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단숨에 오바마 관심 끈 탈북 여대생의 ‘한마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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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연설을 마친후 학생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세계의 지도자 중 한명을 만나 악수를 하고 대화까지 나눈다면 그 기억은 평생 갈지도 모릅니다. 남한에서 한국외국어 대학에 다니는 북한출신 대학생 이은주 씨는 최근 남한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손을 잡고 나눈 몇 마디에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은주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은주: 손이 굉장히 부드러우시고 키가 많이 크시더라고요. 저는 올려다보면서 얘기를 했죠. 키가 크고 잘생기셨어요.

탈북 여대생 이은주 씨가 기억하는 미국 대통령과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순간의 기억입니다. 이 씨가 미국 대통령을 남한의 수도 서울에서 그것도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 참석 중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 이라는 주제로 한국외국어 대학 재학생들과 귀빈들 앞에서 특별강의를 한 자리에서입니다. 이 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4학년 이은주 씨는 초대를 받았고 앞자리에 앉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이은주: 어떻게 하든 악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 비집고 들어가서 결국 악수도 하고, 진짜 가깝게 본 것이 처음이잖아요. 텔레비전에서나 인터넷으로 보던 모습인데 가까이서 대화도 나누고 하니까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고...

기자: 얼마나 사람이 많았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대통령과 악수를 하게 됐나요?

이은주: 700명 정도 넘게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강당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500명 정도 된다고 알고 있어요. 제가 북한에서 왔어요. 이렇게 얘기 하니까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제 얘기를 들으시더라고요. 왜냐하면 다 한국 사람이고 미국에서 온 사람인데 갑자기 어떤 여자 학생이 저 북한에서 왔어요 라고 하니까 딱 멈추시더라고요. 그래서 짧게 대통령이 너 온지 몇 년 됐냐고 물으시고...

기자: 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악수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이은주: 평상시에 인사하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했으면 악수만 하고 지나치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북한에서 왔어요. 웨스트 프로그램에 갔었어요 이렇게 하니까 멈추시고 그럼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됐어요? 물어보시고 그렇게 된 거예요. 아마 대학 4년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연설이 끝나고 이은주 씨가 있는 자리 앞으로 지나가셨단 말이죠?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주세요.

이은주: 상황이 좀 귀빈석 우측 옆쪽에 앉았고 저희 옆쪽에 대학생들이 앉아있었지요.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연단에서 내려오셨어요. 사람들이 박수치고 일일이 악수를 하시니까 사람들이 막 앞쪽으로 내려온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고는 악수를 하기 힘들었죠. 그래도 맨 뒤쪽에 앉은 분들보다는 좀 유리했죠.

기자: 사람이 많은 만큼 경호도 대단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은주: 경호원분들이 오마바 대통령 옆에 두 명 정도 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한국 대통령과의 만남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이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당당히 북한에서 왔다고 소리를 쳐서 관심을 유도하면서 악수를 했다는 것이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은 결코 아닐 겁니다. 너무도 갑잡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할 수는 없지만 이 씨는 그 순간이 작은 씨앗이 돼서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은주: 사실 오바마 대통령께서 오셔 강연을 하시기 전에 저희 학교가 들끓었어요. 수업시간에 어느 교수님께서 큰일을 하는 사람은 그냥 만나 뵙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접 그런 상황을 겪고 보니까 글쎄요? 직접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미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기회만 된다면 노력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은주 씨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초대를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은주: 탈북자가 한국에 많이 와 있고 북한에서 기아 때문에 탈북자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견해를 묻고 싶었어요. 그리고 탈북 대학생들이 외국에 나가 더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 달라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제가 참여했던 웨스트 프로그램을 계속 지속해 주실 수 없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고 있으니까 당황스런 순간에도 저 북한사람이고 웨스트 프로그램에 참가했어요 라는 말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 부분은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이 씨가 언급한 ‘웨스트 프로그램’이란 한국과 미국 정부 두 나라 정상이 2008년 합의한 것으로 한국대학생이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며 여행도 하고 또 미국 정부에서 추천한 기관에서 전문분야 견습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은주 씨는 웨스트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있을 때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잠시 근무한 학생이기도 합니다.

남한 생활이 6년째 접어드는 이은주 씨. 이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단계인데요.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도 많습니다.

이은주: 일단 제 꿈은 중국어 교사가 돼서 통일된 북한 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려면 교직 이수를 잘 해야 돼요. 그래서 성적 관리를 잘 하고 일단 교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취직부터 하려고요. 지금 다니는 학기를 마지막으로 한다면 8월 코스모스 졸업이죠. 한 학기 더 다닐 계획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격증이나 그런 것 준비 중입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 13살 되던 해 엄마 손을 잡고 국경을 넘었던 이은주 씨. 중국에서의 불법체류자로 있으며 불안에 떨어야 했지만 이제 남한 국적을 가지고 미국도 다녀왔고 그 후 자신감도 부쩍 늘었습니다. 미국식 표현으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이 말이 자연스럽게 혀에 감기니까 말입니다.

이은주: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죠. 다 누구나 힘들고 한데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니까 어떻게든 밝게 살도록 노력하고요. 저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라 주변분들 의견도 많이 구하고 싶고요. 대한민국 정부도 그렇고 민간단체 인사들도 통일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저희를 주목하고 도와주고 하니까 열심히 살려고 하고요. 주변에 아는 탈북대학생들이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 친구가 굉장히 많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대학생 이은주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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