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 도시락에 담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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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누구나 학창시절을 지나오면서 뗄레야 뗄수 없는 그러나 정이 담기고 우정이 담기고 어머니와 자식간의 효가 담긴 그런 아름다운 물건이 있죠? 그 이름 석자만 들어도 정이 철철 넘치고 금방이라도 허기가 달아날 것 같은 도시락 바로 그것입니다. 북한이라고 해서 이 도시락이 없지는 않을 것이고요 남북한이 한 덩어리로 있을 적에는 왜정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밴또라고 불려졌죠. 자 오늘 남북 문화 기행, 도시락. 남북이 함께 나눠 먹으면서 속 깊은 얘기 나눠볼까요?

도시락 광고 “ 형진아 나물반찬 좋아하지 않는것 엄마 도 알아, 하지만 오늘 한번 먹어보지 않겠니?”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에 별을 보면서 들어오는 공부에 지친 아들과 딸의 도시락통을 싸면서 어머니는 대놓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더 어려워 할 것 같은 조바심에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어렵사리 적어 자녀들이 책가방에 넣고 가는 도시락통에 끼워 넣었습니다.

일터로 남편을 보내는 아낙네는 아이들 아버지의 도시락 통에 얼굴과 얼굴과 맞대고는 할 수 없는 살갑고도 정겨운 사연을 살포시 도시락 통에 넣었지요.

어머니는 채 못먹어도 아이들에게 만큼은 도시락 반찬으로 꼭 넣어 주고 싶었던 달걀부침과 고기완자 그리고 고등어 한토막을 정성스레 도시락 옆 반찬통에 담았습니다.

학교에서 양철 도시락을 가져 간 날은 시커먼 석탄이 벌겋게 타오르는 난로통 위에다 도시락을 쌓아 올리고는 점심시간이 되지도 않아 도시락을 부랴부랴 까먹었던 추억도 있습니다.

학창시절이 언제 였는지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라는 가정주부 구자영씨는 시뻘건 석탄 난로 위에 올려 놓은 양철 도시락 속의 고슬고슬 쌀밥이 마치 밥을 잘못 지은 것 처럼 양철 바닥에 누룽지처럼 이겨 붙은 양철도시락의 그 구수함만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자연: 그때는 난로불에 도시락을 얹어 놓고 서로 욕심 부리다가 까많게 타서 물말아서 먹었고 또 여러가지 고추장 넣고 흔들어서 비빔밥 해 먹고 두시간도 되기전에 배고파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 중에 남이나 북이나 서로 밀고 밀리는 죽을 둥 살 둥한 전투를 벌이면서도 고지의 저 밑에서 날라오는 차디찬 보리 주먹밥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구자연: 우리는 이북에서 올때 미숫가루를 가져왔는데 남한에 오니까 주먹밥에 소금만 발라서 팔더라구요. 공짜로 얻어 먹기도 했죠.

전쟁중에 도시락을 얘기했다는 것은 사치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중에 분명한 우리 어머님들의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부산까지 밀려나간 남한 주민들, 그리고 가정을 가졌던 어머니들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시락 통에 꽁보리밥을 해서 부두 노동자들에게 점심으로 팔고 몇전 안되는 동전을 받아 요기거리를 사서 어린 자식와 나이든 부모를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남한에서는 산업화 시기에 참으로 먹을 것이 풍부해 졌고 도시락 보다는 회사에서건 학교에서건 밖에서 점심을 사먹는 것이 더 평범하고 간편한 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어느덧 왠지 궁상스러운 모습이 됐고 이들은 돈을 지나치게 아낀다는 뜻에서 짠돌이 짠순이라고 불렸습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정성호씨의 말입니다.

정성호: 기본적으로 집에서 도시락 싸는 것을 귀찮아 하고 도시락 싸가지고 회사에서 혼자 남아서 밥 먹는 것도 그렇고 돈 얼마 안들이고 식당에서 이것저것 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어떤가요? 북한에서는 혹시 직장이나 학교 갈 때 지금도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가야 하지 않나요? 그 도시락을 싸가면 직장 동료 학교 친구들끼리 한자리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가면서 도시락을 먹나요? 북한은 정말 어떻습니까?

김춘애: 북한에는 회사 식당에서 밥을 안줘서 집에서 점심밥 싸가지고 가야해요. 힘들죠… 반찬 하기도 힘들고 아침에는 죽을 먹는데 도시락을 싸야하고 남편은 쌀밥을 싸주면 아이들은 잡곡밥을 싸 줘야 하잖아요. 학교가면 같이 먹을 텐데 그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고 힘들고 눈물날 때도 많았어요.

한국에서의 도시락은 어느덧 일본식 요리집의 점심 식단, 그것도 아주 비싼 식단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일본식 요리집의 도시락은 생선구이, 회초밥, 튀김 등을 골고루 넣어서 사각진 예쁜 칠기통에 담아서나오지만 값이 비쌉니다.

또 남한에서는 도시락 대신에 김밥이 오히려 대중화 됐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밖에 나가 점심때건 저녁이건 한줄에 1000원 미국돈으로 1달라 하는 김밥을 사서 먹습니다. 탈북자 김춘애 씨는 그런 김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요즘은 먹지 않는다고 하네요.

김춘애: 남한에 와 보니까 가는 곳마다 식당이고 회사에서 점심 저녁 먹여주고 학교에서는 학생들 점심 먹여 주시요. 여기는 김밥집이 흔한데 북한에서는 김이 그리웠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없거든요. 흔하고 많아서 먹지 않아요.

제가 하나 빼먹고 얘기를 하고 있네요 도시락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소풍이죠. 북한에서는 소풍을 뭐라고 하나요? 사실 남한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소풍이 다 없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교마다 이제는 운동장도 마련하기 힘들정도로 개발이 다 돼 있고 학교 주변에 교외라 하더라도 남한에서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습니다. 또 설사 소풍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 소풍가는 곳까지 음식을 시켜 먹습니다.

남한에서는 이런말이 유행입니다. “짜장면 시키신 분” 이말은 요 손전화로 전화 한통만 걸면 지옥에라도 짜장면을 배달한다고 할 정도로 남한에서는 음식 배달이 아주 일반화 돼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그렇거든요. 요즘 한강 주위로는 강변 공원이 쭉 만들어져 있는데요 여름이면 한강 다리 밑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화투도 치고 친구들끼리 음악을 들으면서 춤도 추고 더위를 식힙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음식을 싸온 사람은 찾아 보기가 힘든데요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손전화를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한강 다리에서 여의도 쪽으로 내려오다가 오른쪽에 보이는 두번째 벤치 옆에 웃통에 셔츠만 입은 사람입니다. 여기레 짜장면 세그릇, 추가로 탕수육 하나 보내주세요” 불과 10분만에 오토바이를 타고 남한에서는 철가방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짜장면 배달 청년이 당당하게 나타납니다.

천연덕스럽게 시멘트 바닥에 자장면과 고기를 튀긴 탕수육을 늘어 놓고는 돈을 받고 사라집니다. 그릇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 그릇은 일회용이거든요 먹고 버리면 됩니다. 설사 도시락을 시킨다 해도 이제 배달 오는 도시락은 더 이상 지금 남한과 북한 사람 모두에게 그리운 물건으로 인식돼 있는 그 양철 도시락이 아닙니다.

구자연: “지금은 양철 도시락 구하기 힘들죠. 양철 냄비는 있던데 요즘 보기가 힘들어서 요즘 애들은 그런 추억을 잘 모를 것입니다.”

자 우리 남북한을 이어주는 것은 그 양철 도시락이 있어서가 아니지요? 남한에서도 그리고 북한에서도 도시락을 정으로 아는 우리의 공통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락 남북한이 함께 나눠먹는 그날을 위해서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도시락을 갖고 여러분을 찾아 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