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가서 목숨 구했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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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탈북민 고령자 세대를 방문한 탈북자 정착 교육 기관 하나원 교육생들이 탈북민을 만나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탈북민 고령자 세대를 방문한 탈북자 정착 교육 기관 하나원 교육생들이 탈북민을 만나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간 탈북자의 연령대를 보면 그 분포가 폭 넓습니다. 갓난 아이때 무모의 등에 업혀서 함께 간 경우도 있고 환갑이 지나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사는 분도 상당수가 됩니다. 오늘은 82세의 전혜성(가명)할머니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전혜성: 탈북한 것이 2002년인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전혜성 할머니는 이제는 북한에서의 기억은 가물가물 할정도로 세월도 흘렀고 기억도 희미해졌습니다. 힘든 시절 살아남기는 했지만 할머니는 탈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탈북과정의 후유증이 남한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혜성: 고난의 행군도 거기서 먹을 것이 없어서 행상을 했는데 배급은 없고 온 식구가  살아야겠는데 굶어 죽을 수는 없고 그래서 내가 농촌을 다니면서 독을 만들어서 메고 다니면서  라진선봉 어디 안 다닌데가 없습니다. 팔아서는 갱냉이도 사고 1936년생인데 북한에서도 감옥 생활하면서 맞고 골병이 들어서 지금 여기 한국에 와서 병원에 입원해서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매를 맞은 어혈이 있어서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는데 자꾸 폐렴이 오는데 내가 북한에 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두번째 맞이한 삶. 남한에서의 생활은 할머니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놨습니다.

전혜성: 북한에서 한국에 올때 처음에는 친일파나 반역자라고 해서 한국 사람은 다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까 따뜻하고 부드럽고 모두다 가족같고 …먹을 것도 많고 입을 것도 많고…한국에 오니까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알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북한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총살하고 죽이고 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을 심장 깊이 맞이할 수 있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남한에 도착해 생활한지는 9년이 됩니다. 중국에 살다가 70살이 넘어서야 남한사회를 접하고는 적응하기에 바빴답니다. 제일 좋았던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전 할머니. 일요일 마다 교회에 가서 찬송을 부르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기쁨이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 남한생활이 좋다고만 하는데요.

전혜성: 아이구 너무 좋습니다. 너무 부드럽고 자유롭고 첫째는 불이 환합니다. 북한에는 전깃불이 없습니다. 그리고 남한은 화장실이 잘 돼있고요. 북한에는 화장지가 없어서 큰 걱정입니다. 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한 번 쓰고는 씻고 한 번 쓰고는 씻고 이렇게 했는데 여기는 화장지가 있으니 과연 기쁘고 좋습니다.

보통 탈북자들이 남한에 가면 문화적 충격과 그리고 같은 조선말인데 잘 통하지 않는다고들 적응의 어려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 할머니는 매사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그런지 어려움을 못느낀다고 하네요

전혜성: 아니 말엔 문제가 없습니다. 말은 서로 통하게 됩니다. 탈북자 친구들도 많고 하니까.  처음에는 길도 잘 모르고 말도 몰라서 무서워서 못 다녔는데 저를 친구들과 한반에 넣어줘서 따라 다녔습니다. 괜찮습니다

같은 탈북자 모임에 참석하면서 나들이도 다니고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남한사회를  알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답니다. 물론 일을 하지 않았기에 경제적 능력은 없었지만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도 없었습니다.

전혜성: 한국에 와서 이북 5도청, 광화문까지 가고 거기 가면 노래방도 있고 여러 반이 있는데  3개월 다니면 24만원 백화점 카드를 줍니다. 그리고 5년 동안 나라에서 돈을 줬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새터교회에서 꽃놀이도 봄에 차타고 다니고 그랬습니다.

기자: 할머니 건강이 안좋으신데 외출하는 것은 힘들지 안으세요?

전혜성: 네, 운동도 하고 나가 걸어다닙니다. 복지관도 버스타고 가고요.

남한에는 사는 지역마다 복지관이 있고 그곳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놀이교실을 운용합니다. 예를 들어 서예교실에서 붓글씨를 배운다든가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한다든가 하는데요. 이런 것은 각 연령대에 맞게 시설기관이 자체적으로 합니다. 할머니가 했던 노래교실에서는 남한 인기 가수의 노래도 틀어주고 배우기도 합니다.

기자: 할머니 노래는 어떤 노래를 잘 부르세요?

전혜성: 이젠 목이 고장나서 목을 수술해서 소리가 잘 안나서 노래를 못부릅니다.

기자: 그러면 듣고싶은 노래는 있으세요?

전혜성: 듣고 싶은 노래요? 중국에서도 나훈아 노래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 잠시 가수 나훈아가 2017년 발표한 모래시계란 노래 잠시 들어보시죠.

노래: 깍채깍 자동시계는 어김없이 가지만 내깔 겨둔 모래시계는 세월 멈추고 있네 세월아 가는 저 세월아 사정없이 가는 세월아 뚜벅뚜벅 나는 걷는 데 뛰어 가네 세월은 힘도 좋아 세월은 …

기자: 집에 계실 때는 뭐하고 소일하세요?

전혜성: 드라마 보죠. 녹음기 틀고요

기자: 어떤 드라마 보시는데요?

전혜성: 요즘요? 이름없는 여인, 불어라 미풍아,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다 적어 놓고 다시 보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는 드라마 보고 그러지 않으셨잖아요.

전혜성: 북한에는 어디 드라마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국에 오면 몸이 편하고 자유롭고 전기도 있고, 먹을 것도 많고, 입을 것도 많고…입을 것이 너무 많아서 보따리에 쌓아 놓고 입지도 못하고 1년2년 그냥 지냈습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스럽고 생활환경이 좋아도 마음이 불안하고 주변의 간섭이 있다면 행복을 느끼기 힘들텐데요. 전 할머니는 마음의 평화를 찾게돼서 기쁘답니다.

전혜성: 정말 처음에는 태어나 가는 길이 어딘가 했는데 이젠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기와집에 산다 하지만 다 굶어 죽었는데… 여기선 하나님을 접하게 된  후부터는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그 누구도 따가지 않고 보지도 않고  지상낙원입니다. 좋습니다.

이런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은 딸과 손녀와 있는 집을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랍니다.

전혜성: 우리 집이 작아서 집이 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14평 두칸인데 손녀 대학공부하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텔레비전도 밤에 못보고요. 집을 넓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전혜성(가명)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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