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노인이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5.10.06
old_college_b 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열린 고려인 노인대학 3기 졸업식에서 1,2기 졸업생들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이제 환갑잔치를 한다고 하면 남한에서는 이상한 사람취급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수명이 늘어 100세까지 사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왠 환갑잔치냐는 거죠.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는 탈북여성 이호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호희: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지 하고 아련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사람요. 사회를 위해 뭔가를 남기고 가야죠.

최근 남한 언론에 소개된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보고 이 씨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처럼 한세상 멋지게 살고 싶다고 얘기한 것인데요. 어떤 내용인가 하니, 71세로 생을 마감한 생물학과 교수 이야깁니다. 학생들에게 엄하기로 소문이 났던 이 분은 항상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을 정도로 평소에 근검절약하며 자신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대 괴짜 교수로 알려진 분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학문연구에 전념하다 대장암에 걸립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마지막 가는 길에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했고 시신마저 해부학 연구에 써달라며  몸까지 모교 의과대학에 기증한 겁니다.

이렇게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간 분을 닮고 싶다고 이 씨가 말한 겁니다. 이호희 씨는 반 백 년은 북한에서 살았는데요.

이호희: 저는 50세 됐을 때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다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탈북때에는 이남사회에 대한 의심과 반심반의 이런 마음이었는데 여기서 사는 동안 이남사회가 북한에서 생각했던 그런 사회가 아니구나 잘못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나도 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어요.

북한에서 당원이었던 이 씨는 남한에 가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는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호희: 제가 어르신들을 진심으로 잘 대해주고 있어요. 어머니를 일찍 잃었는데 그런 그리움도 있고요. 솔직히 이 일을 4년 정도 해보니까 일로 생각하면 하기 힘들어요. 봉사정신이 있어야 해요.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하는 말이 땀 흘리면서 목욕시켜주는데 치매어르신이 막 때려요. 그걸 보고 제가 물어봤어요. 맞으면 기분이 어때요. 그랬더니 직업이라면 일 못해요.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맘에 확 와 닿는 거예요.

노인요양원처럼 나이 드신 어르신을 매일 접하게 되는 일터도 없을 겁니다. 대부분은 혼자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환자로 가족이 돌볼 수 없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이 노년을 보내는 시설입니다.

이호희: 어르신이 47명 정도 되는데 평균 나이가 75세 이상입니다. 99세까지 있어요. 북한에서는 70만 넘어도 다 살았네 하는데 여기는 한창이네 젊었네,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하고는 인식이 달라요.

사람이 늙고 병들어 기력이 쇠하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물론 가족이 가까이서 돌봐드리면 제일 좋겠지만 다들 경제생활을 해야 하고 일하다보니 하루 종일 옆에서 끼니를  챙겨드리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겁니다.

이호희: 비참하지 않아요. 돈이 없어도 국가에서 생활을 보장해 주잖아요. 그리고 올해부터 법이 바뀌어서 자녀 수입이 400만원이 안 되면 국가에서 보장을 해주고 있습니다. 정말 사회복지가 잘됐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북한에는 복지란 말이 없잖습니까? 그리고 대학에 가도 사회복지과에 학생이 제일 많아요. 사회에 나와도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고 나이 먹으면 직업을 찾기 힘든데 이제는 복지시설이 늘어나 60세 이상 되는 여성도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요양원에서 일하는 여성의 평균 나이는 59살 이상입니다.

인생은 60부터란 말이 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남은 인생을 재미나게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이호희: 그 사람들이 노후 생활을 더 잘살기 위해 노인대학을 다니는 겁니다. 젊어서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사회가 발전하니까 사회문화 수준을 따라가고자 배우는 겁니다. 더 좋은 생활을 위해 학교엘 가는 거죠.

기자: 학비는 본인부담입니까?

이호희: 아닙니다. 학비는 무료입니다. 노인대학 학비는 국가가 부담하는 겁니다.

기자: 일반대학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노인대학에서는 뭘 배우는 겁니까?

이호희: 주로 자기 취미에 관련한 지식을 배웁니다. 예를 들어 낚시가 취미라고 하면 낚시 도구를 고르는 방법, 물고기 성질에 관한 것 등 취미생활이 필요한 상식적인 것을 배워주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고 있어요.

남한에는 대중교통이 경로우대라고 해서 무료기 때문에 낮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젊은이는 일터에 있고 청소년은 학교에 그리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일을 하기 때문에 노인분들 많이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차를 타면 자리다툼도 벌어집니다.

이호희: 우선 같은 나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자기 몸을 가꿀 줄 아는 사람 또 유머가 있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모을 수 있으면 멋진 노인인 거죠. 버스에서 70대 늙은이가 올라와서 앉아있는 80대 늙은이에게 젊은 게 일어나라 이렇게 말한 것이 얘기 됐었는데 이것만 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예요. 자기 몸을 가꾸면 진짜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거죠.

머리도 검게 염색을 하고 옷도 젊은 사람처럼 입고 다니니 잘 꾸민 노인은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이 씨는 요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올해 3학년으로 1년 반만 더 다니면 대학을 졸업하는데요. 대학공부는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있어 배울점이 많다고 합니다.

이호희: 북한에서 토론을 하고 생활총화를 하면 딱 틀이 있어요. 말하자면 당의 유일사상원칙에 근거해서 뭘 잘못했다 이런 식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10대 원칙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10대 원칙을 인용하면 무슨 말을 하겠구나 다 아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원칙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보고 생각한 면을 얘기 하는 겁니다. 한 문제를 놓고 다각적으로 보고 문제의 본질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 생각이 달라 의견충돌이 있기 다반사인데요.

이호희: 충돌이 일어나면 각자의 생각이 다 옳을 수 있죠. 각자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니까 답이 똑같을 수 없다고 볼 수 있죠.

북한에서 50년 그리고 탈북해 중국에서 2년, 남한생활이 5년입니다. 어디에서 살던  잘 먹고, 잘 자고, 마음이 편하면 그곳이 천국인데요 이 씨는 그런 천국에서 멋지게 노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호희: 저는 벌어 놓은 돈은 없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북한 출신이 남한생활에서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고 아름답게 살다갔다 이 여성은 통일이라는 희망 속에 어르신들 돌보면서 갔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 살고 위로해주고 생각해주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호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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