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이 배여 있는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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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북의 문화기행 아궁이 편입니다. 아궁이 하면 온돌의 따스함, 불을 지필 때 메케한 나무 타는 냄새 자작자작 타들어 가는 벌건 싸리나무의 온기 그런 것이 한순간에 쫙 들어옵니다. 우리민족의 생활 문화에서 뺄 수 없는 아궁이 이 아궁이가 던져주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봅니다.

이정선이란 가수입니다 노래 제목은 ‘산사람’이고요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 “산이 좋아 산에 살겠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사실 남한에도 요즘 산에서 큰 울창한 나무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혹시 지리산 아시나 모르시겠네요?

6.25 전쟁 때는 북으로 퇴각하든 북한군들이 남아서 남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상처가 많은 산이죠.

그런데 이 지리산 꼭대기 노고단에까지 자동차로 타고 오를 수 있는 길이 생겨서 당시에 환경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많은 반대까지 했지만 결국 길은 뚫렸습니다. 이렇게 길이 뚫리면서 훼손 된 나무들은 제가 특별히 따로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한에서도 산에서 나무를 구한다는 일,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산림을 보호 한다는 정책 때문에 산에 들어가서 도끼로 나무를 베어 온다는 일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 나무 얘기를 길게 드리는 이유가요, 지금 소개해 드릴 아궁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한에서 사실 아궁이란 얘길 하면 순수 우리말인데도 “저사람 저거 60-70년대에 살다가 지금 잠에서 깨어나 이 도시에 내려왔나” 라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아궁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중 하나는 남한에는 요즘 어지간한 시골에만 가도 아파트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촌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가마솥 얹혀 놓은 아궁이 있는 그런 부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않고 시집을 갔던 김영희씨는 시집가서 처음 아궁이에 밥을 짓던 때가 그립습니다.

김영희: 할 줄을 몰라서 처음 가서 밥을 다 태웠지 나무를 고만 때고 뜸을 들여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탄 밥을 먹는 적이 있지 식구들이 다...지나고 보니까 그때 탄 밥을 먹든 추억과 가마솥의 밥맛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아궁이 장작불이 활활 뜨겁던 그 아궁이는 이제 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시골도 도시의 아파트처럼 가스가 들어가고 서서 주방 일을 할 수 있는 서구식의 부엌으로 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궁이란 말이 도시에서건 농촌에서건 듣기도 어렵고 또 아궁이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립기는 하지만 아궁이가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살게 되었습니다.

김영희: 부엌이 개조되어서 우선은 먼지를 안 먹고 시간도 많이 절약이 됐고 생활하기가 편해졌죠.

그 어두컴컴한 부엌 안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느라 번졌을 그 메케한 냄새가 배어있는 화려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그 공간에서 어머니와 자식 그리고 어머니와 동네 아낙네들의 삶의 얘기와 가족 얘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우리 한민족에게는 정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곳이 부엌이었다고 박승후씨는 말합니다.

파리가 새까맣게 앉은 광주리, 거기에 배적삼을 들추면 보리밥이 까맣게 있었습니다. 보리밥은 쇠그릇에 담지 않고 공중에 고무줄로 메달아 놓은 광주리에 퍼놨던 것 거기에는 정말 파리가 많았습니다. 그 밥을 잘먹었고 참 맛있게 먹었죠. 그밥을 준 것이 어머님입니다. 바로 그 것이 아궁이 앞이고 아궁이 윕니다. 그리고 보리밥은 아궁이 불로 떼서 나왔죠.

저는 얼마전 북한에 몰래 들어가 찍은 비디오를 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궁이 그 모습 그대로 있더군요. 아마도 청진의 한 외곽 주택 같았는데

정말 가마솥 얹혀있는 그 아궁이 저에게는 정말 반가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반가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남쪽에 사는 사람들의 사치처럼 북쪽에서 아궁이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릴지 모릅니다.

이제 북한에서는 그 아궁이에 땔 나무도 아궁이에 불을 안 땐다면 전기를 이용해 밥을 해먹을 전기 곤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북여성 이선화씨는 겨울이 되면 안타깝습니다.

하루 사는 것이 전쟁이예요. 불 때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요. 겨울에는 합동해서 살기도 하고 땔감이 없어서 ...지금은 쌀값보다 땔감이 비쌀거예요. 여름이라고 해도 밥은 어떻게 해먹어요. 전기가 와서 해먹어요? 북한 지방은 다 아궁이 되어 있기 때문에 불을 짓펴야 밥을 해먹을 거 아녜요.

이렇게 세월이 흘러 남과 북이 60년을 흩어져 살고 있지만 화장도 해본 적이 없고 모양도 내본 적이 없는 어머니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잠을 못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지은 곳이 아궁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활동을 제일 많은 활동을 한 공간이 아궁입니다. 아궁이에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형제를 먹이고 아버지를 공양 했습니다. 아궁이는 우리 식생활의 모체이자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활동공간이었습니다.

남북의 문화 기행 오늘은 ‘아궁이’ 편입니다. 태진아의 사모곡 함께 들으시면서 저는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