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현주 xallsl@rfa.org
학창 시절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공부하기 싫었던 기억? 점심 시간? .. 뭐니뭐니 해도.. 소풍 갔던 날 , 많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이때 기억 때문에 그런지 나이가 들어도 ‘소풍’ 이란 말에는 가슴이 셀레는데요.. 이건 남과 북이 그다지 다를 것 같지 않네요.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소풍 이야깁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을 경기도 안성에서 보낸 50대 후반의 정봉희 씨.
“ 우선 껌부터 사고 그 다음에 사탕 같은 것도 먹고 소풍날 가면 인제 가게에서 플라스틱 각에 담긴 오렌지 쥬스 파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몰라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소풍날을 알려주면 한달음에 집에 달려가 어머니 한테 기쁜 소식을 알리곤 집 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놓고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렸습니다.
“막 비오지 말라고 빌고 그러지. 근데 소풍날만 되면 비가 왜 그렇게 많이 왔는지.. 도시락 들고 학교 교실에서 까먹었던 기억도 있어요.”
소풍 가는 날 아침엔 꼭 집에 있는 동생도 같이 가겠다고 떼를 쓰는 통에, 그러지 않아도 부산한 나들이 길이 더 소란스러웠습니다. 버스가 구경꺼리가 되던 시절, 일단 소풍 장소까지는 몇 십 리든 걸어가야 했습니다.
소풍날 하면 또 도시락 얘기도 빼놓 수 없는데요.. 어머니가 손수 싸주신 도시락엔 다른 애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무리를 해서라도 이것 저것 넣어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별히 계란도 부쳐주고..밤도 삶아 주고 장조림에 콩장으로 도시락 싸고..”
정씨와 동갑 내기, 마순희 씨. 함경도 무산이 고향인 마씨는 5년전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북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마씨가 기억하는 소풍 날은 정씨의 추억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소풍가서 친구들과 하던 놀이도 수건 돌리기, 보물찾기, 장기자랑..모두 비슷합니다.
“우리 밥 먹을 때 선생님이 몰래 보물 숨겨놓으면 인제 우린 밥 먹고 그거 찾고 그랬어요. 찾으면 학습장이나 연필 이런거 선물주고 그러셨지..”
없는 살림에 도시락 챙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닮아있습니다.
“아버지가 아파서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 소풍 앞두고 몇일씩 준비하셨던 모양이에요.. 소풍날이면 오랜만에 집에 기름 냄새도 좀 풍기고.. 그래도 우리 어머닌 선생님 도시락까지 꼭 챙겨주셨어요…”
어머니를 기억하게 한 소풍 얘기는 집안식구를 함께 울게했던 사연도 생각나게 합니다.
“ 막내 동생이 소풍을 간다고 해서 나섰는데 어머니가 벤토 쌀 것이 없다고 가지 말랬습니다. 그런데 얘가 울면서 가고 싶다는 거에요. 밀가루를 꿔서 이래 저래 해서 보냈더니.. 울면 갔던 얘가 배낭 가득히 토끼풀을 해온거에요..아.. 그때 엄마가 얼마나 가슴을 아파하셨던 생각이 나네요.”
마순희씨에게도 정봉희씨에게도 소풍은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고향에 대한 추억입니다, 여러분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소풍.. 한자말로 풀어보면 바람을 거닐다 바람을 쐬다..이런 뜻입니다. 북한에선 지역에 따라 원족이라고 하기도 하죠?
남쪽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학교 소풍이 있습니다. 또 남쪽에선 소풍 하면 ‘김밥’을 빼놓 수 없습니다. 김에 밥을 얹어져 일본식 짠지, 계란 지단, 시금치 삶은 것, 햄을 넣어 돌돌 말은 김밥.. 남쪽에선 언젠부턴지 소풍하면 이 김밥을 싸가는 것이 공식처럼 되버렸는데요..북쪽과는 좀 다른 모습니다.
경제사정이 넉넉했던 70-80년대에 자라 고난의 행군 시절에 아이들을 키운 북한의 어머니들은 아이들 소풍 때 마다 자기 세대보다 못한 도시락을 싸주면서 많이 울었다고들 말씀하시던데요….
그 때 보단 북쪽의 사정도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봄철 아이들 소풍을 앞두고 걱정하실 어머니들이 아직도 계시겠죠? 요즘은 남쪽 학교에서 이런 소풍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소풍 대신 ‘현장 체험’이란 말을 씁니다.
경기도 안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호성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죠.
“요즘은 소풍이라고 안 하고 가을 현장 체험 학습이라고 합니다. 저희때야.. 부모랑 어디 한번 놀러가기 그렇게 쉬었습니까? 뭐 그러나 소풍날이면 기뻐서 잠도 못 자고 햇는데..요즘 얘들은 부모랑 다 가니까.. 소풍이 그렇게 의미가 없어… 대신에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본다던가 하는 현장 체험을 하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 남북을 조금 섞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소풍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바람과 함께 걱정을 날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상의 작은 선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학생이나 어른이나..모두에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