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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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윤 씨
심하윤 씨
사진 제공 : 심하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사람마다 그 차이는 있겠는데요.  오늘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행복을 느낀다는 함경북도 출신의 전직 안내통역원 심하윤 씨의 이야기전해드립니다.

심하윤: 어느 추운 날 집에 들어왔는데 스위치를 올렸을 때 방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이런 것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져요.

2009년부터 시작한 남한생활. 지금도 문뜩문뜩 과거 북한에서 살던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심하윤: 옛날에 부엌에 불떼는 집에 살았는데 제가 잘 못했어요. 엄마가 중학교 다닐때부터 시켰는데 내가 불을 잘 못피웠어요. 엄청나게 구박을 했는데 어른이 돼서도 정말 불을 못피웠어요. 그런데 제가 불을 안피우고 이렇게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데 와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심 씨는 탈북해서 바로 그 다음해 남한 땅을 밟게 되는데요. 북한에서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국 관광객들이  하는 말과 또 관광 중 잘못 된 행동으로 인해 연대책임을 지게되면서 혁명화를 가게 됐던 겁니다. 심 씨는 혁명화를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찾았던 거죠.

심하윤: 대학을 졸업하고 안내통역원으로 일하던 첫해에 (중국 관광객들로부터)굉장히 많은 소릴 들었어요. 6.25전쟁은 너희가 먼저 일어키지 않았나?, 너희가 굶고 못사는데 너희  김정일은 뭘 먹는지 알아? 이런 거요. 너무 많이 들으니까 정말인 것 같고 배신감도 들고요.  일을 4년정도 하다가 2008년이 되면서 일에 회의감이 일었어요. 너 잘못했으니까 혁명화가!  이런 사건도 있었고 여러가지 복잡한 사건이 있으면서 그냥 더러워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이층집 큰 저택에서 호화롭게 살고 멋진 스포츠카를 다고 다니면서 백화점을 이용하는 생활이 남한의 보통 삶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북한에서 본 드라마에서 모두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심하윤: 와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평민들의 삶이 그렇게 화려하진 않았어요. 제가 임대아파트를 대전에 받았습니다. 8평인가 되는데 좁은 방이고 지은지 오래된 집이라 너무 작고 부엌에도 때가 많고 해서 상상이 와장창 깨졌다고 해야되나? 국민임대는 조금 형편이 양호한데 대전 쪽은 당시 영구임대아파트라고 그걸 줬어요. 그리고 바퀴벌레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렇게 시작됐던거 같아요.

청취자 여러분이 이 부분만 들으면 남한정부가 정착금도 주고 집도 준다고 하더니 막상 탈북자가 가면 홀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심하윤: 아니요. 그건 아니고 우리가 오면 임대아파트를 무상으로 주는데 임대아파트가 오래 된 것이고 그 집이 너무 오래 비어있다보니까 다른 집의 바퀴벌레가 모였었나봐요. 임대보증금을 정부에서 주는데 그것만 해도 고마운거죠. 어떤 사람은 좋은 집에 가요. 쾌적하고 17평정도  가는데 어떤 사람은 영구임대를 받아서 이런 곳에 오고… 처음부터 만족할 수는 없었어요.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면서 자괴감이 들었던 거죠. 북한에서는 내가 저 사람보다 잘산다는 기준으로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여기 오니까 하층인거예요. 돈을 벌 수 있는 뭔가가 없는거예요. 식당일을 내가 어떻게해? 이런 생각이 드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거예요. 무슨 일을 하까 고민을 하다가 …

결국 모르니까 배워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진학을 결심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돈 버는 방법부터 알아야 하고 그런 지식을 대학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런 결심이 섰던 당시는 대학입학을 위한 접수가 끝난 상태여서 다음해에 입학 하게 됩니다.

심하윤: 그래서 가기 전에 컴퓨터를 배워야겠다 해서 직업훈련학교를 가서 2월부터 8월까지 전산회계, 전산세무, 컴퓨터 배우면서 6개월을 보냈어요. 자격증 따고요. 그리고 서류를 2010년에 준비해서 대학교을 갑니다.

기자: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심하윤: 충남대학에서 경영학부 회계학과요. 그리고 대학 4년을 졸업했습니다.

분명 대학졸업을 하고 나서 그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달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세상을 보는 자신의 눈이 전에비해 넓어지고 자신감이 생긴거죠.

심하윤: 대학졸업 하고 생활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지금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남한이 학벌위주라고 하는데 능력이 있는 사람도 취업을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탈북민일수록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공부를 하면서 지식을 배우는 것도 있지만 남한사회를 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관계 시스템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4년동안 사회생활을 대학안에서 하다보니까 적응이 빨랐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사투리를 어떻게 빨리 바꾸셨어요 하는데 저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심하윤 씨는 대학생활 중 남편을 만났고 슬하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하는 일은 강사인데요. 남북한에 모두 살아봐서 안보교육, 통일교육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과 일반인 대상으로 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식으로 말하면 준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입니다.

기자: 가정주부고 학생이면서 일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있다면 뭘까요?

심하윤: 애로사항은 애기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시어머니가 봐주시니까 괜찮아졌고요.  항상 시간에 쫓기고 부족한 것 같아서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건지 가끔 착각을 할 때가 있는데 경제적 상황이 저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같이 병행하기에 힘듭니다. 저녁강의를 듣고 와서 다음날 내가 강의할 것을 준비해야 하니까  항상 잠이 부족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만 참자 이런 심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자: 학기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심하윤: 올해 말 논문을 쓰면 졸업입니다.

대전에서 서울로 대학원을 다니며 또 전국 각지로 강의를 다니며 자유인의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통수단은 제일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합니다.

심하윤: 어느날 딸이 비행기 타고 싶다고 해서 제주도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북한에서는 비행기를 함부로 탈 수 없는데 강의를 갈 때 자주 비행기를 타면서 그때마다 신분증만 들고 비행기를 타지만 너무 감사함과 황홀한 감정에 갑자기 초심으로 돌아가면서 여기 왔으니까 이런 것을 누리지 이런 마음이 들어요.

항상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심하윤 씨. 그는 오늘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기회가 돼서 꼭 북한 주민을 위해 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답니다.

심하윤: 저의 바람은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려도 북한하고 통일은 아니어도 북한 문이 열려서 왕래만이라도 이뤄지면 북한주민을 상대로 컴퓨터 교육을 하면서 뭔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심하윤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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