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생활 10년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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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새터민들의 체육행사가 지난해 부산동주대학 잔디구장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 대량 탈북은 북한주민이 중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가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간 탈북자는 이미 지난해 2만 명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오늘은 남한생활이 10년이 되는 탈북여성 최은화(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는 신분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인 아나운서 일을 했던 최은화 씨. 90년대 말 경제적인 이유로 중국에 사는 친척에게 도움을 받고자 도강을 했던 것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돌아보면 엊그제 일 같기도 하지만 또 까마득한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은화: 10년 됐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김정일 통치 때 북한을 떠났는데 작년에 갑작스럽게 김정일 사망 소식도 접하고 또 북한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김정은 이라는 새로운 존재도 알게 됐고 그러니까 분명 남한 생활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북한을 떠나온 때까지 합치면 15년이 된 거죠. 얼마 전에 동생하고 통화를 했는데 제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다 보니까 조카들도 우리 아이보다는 더 큰 아이도 있고 한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남한에서의 처음 몇 년은 어리둥절 반쯤은 혼이 나간 상태에서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같은 북한출신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도 낳았습니다. 너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경험한지라 자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만히 돌이켜 보면 자신은 기회의 땅에서 한걸음 한걸음 자유를 찾아 자신의 인생을 가꿔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최은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점.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말하면 일단 자유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또 따로 있습니다. 그 사회는 사상을 가지고 그 틀에 맞춰 그것이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북한에서 말하는 자유가 여기 오면 실제적 자유로, 존재하는 자유가 된다는 것이 틀린 것이죠. 일부 탈북자들은 그것을 확대 해석해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데 무작정 하고 싶은 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북한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데 여기선 북한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 성분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을 한국에선 자기가 원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남한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파트에서의 생활입니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모두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통제가 안 되는 아이가 집에서 뛰고 할 때는 어김없이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막대기로 천장을 쿵쿵 쳐댑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입니다.

최은화: 저희가 생각하기에 나무로 지었으면 울리지 않는데 쇠몽둥이로 지워서 그런지 어떤 때는 훌렁 들려 올라가는 것 같아서 놀랐는데 옆집에서 해도 울리는데 그러면 밑에 층에서 또 쿵쿵 거립니다. 몇 번 다툼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참습니다.

최 씨는 남한생활 1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음료수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일을 하고 관광회사에서는 여행자를 인솔하며 안내도 했습니다. 지금은 북한인권단체에서 사무일을 보고 있는데 정말 다시 남한생활을 시작한다 해도 이보다 더 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은화: 한국에 와서 감사패 공로패를 3개나 받았습니다. 자원봉사해서 받고 남한생활 잘한다고 받고...북한에서는 열심히 살아도 안주는데 여기선 내가 편리하게 생활 했는데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이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상 받으면서 우는 사람은 못 봤는데 긍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북한생활과 남한에서의 생활을 비교하자면 틀린점이 많아 이루 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지만 굳이 한 가지만 손꼽으라고 한다면 자동차 문화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갈 수도 있겠는데 남한 사람은 차를 이용한다는 겁니다. 이런 문화는 또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가장 빨리 닮아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최은화: 그렇게 기름값이 올라간다고 매일 뉴스를 하는데 그래도 도로에 나가보면 도로에 차가 꽉 찼습니다. 탈북자들이 오면 북한에서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해서인지 차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여성 탈북자 운전자가 많습니다. 저는 2009년에 운전면허 땄는데 통일이 되면 자가용을 몰고 고향에 가겠다. 그 생각으로 면허를 땄죠. 한국에 제일 처음 도착해서 인천공항을 통해 차를 타고 들어오는데 차가 길을 꽉 메웠는데 여성들이 폼 나게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북한에서는 상상이 안가죠. 북한 간부들 보다 더 좋은 차들을 몰고 다닙니다.

최 씨는 올해 꼭 대학에 입학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50이 돼서 무슨 대학인가? 하고 말하겠지만 최은화 씨는 대학 졸업장을 꼭 따고야 말겠다고 합니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훗날 복지가사 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최은화: 충격을 받은 것이 주변 사람들 보면 다 대학생입니다. 저도 나름 자격증은 많이 땄습니다. 그런데 협회 자격증 보다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도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면 보는 것이 달라지는 겁니다. 어디 가서 이력서를 내도 너무 다른 겁니다. 공부를 하고 싶더라고요. 지금 한국에서는 입국 5년 이내 탈북자만 학비 지원을 하는데 세종 사이버 대학은 탈북자는 무조건 지원을 하면서 다 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

현재,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기본이고 내일 그리고 1년 뒤 그리고 10년 후를 준비하는 것이 남한생활이라고 말하는 최씨. 항상 남에게 뒤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무슨 일을 했던 남한에서의 인생은 다시 만들어 간다는 각오로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은화: 지금은 2만 5천 여 명의 탈북자 시대입니다. 저보다 훨씬 우월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겁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이라고 하면 도당 책임비서 자제만 가는 줄 알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주변에는 김대 나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북한에서라면 참 부러워할 만한 그런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북한에서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너무 집착하면 다른 일을 못합니다. 스스로 많이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정붙이고 살면 그곳이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하게 커주는 아들이 있어 집안에는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고 내일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살아갑니다.

최은화: 네 집 마련이 꿈인데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평생 임대 아파트에서 살수는 없고 특히 아이를 생각해서는 집을 가져야 하는데 아이 아빠가 잘되면 집을 가지는 것이 꿈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최은화(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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