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시계:귀중품→필수품→패션으로 진화

얇고 네모난 시계판에 시간에 따라 숫자가 컴퓨터처럼 자동으로 바뀌던 전자 시계..기억하십니까? 이 전자 시계가 시장에서 유행했던 것이 70대말, 80대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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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이 전자 시계 하나 차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는데요.. 그래서 사달라고 어머니를 조르고 몰래 아버지 시계 차고 나왔다가 혼쭐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기 최고였던 전자 시계는 이제 시계방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는 신세가 됐습니다. 시간을 그렇게 잘 맞추던 이 전자 시계도 시간을 또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이런 '시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서울, 이현주 기잡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 도시엔 시계 골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몇 년을 두고 하나둘씩 모여든 시계 수리점과 시계 점방들이 자연스럽게 골목하나를 꽤 차고 앉았습니다.

INS- "할아버지 시계 약 좀 넣어주세요."

어른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유리 칸막이 뒤, 작업대에 전등 하나 밝히고 앉아 있는 나이 지긋한 시계 수리공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INS- " 약 가는 데 얼마나 해요?" "삼천원 오천원 뭐 그래요"

일생의 절반 이상, 이 작은 가계에서 시계를 만져 온 듯한 할아버지 수리공에게 친절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래된 시계라고 사연 많은 시계를 들이밀면 어떻게든 부속을 구해주는 속 깊은 배려는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계방엔 고장난 시계를 들고갔다간 '고치는 값이 더 든다'는 말에 그냥 돌아나오기 일쑵니다. 이제 그만큼 시계가 흔해지고 값도 내려서, 손 움직이는 공임비도 안 나온다는 소립니다.

시계가 대접 받았던 시대는 해방 직후부터 70년대까지였습니다. 이 시절엔 시계는 시장에서 막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가고 첫 직장을 잡고 이런 '어른' 딱지를 붙이고서야 장만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아무리 싼 것으로 구해봐도 월급의 3분의 1은 족히 써야했고 함부로 아무 상점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평양 출신으로 남쪽에 정착한 김태산 씨, 그리고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은 용산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이경식 씨도 처음 제 손으로 돈을 벌어 큰 맘 먹고 마련한 시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집은 가난해서 어렸을 때 시계를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70 몇년인가..처음 돈을 벌어서 친구에게 시계를 샀습니다. 그 시계 소련제 시계였는데 그걸 차고 대학 졸업하고 취직 할때까지 잘 썼지요"

"학생때는 시계 못 사지. 비싼데. 처음 산 시계 이름이 안 기억나네… 아! 오리엔트. 국내 오리엔트 정공인가에서 만든 시곈데 이제 이름도 기억나네..(월급 타서 사셨어요?) 그럼 월급 안 타면 돈이 어딧어. 그때는 버스 타는 교통비도 아끼는 시절이었는데.."

1970년대말, 1980년에 들어서면서, 디지탈 전자 시계가 새로 선보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 전자 시계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것 같은데요.., 까만 전자판에 시간에 따라 숫자만 착착 바뀌던 전자 시계는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서울 연남동, 이남석씨의 얘깁니다.

"스파이 영화에서 나오는 시계처럼 시계의 단추를 누르면 본부와 전화통화도 되고 뭐가 발사될 것 같은 그런 첨단 과학 장비처럼 보였습니다."

북한에 들어온 수입 전자 시계 '콘보이', 한 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말 이 시계를 가지고 싶어 했다는데요, 평양 출신 김춘애 씨도 이런 전자 시계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전자 시계가 들어왔을때 , 우리 아들이 글쎄. 집에 아무리 찾아도 아이 아빠 새로 산 시계가 없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얘 밖에 없다 싶어서 데려가다 다그쳤더니 몰래 가져 가서 학교 마당에 묻어 놓고 교실 갈때 차고 집에 올땐 숨겨 놓고. 엄청 혼냈어요..(하나 사주시지요? ) 비싸서 거기 까지는 형편이 안 됐어요. 그래서 한국오자 마자 내가 시계 하나 사줬어."

그래서 남쪽에선 한때 결혼 예물로 이 전자 시계를 하곤 했는데요, 요즘 시장에 남쪽 시장에선 값나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전자시계 입니다.

시계 하면 또 결혼 예물 얘길 안 할 수 없습니다. 북쪽은 60년대말, 결혼 예물을 국가적으로 금지시켰지만, 남쪽엔 신랑과 신부가 목걸이 반지 등 폐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아직 이어집니다. 시계는 이런 예물 중에서도 주요 품목이었는데요, 그래서 남쪽에선 이 시계를 금을 취급하는 귀금속 상점에서 팝니다.

"당시 정말 한달 월급 다 부어서 산 것 같아요. (왜 그렇게 큰돈을 쓰셨어요?) 그때는 그게 유일한 예물이었거든요.. 27년 됐는데 아직도 우리 부인은 끼고 다니네 "

남쪽 거리를 다녀보면 무슨 무슨 '당' 이렇게 '당'자를 붙은 상점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곳들이 바로 귀금속 가게입니다. 저도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귀금속 가게를 들러봤습니다. 가게 이름이 금성당, 30년된 나이꽉 찬 가겝니다.

"요즘 시계는 잘 팔리나요? 아유 기자님도 시계 안 찼네. 안 팔리지.. 요즘 누가 시계 차나 예전엔 결혼할 때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휴대 전화가 다 있고 그러니.. 거의 한달에 하나 나가면 팔린다고 하니 안 팔려. 여기 서 있는 이 벽시계도 20년 됐나.."

금성당, 노규만 사장의 설명처럼 손목 시계는 이제 휴대전화에 자리를 내놨습니다.

남쪽엔 요즘 안 가진 사람이 없는 이 휴대 전화를 열기만하면 위성을 통해 들오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침잠 많은 학생이나 직장인을 깨우던 자명종 시계의 역할도 이런 휴대 전화의 '모닝콜' 기능이 대신해주고 있으니, 사람들은 이제 꼭 시계를 찰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시계는 이제 기능보다는 멋입니다. 보석이 박히고 색상도 금색이나 은색 검은색 일변도에서 벗어나 분홍 노랑 화려한 색깔옷을 입었습니다.

예전부터 이름있었던 고가의 시계들은 여전히 팔리고 있습니다. 시계 한 개에 몇 천 달라가 우습게 넘어가는 로렉스며 오메가 같은 시계는 아직도 시내 대형 백화점 안에 화려한 매장을 차려놓고, 금에 다이아몬드까지 박아 넣은 값비싼 위상을 뽑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제 이런 귀한 시계도 돈을 모아 살 수 있는면 사면 좋고, 아니면 그뿐, 시계에 그다지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 북쪽에선 그렇게 귀했는데 서울에 들어오는 여기 저기서 주고 그러데요. 그런데 사람마음이 참 그래서 시계가 흔하니까 주면 그냥 주나부다 싶어요.."

북쪽에도 이런 고급 시계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에서 들여오는 고급 시계는 그냥 시계가 아닌 정치적 과시적 성격이 강합니다.

1972년 겨울 열렸던 남북 회담에선 80명이나 되는 북한 기자들이 모두 금딱지 오메가 시계를 차고 판문점에 나타나서 남쪽 기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는데요, 이런 당국의 시계 선사는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3만명의 주민들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시계 수입이 줄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시계 산업 연합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북한은 2천 4백만 달러 어치의 시계를 수입했습니다. 일년에 약 2백 40만 달러 어치의 스위스 시계를 수입한 꼴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북한 일반 주민들은 싸구려 시계 하나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 시계 하나 구하면 시계 수명이 다할때까지 내 손목을 떠나지 않습니다.

INS- 괘종 시계 소리

"집에 예전에 이런 시계가 있었어요.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막내 동생집에 있겠는데..(들으시면 집생각 나시겠어요?) 집 생각 나죠..생각 나죠..

김춘애 씨에게 괘종 시계 소리는 고향집을 생각나게 합니다. 올해 58세, 가좌동의 정선순 씨는 이런 괘종 시계하면 옛날 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 79년도인가 결혼해서 분가를 했는데, 벽시계랑 라디오가 없었어요. 그때 정말 얼마나 그게 갖고 싶었는지 몰라.." 시계도 하나 마련 못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 이젠 집에 그렇게 갖고 싶었던 벽시계가 몇개 있고, 아이들 공부도 다 시켰으니 이제 굉장히 부자라고 웃는 정선순 씨. 웃는 눈가의 주름에서 시계 바늘보다 부지런히 살아온 지난 시절이 느껴집니다.

"이젠 아이들도 다 공부 시키고 시계도 많고 부자죠(웃음)"

시간은 공평합니다. 비싼 시계, 명함 시계, 싸구려 시계를 찬 사람 모두 24시간을 1년 365일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사회에 시간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진 않습니다.

첨단화 세계화 국제화 속에서 남쪽 사회의 시계바늘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북쪽도 똑같이 시계 바늘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런 시계 바늘을 바른 방향으로 돌지 못하게 잡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가 잘 풀려 북한의 시계바늘도 전력질주 할 수 있다면, 함께 잘 살 수 있는 그날은 아마 멀지 않을 껍니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남북 문화 기행, 시계편 김동률, 출발 들으면 오늘 시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작 진행에 서울에서 이현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