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길: 김선태 목사 올해 49회 막사이사이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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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무료 안과진료와 개안수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찾아준 남한 서울에 있는 실로암 안과 병원장 김선태 목사가 사회봉사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49회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습니다. 57년간 자신도 맹인으로 살아 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빛을 찾아 준 김선태 목사의 얘기 들어봅니다.

저는 6.25전쟁 때 실명을 했어요. 전쟁 때 초등학교 4학년 때 실명을 하고 그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실명한지 꼭 57년이 되었습니다.

김 선태 목사가 기업체들로부터 도움받아 1986년 서울에서 실로암 안과 병원을 설림한지 한 5년쯤 지나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모금활동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위해 처음 만났을 때 ‘와! 저 그림 멋있다’ ‘오늘 입은 옷 색깔이 잘 어울리십니다’ 라는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던져 맹인 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사님 어떻게 잘 아세요? 라고 물었더니 제 눈에는 잘 보입니다, 하면서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잃지 않고 있는 여유와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거의 일생을 봉사 활동을 펼쳐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 에게 빛을 찾게 해준 세월이 벌써 21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모금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개안수술을 받고 시력을 눈을 뜬 사람이 27.600여명 됩니다. 또 무료안과진료를 예방하고 눈 안과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약 35만 명이 됩니다. 실로암 안과에다 ‘실로암 아이 센터’를 건립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몽골 미얀마 쪽으로 맹인들을 눈 치료도 해주고 개안 수술도 하려고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벽돌 한 장 천원, 벽돌 5장 10장 등 그러면 10달라 정도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2년 후 완공될 아이 센터, 즉 눈 치료 수술소가 아시아 지역 맹인들을 위한 진료와 빛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실로암 안과 병원은 3곳에서 운영되면서 진료와 수술은 물론 교육까지 병행하는 병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 합니다.

중국 연변에 있고 서울 둔천 동 에 있고 또 하나는 40인승 리무진 버스에다 병원을 차려서 농촌, 어촌, 섬 지역 남한 정착촌 교도소 감호소 변두리 지역 맹아학교 1년에 40차례 나가서 현장 진료하고 수술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 800-1000여명에 빛을 주고 또 1년에 진료를 받고 실명을 예방하는 경우도 한 1만 5천 여 명이 넘습니다.

중국 연변의 병원에서는 조선족들과 중국인들을 위해 무료 안과 치료와 함께 수술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병원을 세우고 1년에 얼마씩 보조해 주면서 우리 의료진이 1년에 한번 씩 가서 10일 동안 수술을 하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한번 가면 100여 명 넘게 수술을 하고 와요. 기자 질문) 그러면 연변 지역의 탈북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답)탈북자들까지는 그렇게 아마 손이 안 닿는 것 같아요.

김 선태 목사는 북한에도 안과치료를 필요로 하고 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진료버스인 움직이는 안과병원을 기증 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4년 전에 우리가 보냈습니다. 평양에 보냈는데 사실 그 후 우리가 들어가서 기계도 사드리려 하고 또 버스로 어려운 지역을 다니기 위해 의사를 파견하려고 했는데 중국 까지 갔다가 비자를 받지 못해 돌아왔어요. 그래서 버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북한에는 버스만 간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북측에서 초청장을 발급해 주면 언제든 들어가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해 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북한에도 역시 안과치료나 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이 많을 것으로 그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말이죠 폐쇄된 세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보를 알 길이 없어습니다. 많겠죠.... 그리고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북한방문기회에 저를 함께 모시고 오겠다고 고위층에 말을 했데요 그러니까 고위층에서 하는 말이 앞 못 보는 분이 와가지고 그냥 이렇게 나타나게 되면 북한의 위신 문제이기 때문에 못 온다고 해서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 못 갔습니다. 하하하....

김 목사는 지금도 한국은 물론 아세아 지역에 안과 치료와 수술을 요하는 환자가 많다며 원인 모를 이유도 여러 가지지만 제일 많은 것은 백내장 이라고 지적합니다.

당뇨라든가 공해문제 혹은 과다한 술 혹은 원인모를 병들도 많아요. 주로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백내장입니다. 백내장은 사실 어려운 병이 아닌데 역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등한시 하고 무관심하다 보니까 실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실명위기에 있는 사람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치료를 받는다면 현대 의학으로 얼마든지 시력회복이 가능하다고 얘기입니다.

0.2 이하의 시력을 가진 사람들을 약시자 라고 하는데 이를 치료해야지 치료하지 않으면 역시 실명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명하지 않도록 예방사업도 하고 있어요 7:08 원인은 유전성도 있고 텔레비전을 많이 보고 인터넷 컴퓨터 많이 하고 그런데서도 오는 병이 있어요. 그래서 사실 현대 문명이 좋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도 줍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가능하게 치료가 됩니다.

한 사람의 개안수술로 빛을 찾아 주는데 30만 원 정도가 듭니다. 30만원의 금액은 수술할 때 시력이 더 잘 나오도록 하는 넣는 수정체와 재료비 그리고 마취비 등의 비용입니다. 이런 비용 마련을 위해 교회 자선 음악회나 일일 찻집 바자회 등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의 개안 수술을 돕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올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부분 수상자로 선정된 김 목사는 이번 상이 자신의 노력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고 극구 겸손해합니다.

상은 후원자들의 것입니다. 이 상을 그분들에게 바칩니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더 낮은 작은데 부터 섬기겠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빛을 줄 것입니다.

그는 막사사이 상 수상 상금으로 받은 4.500만원, 5만 달라는 전액 지금 건립중인 연건평 2천 4백 평 인 지하 4층 지상 9등 규모의 ‘실로암 아이 센터’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김 목사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1%의 가능성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돈이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부모도 없으니까 모든 것이 힘들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당시 전쟁 때라 맹아학교가 아니고 일반 중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교과서도 없고 (점자교과서 ) 가난하고 해서 아주 힘들었어요. 99% 불가능했지만 1% 1%의 가능성을 하나님께 맡겨서 되었어요.

김 목사는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에 있는 메코믹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고 그래서 주변에서는 남자 헬렌 켈러로 부르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목회학 박사에다 명예 철학박사 또 명예 신학박사 저를 보고 많은 분들이 한국의, 아세아의 남자 헬렌켈러 라고 하고 있습니다.

막사이사이상은 1957년 필리핀 전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의 공적을 추모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국제적인 상으로 해마다 정부 공부원, 공공사업, 국제협조증진, 지역사회지도, 언론문화 등 5개 부분에 걸쳐 상금 5만 달라와 메달을 수여합니다. 그동안 한국인으로서는 정치인 장준하, 교육자 김활란, 그리고 대북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의 법륜스님등이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