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고향] 나를 존중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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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연세로에서 서대문구 주최로 열린 대학축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투자. 지금 하는 대학공부와 앞으로 박사과정까지는 훗날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탈북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여성 최은희(가명)씨 인데요. 오늘은 훗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지금이 가장행복하다는 최은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최은희: 좀 더 뭘 해야 하는데 못 했구나... 바쁘게 살아서 결혼에 대해 신경을 못 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모임에 참가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뻐해주고 하니까 사는 것이 행복해요

함경북도 출신의 올해 40대 초반의 최 씨는 지금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한 생활이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갑니다.

최은희: 탈북은 1999년 했고 중국에서 4년 정도 있다가 남한에 왔습니다. 지금은 내가 말을 안 하면 탈북자인지 모를 정도로 적응해 살고 있습니다.

기자: 대학전공은 뭐고 대학원에서는 어떤 것을 공부할 계획입니까?

최은희: 지금 다니는 대학은 서울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이고 국제통상학 전공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무역학과였는데 경제, 경영, 무역학을 통합해 국제통상학으로 바뀐 겁니다. 내년2월 졸업인데 공부를 더하고 싶어서 북한대학원에 원서를 내서 합격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남북경협과 남북경제협력을 주제로 논문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4년 남한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중국생활 중에 익힌  언어를 가지고 무역회사 회사원으로 남한사회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최은희: 회사는 2005년 1월부터 했는데 전자회사에서 수출입 관리일하면서 중국 연수생 들어오면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1년간 일하면서 한국에 살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을 느껴 2006년 진학해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자: 남한 대학생보다 10년이 늦고 학비 문제도 있는데 일 안하고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었나요?

최은희: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생활비는 벌어 쓰고 학비도 충당을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국가근로장학생이란 제도가 있어서 시간당 2천원 시급을 받고 학기 중에는 1주일에 20시간, 방학에는 40시간 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또 시간이 생기면 번역일도 하고 여러 가지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남한정부는 만 35세 이전에 탈북자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면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는데 최은희 씨는 35세 생일 이전에 대학에 들어가 비싼 등록금을 내진 않았지만 생활비는 벌어 써야 했던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였기에 그리고 남한 학생보다 10살 정도는 많은 상태에서 시작한 대학생활이어서 최 씨는 매순간이 소중했다고 합니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신나게 하는 대학공부였지만 영어 공부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최은희: 공부를 하고 싶어 들어갔고 각오가 있어서 괜찮았는데 좀 어려웠던 것은 전공이 영어수업으로 진행돼서 휴학 하고 영어 공부도 했는데 나머지는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공부하는 것이 재밌어서 즐겁게 학교 생활했습니다.

최은희 씨에게 북한 청취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남한서의 대학생활을 짧게 요약해 들려준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설명을 부탁해봅니다.

최은희: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 여러 과목이 개설되니까   철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북한에선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남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움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덧붙이길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도서관 같은 그런 곳이 아니고 청춘남녀가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활동하는 넓은 운동장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최은희: 개강, 종강 파티가 있고 수업 때 조별 발표도 많아서 아이들과 많이 어울렸고 이를 통해 남한의 20대 대학생들의 생활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돼서 좋았습니다. 같이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면서 6년이란 세월을 전혀 세대차이 느끼지 않으면서 대학교정에서 별 무리 없이 재밌게 보낸 것 같습니다.

최은희 씨는 요리를 즐겨합니다. 집에서도 식사 시간만 되면 뭘 해먹을까 고민하는 것 또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인데요.

최은희: 김치찌개, 된장찌개, 닭도리탕, 찜닭, 순두부찌개, 불고기...

기자: 혼자 살면서 그런 요리들을 다 해먹습니까?

최은희: 저는 그렇게 해요. 저는 혼자 먹어도 음식해서 접시에 담아서 상에 올려 먹습니다.

기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혼자 먹는 양을 맞추기 힘들 텐데요.

최은희: 조금씩 해서 그렇게 먹어요. 안 그러면 제가 초라해지니까 집에 있어서 밥 챙겨먹고 남들처럼 김치통 꺼내 그냥 먹고 그러지 않고 접시에 차려서 먹습니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니까.

여가 시간에는 책을 보고 영어공부하고 운동하고 음악을 좋아해 음악도 듣고 또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보러 다니면서 재밌게 산다는 최은희 씨.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공부할 것이란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그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는 거랍니다.

최은희: 남북은 통일을 안 하면 안 되는 운명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남북이 왕래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대학원은 취직을 해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북한 관련된 기관에서 일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최은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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