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자기하기 나름이예요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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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정보를 종이쪽지에 적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정보를 종이쪽지에 적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보통 보면 사랑받고 사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도 압니다. 누군가에게 받은만큼 베푸는 방법도 안다는 말인데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30대 후반의 회사원 박나연(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박나연: 힘드니까…먹고 살기 힘드니까 사실은 나만이라도 중국가서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나왔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동생도 그때 군대를 가고 엄마와 살았는데 힘들었어요.

나진선봉에 살던 박 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북한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거쳐  2005년 남한으로 갔습니다. 박 씨는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즉 자격증 취득에 나섭니다.

박나연: 지금 여기 사람들은 학원을 다녀도 컴퓨터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강사가 얘기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거꾸로 이해를 하는 것 있죠. 문제를 반대로 인식하고 있더라고요.

기자: 설명을 했는데 거꾸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박나연: 전산 세무회계는 차변과 대변 이런 것이 있는데 나는 좌측에 갈 것을 우측으로 인식을 다르게 하는 것 같아요. 원장님이 그러시는데 우리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바로 사무직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런 경력이 없기 때문에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은 구직자들이 첫번째로 하는 일입니다. 박씨도 남한에 가서 처음했던 일은 단순노동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박나연: 너무 힘들었어요. 물류센터는요. 일하는 것이 거의 노가다에요. 큰짐이 택배로 오면 분류해서 진열을 하고요. 저는 큰 도매상에서 일했거든요. 허리 아프고 다리 쑤시고 그랬어요. 낮에 뜨거우면 땀뻘뻘 흘리고 집에 오면 축 처지고 해서 학원을 다녀서 자격증 따서 경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큰 도매상이라 선풍기나 에어컨(냉풍기)을 틀어놔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류 창고에서 짐을 옮기다 보면 땀이 비오듯 흘렀고 그런 생활을 2년 반동안 합니다. 그리고는 경리 자격증을 취득해 새 직장으로 옮긴겁니다.

박나연: 1년이 넘었습니다.

기자: 경리일을 해보니 책상에 앉아서 하는 편한 사무직이던가요?

박나연: 경리로 일하는데 우리 회사가 골판지 회사입니다. 원지를 제지 공장에서 받아서 다른 거래처에 파는 건데 주문이 들어오면 입력 시키고 거래명세표, 세금 계산서, 월 마감하고 그런 겁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젠 1년이 넘어서 많이 적응해서 괜찮아요.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 실수는 안 했어요.

북한에서 간 탈북민이 남한직장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많은 경우 시키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손에 익기 때문에 할수 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문화적 차이로 다툼이 있고 이직하는 탈북민이 꽤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도 자기 하기 나름이란 것이 박 씨의 말입니다.
박나연: 내가 북한 여자라고 해서 내가 할 일을 못하고 그런 것은 없었거든요. 내 일을 확실하게 하니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성격도 좋아서 언니들 하고 잘 지내고요. 그래서 날 북한사람이라고 해서 없이보고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일단 자유가 있어좋고 내가 일한만큼 벌고요. 그것이 얼마나 좋아요? 북한에서는 조직생활하고 이런 것이 엄청 많잖아요.

단순노동 일을 할 때는 월요일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또 어떻게 한주를 일하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몸이 힘들었고 육체적으로 고된마큼 정신적 여유도 갖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직으로 옮기고 나서는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박나연: 똑 같은 일이지만 첫째는 몸이 편하고 앉아서 시원한 바람 쐬면서 하니까 근무환경이 좋죠. 예전보다는

기자: 근무 시간은 똑같죠?

박나연: 아니요. 근무 시간은 예전에는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했어요. 그런데 점심 시간이 없었어요. 지금은 8시 반에 출근해서 5시 반에 퇴근이예요. 그리고 점심 시간이 한시간 이죠. 전에는  그냥 밥먹자 마자 카운터에서 일해서 점심 시간이 없어고 밥 먹고 바로 양치하고  금방  일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또 달라진 것은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는 것인데요. 예전에는 일을 하면 수당을 받았지만 지금은 일을 안해도 정해진 급료를 받기 때문에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박나연: 그렇죠. 예전 보다는 빨간날 다 놀고 월급쟁이잖아요. 휴가비도 나오고요. 예전에는 회사는 노는 날이 없으니까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놀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공장이 노는 날 휴가를 가는 거예요. 전에는 명절비, 휴가비가 없었죠.

박 씨는 남한 남성과 결혼해 둘 사이에는 딸도 하나 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니 당연히 잘 정착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생각은 여느 때는 생각을 안 하지만 같은 탈북자를 만나보면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니 더 잘 알 수 있답니다.

박나연: 지금 8-9년 된 여자도 보니까 북한 남자하고 사니까 말투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북한 사람만 만나니까요. 난 신랑이 한국 사람이니까 친구들도 다 한국 사람이고 부인도 한국 사람이라 나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여기 적응 하려고 하고 예전 보다는 말을 배우려고 하니까 제 느낌에도 말투도 많이 달라진 것같아요.

여자들이면 어디서나 경험한다는 시어머니와의 갈등. 이 고부간의 갈등은 전세계 어느나라 여성이나 모두 경험하는 인류공통의 가정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 씨는 남한 시어머니와 그런 갈등은 없는 듯 보입니다. 그것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란 말이겠죠?

박나연: 점심에 어머니한테 삼계탕 드셨나고 하니까 닭 사러도 못 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퇴근 하고 마트에 가서 영계를 사고 대추, 밤, 전복 넣고 삼계탕을 압력솥에 넣어 끓여서 같이 먹고 온 거예요.

박 씨가 힘들때면 듣고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박나연: 홍시라는 노래 있잖아요. 울엄마 홍시라고 있어요.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그런 노래가 있어요.

노래: 생각이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박나연: 은근하면서도 언니들도 너한테 딱 어울리는 노래다 이랬어요. 가을이면 홍시가 열리고 나를 혼내던 엄마가 생각나고…그 노래가 제일 좋더라고요.

7살 딸아이를 둔 박나연 씨는 이렇게 노래를 들으며 자신을 낳아주신 엄마를 그리워 하고 자신의 딸을 보면서 내일을 설계합니다.

박나연: 33평짜리 집에서 딸 방도 아이자기하게 예쁘게 꾸며주고 전자제품도 신제품으로 사고요. 여유있게 일도 다니면서 살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박나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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