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사람은 부드럽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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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 가을 나들이 옷을 입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살면서 어떤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조국이든 사랑하던 연인이든 더 이상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겁니다. 특히 자신의 인생을 바친 상대에게서 느끼는 실망은 더 클 수밖에 없겠는데요. 오늘은 남한생활이 8년차가 되는 탈북여성 강유란(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강유란: 고사포 3중대에서 중대장으로 있었어요...

북한 강원도에서 군사복무를 하다 탈북해 지금은 남한에 사는 탈북여성 강유란 씨입니다. 어려서는 수영과 사격 선수로 그리고 20대 중반까지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던 강 씨.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로 운명이 갈렸습니다.

강유란: 하루는 위에서 찾아 갔더니 ‘중대장 미안한데 제대발령이 났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2-3년 남았는데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으니 말을 안 해줬습니다. 그래서 집에 내려가 보니까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한 느낌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날 보더니 막 울더라고요. 아빠가 살기 힘들고 형부들이 장사하다 말아먹은 돈이 많아 친척에게 방조 받으려고 중국을 갔는데 누가 꼬 했는지 안기부로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그래 제가 강제집행으로 제대가 됐습니다. 그때가 내 나이 24살이었습니다. 정말 젊음도 이 몸에 다 차있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제대 되니까 막막한 겁니다. 길에 나가도 우리같은 사람은 인정을 안 해주는 겁니다. 원래 공산주의 사회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나라가 북한이란 나라입니다. 청순을 나라에 바치면서 얻은 것이 이거니까 이제는 이 나라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때 아버지가 모든 혐의가 밝혀져 나와 먼저 중국으로 가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도 때가 되면 오라고... 그래서 차례대로 조용히 탈북한 것이 순리가 된 겁니다.

탈북해서 중국에서 재회한 가족과 한 3년 정도 살다가 남한행을 한 것이 지난 2005년입니다. 강 씨는 북한에서 중대장으로 있을 때 남쪽에서 하는 대북방송도 들었고 또 북쪽에서 심리전에 사용하기 위해 거짓으로 만든 비디오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았기 때문에 남한에 가면 홀대받지 않는다는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실생활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강유란: 일단은 제가 (하나원에서)듣는 것과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은 많이 차이가 나잖아요. 사회 나와 두 달 만에 제가 회사를 찾았습니다. 회사에 가서 저 북한에서 왔는데요 하니까 김정일 밑에 있다가 왔는가 하고 말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 들어간 회사에서는 언니, 친지들 전부 너무 좋아서 고생하고 왔다고 잘해주고 하니까 저도 처음부터 머리 숙이면서 배우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드리고 하면서 한 1년 반 정도 지나니까 적응이 되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친언니처럼 지냈던 언니가 지금 남편을 소개해 줘서 신랑한테 한국 생활 정착하는데 조언도 받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남한에서 처음한 일은 휴대폰 즉 손전화기 만드는 회사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회사원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남한 남성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습니다. 이제 아이는 5살이 됐습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자연스레 같은 고향 출신을 만나서 짝을 이루고 사는데 강 씨는 처음부터 인생의 반려자로 남한 남성을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합니다.

강유란: 저도 북한 사람이지만 남한에 와서는 북한사람 안 만나지. 남한사람과 살지 북한에서 살았는데 북한사람 만나면 북한생활 그대로잖아요. 일단 남한 땅에 왔으니까 남한 신랑을 만나서 제가 모르는 것 그다음에 이 사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을 조언 받으면서 살고 싶어서 남한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살면서도 회사 나가서 들어보면 정말 우리 신랑은 저한테도 잘해주고 가정에도 너무 잘해주는 사람입니다.

탈북을 하게 된 이유 그리고 남한에서의 달라진 생활을 듣는 과정에 은근히 남편이 잘해준다는 말을 자주 비춥니다. 그래서 도대체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 어떤 점이 그리 차기가 나는가 하고 기자가 물어보니 결국 또 남편 자랑으로 이어집니다.

강유란: 많이 틀리죠. 남한 사람은 북한 사람처럼 거칠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남편도 남한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란 사람이라면서 내가 북한에서 고생하고 자기 나라에서 왔으니 많이 품어주고 하겠다고 합니다. 다는 그러지 않겠지만 다른 남한 사람도 100명에 95명은 그럴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 풀고, 싸움을 해도 북한 사람처럼 무식하게 싸우지 않고,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모르는 것은 서로 수정하자고 하고 협조해 달라며 대화를 해서 시정하고 고칠 것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하지 않고 여자 말을 많이 존중해 줍니다.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비교하자면 부드럽습니다. 말도 부드럽게 해주고 사람들도 살아보니까 너는 북한에서 왔지 하면서 차별하는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잘 대해 주니까 만족합니다. 그리고 내가 움직이는 것만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게 좋죠.

탈북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국가에 충성하고 이름도 날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강유란 씨. 이제 30대 중반을 넘으면서 남한에서는 평범한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강유란: 앞으로 꿈은 우리 세 식구 잘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저희 신랑, 아들과 화목하게 살고 싶고 목표가 있다면 아들에게 뭔가 많이 해주고 싶고 저도 못해본 것이 많으니까 이제부터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이제 집도 있고 자리가 잡혔으니까. 저도 수영 강사일도 하고 싶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제가 바라는 것은 부모님, 형제, 가족이 남한에서 모두 행복하게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강유란(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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