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의 교실이 궁금했어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3-22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hansong_uni_305
한성대학교의 2012학년도 '외국인 유학생 멘토링 멘토 및 멘티'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탈북자 중에는 나이 40이 된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는 이도 있습니다. 남한 생활 9년차가 되는 탈북여성 황은선(가명) 씨가 오늘의 주인공인데요. 북한에서의 최종 학력이 고등중학교인데 남한에 가서는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합니다. 황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황은선: 입학했을 때는 좀 서먹하고 두렵고 내가 해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대학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1990년대 말 탈북해 중국을 거쳐 남한에 간 황은선 씨 올해 나이 마흔입니다. 물론 공부하는데 나이가 뭐 중요한가 할 수도 있겠지만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하면 마흔 하나가 되니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봐도 한 15년 정도 늦게 졸업장을 받게 되는 겁니다. 황 씨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황은선: 생각 외로 재밌고 외래어를 많이 쓰다보니까 이해는 잘 안되지만 열심히 듣고 노력하고 또 주위에 어린 친구들이 이모라고 하면서 잘 도와주고 합니다. 처음에는 말투가 이상하다고 꺼려했는데 나중에는 같이 잘 어울리게 됐습니다. 저는 대학생활이 정말 재밌고 즐겁고 2년 지나도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그냥 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습니다.

처음 남한생활을 할 때만큼이나 대학 입학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남한 정부는 만 35세까지만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데 이미 황 씨는 정착보호기간 5년도 지났고 나이 제한에도 걸려 자기 돈으로 학비를 내야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 황 씨는 관련 기관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고 결국 교육청에 가서 북한에서의 최종 학력 확인서를 받아 대학에 제출하면서 남한정부가 정한 학력인정 후 5년 이내 입학 기준을 근거로 학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남한의 대학에 대해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황 씨에게 대학생활의 이모저모를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 물어봤습니다.

황은선: 학교 교실이 궁금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두 사람씩 앉고 짝도 남녀가 함께 앉는 것이 아니라 갈라 앉았는데 대학에 가보니까 자유롭게 앉고 싶은데 마음대로 앉을 수 있고 교수님과도 토론하고 얘기하고 하는 것이 자유롭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는 선생님은 무섭고 한 존재였는데 한국 대학은 교수님과 저희 교감이 잘 돼서 불편함이 없습니다.

기자: 일반 학원에서 배울 때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다른 점은 뭡니까?

황은선: 학원에 다닐 때는 그냥 시간 때우기 식이었습니다. 수당이 30만원 씩 나오고 하니까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거였는데 대학은 내가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만큼 그 대가는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수업이 많고 할 때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황은선: 밥은 학교 도서관 아래 교내 식당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3천500원이면 여기선 2천 500원에 사먹을 수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사먹고 바로 수업에 가고요. 돈이 싸서 좋고 이용하는 시설이 교내에 있으니까 모든 것이 북한에서보다는 편리하게 돼있더라고요.

기자: 본인도 학교에 다니고 아이 숙제도 봐주고 생활도 해야 하고 어렵지 않습니까?

황은선: 어려운 것은 없는데 이 나이에 책가방을 매고 버스 정류장에 나가면 사람들 보는 시선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도 즐겁고 재밌고 학교가면 또 뭘 배울지 기대가 되니까 너무 신나고 좋습니다. 힘들다. 이런 것을 못 느끼고 오히려 방학에도 빨리 학교 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황 씨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따로 직업은 갖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경제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주는 생활비로 지내는데 미국 돈으로 하면 황 씨가 매달 받는 돈이 한 750달러가 됩니다.

황은선: 자립할 때까지는 국가 보조금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생활하는데 저는 그것이 작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지금 공부를 하다 보니까 알았는데 그것이 세금이고 남들로부터 들어오는 돈이기 때문에 어떻게 적절하게 쓰는가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돈이 많은 사람을 올려다보면 힘들겠지만 주변에도 저보다 힘든 사람이 많거든요. 어렵다고 생각 안 합니다. 제가 노력하는 만큼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아직은 어려운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이 학원비로 250달러 정도를 쓰고 전기세, 물세, 가스비, 보험비로 450달러 정도가 되니까 나머지 50달러 정도로 한 달 생활을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것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할 정도의 액수인데요. 황 씨는 그러면서도 학생들과의 모임에 나가 10번 얻어먹으면 한번은 사야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돈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아직 재혼을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황은선: 자존심이란 것 있잖아요. 지금까지 저는 자존심으로 살고 있는데 제가 원하는 남자 기준은 몸만 건강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살지 않겠나 싶습니다. 저희는 정에 굶주린 사람이니까요. 아이가 없으면 재혼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이 벌어 온 것으로 공부를 시키면 내 맘이 불편해질 것 같습니다. 또 상대방은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왜 내가 남의 자식을 공부시켜야해 하는 생각이 들 것 같거든요. 부부간도 권태기가 있잖아요. 남남이 만나 생활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겠나 싶어요. 제가 공부를 한 것도 내 힘으로 아이를 공부 시키고 학교 보내자고 그 마음으로 내가 대학에 갔거든요.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어 남한이 천국이라고 말하는 황은선 씨 처음에 한국에 갔을 때는 어둡고 답답하고 외부와의 접촉이 꺼려지면서 여기서 살 수 있겠는가 생각을 했는데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살다 보니 남한이 고향으로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또 딸을 위해 꼭 성공해야한다며 그 성공비결을 다시 마음에 새겨봅니다.

황은선: 저는 남한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인간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뭘 해도 뒤에서 금전적으로가 아니라도 나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평소에 아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황은선(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싶은 말 (0)
  • 인쇄
  • 공유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