것이 달라졌어요.

뭐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좋았고 일한만큼 대가가 있어 은행에 저축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북한에서 하지 못한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황연희: 제가 주변을 봐도 그렇고 배움은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4년제를 졸업을 해도 공부를 제대로 안하면서 졸업한 사람은 1년 된 사람이나 지금 4년 졸업한 것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똑 같은 것같아요. 제가 대학원을 지나면서 보니까 배우면 배울수록 배우는 깊이와 양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거든요.

올해 황 씨는 북한식 표현을 하자면 준박사 과장을 마쳤습니다. 처음 대학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2년 전문과정만 해보자고 한 것이 4년이 돼서 학사증을 받고 내침김에 경북대학교 정책정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은 겁니다. 황 씨는 시간이 날때면 일도 해야했기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고된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에 힘들줄도 몰랐답니다.

황연희: 저희가 학사때는 기초를 배웠다고 하면 나중에는 범위가 나눠지면서 하고 싶은 분야로 깊이 공부하는 거죠. 그런데 만족이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석사는 4년동안 배웠던 것을 대학원에 화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해 배우고 또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1시간씩 동기들과 수업을 이끌어 가면서 서로 배우는 거예요. 깊이가 달라지는 것같아요.

사실 올해 졸업식을 앞두고 제일 기뻐한 것은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졸업식에는 딸은 참석을 못했습니다.

황연희: 딸은 제가 대학원 다니니까 친구들에게 엄마가 경북대학교 대학원 다닌다고 자랑을 하고 했어요. 지금도 엄마 잘했다고 하고 졸업식에 못간 것을 아쉬워 하고 그래요. 하지만 내 졸업식한다고 아이 수업을 빼먹게 할 수 없어서 그냥 놔뒀어요.

항상 사람은 자신의 취할 수 있는 것을 놓고는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선택의 순간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요. 나중에 후회가 없어야 하겠죠?

황연희: 저는 솔직히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같아요. 돈이 중요한가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렇게 두 가지인 것같아요. 저는 지금도 후회 안해요. 내가 분명하게 하고 싶은 것을 했고 사춘기를 보내는 딸을 위해 배운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려고 애썼고 지금도 아이를 보면서 내가 공부했던 경험으로 아이를 키워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햇수로 7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도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중국에서 데려온 딸도 잘 커줬으니 모든 것이 고맙기만 하답니다.

황연희: 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했으니까 일해야죠. 대학원을 나왔지만 사회복지 일을 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힘들고 고되고 돈은 적고요. 남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해야해요. 저는 물론 배운 것을 쓰면 좋겠지만 지금 현재는 아이를 잘 키우고 하면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반듯하게 커준 것이 나한테는 성공이라고 봐요. 나이 50살 이라도 나가서 일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돈은 있는데 아이가 잘못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돈 때문에 못했다면 나이 들어서 평생 후회했을 것같아요.

딸은 중학교 3학년입니다. 얼마 안있으면 딸도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젠 딸의 학자금 마련을 위해 저축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정규직을 찾아야 하는데요. 그 때문에 또 잠시 고민을 해봅니다.

황연희: 이젠 공부를 했으니까 뭐든 해야죠. 설사 사회복지사가 아니더라고요. 이것저것 생각 많이 해봤어요. 식당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일단은 경기가 하도 안 좋으니까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남밑에서 월급받고 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예요. 졸업하면서 생각 많이 했어요.

뒤돌아 보면 남한생활 처음 2년은 무척이나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남한행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가서 곧 부르겠다고 한 것이 법적인 문제로 아이를 남한으로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풀리고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답니다.

황연희: 내가 지금까지 극복하고 잘 하고 있는 것이 아이 때문이예요. 내가 힘들 때 견딜 수 있는 것도 아이 때문이예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들 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내가 북한에서 빈손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 정신으로 여기서 왜 못살겠는가 이런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요.

이제 또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황 씨. 그가 말한 것처럼 사선을 넘어 남한까지 왔는데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 보입니다.

황연희: 일단 내가 전공한 것을 써먹고 싶어요. 올해 중국어 하고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고 신청을 했었어요. 앞으로도 쓸모 있는 것이 자격증이란 생각을 했거든요. 올해는 그것을 하려고 했는데 몸이 아프니까 쉽지가 않네요. 내년을 기대해 봐야겠죠. 공부도 했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리지 않겠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황연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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