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기행] 다듬이-휘영청 달밤 고부간의 아름다운 화음

그야말로 긴긴 겨울밤에 고요하잖아.. 시골이기 땜에.. 휘영청 달 밝고 그럴 때에는 사랑방에서 가끔 놀다 오고 그러면 참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지요 여기 저기서 똑딱똑딱 하는 소리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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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소리라기 보다는 흥이고 가락인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는 곧 한국의 소리입니다.

오억근 : 우리나라 88올림픽 당시 마지막에 다듬이 소리를 울렸어요 그만 큼 다듬이 소리가 정겨울 뿐더러

올해 여든이 훌쩍 넘은 오억근 할아버지는 아직도 수필을 쓰는 작가입니다. 오 할아버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잊혀져 가는 소리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입니다.

오억근 : 우리의 한자 옥편에 나옵니다만 3희성이라고 해서 석삼자하고 기쁠 희자하고 소리 성자하고 해서 3희성 속의 하나로 들어가는 겁니다. 첫째로 간난아이의 울음소리, 간난아이 쪼그만 그 어린애 그 울어대는 소리하고 .. 그건 집안이 번성하고 끝이 이어져 가는 그러한 희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글 읽는 소리.. 글방에서 글 읽는 소리, 그것도 장차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듣는 거고, 세번째가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는 아낙네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정겨운 소리죠 그게…

넉넉지 않은 살림에 봄여름이야 옷가지들을 개울에서 훌렁훌렁 빨아입으면 됐지만 겨울에는 솜 저고리며 바지, 이불 같은 것은 미리 잘 빨아 손질해놔야 한겨울을 날 수 있었습니다.

오억근 : 시골에서 바지 저고리 한번 빨래 해 입을려면 그냥 겨울에 한 두번 해입는 거야 명절때 갈아입고는 그냥 뭐… 그래서 그걸 빨려고 하면 우선.. 솜 바지 저고리를 빨려면 우선 뜯지 않습니까? 뜯어서 솜을 끄내고 겉은 개울가에 가서 빨아서 말리면 그걸 가지고 또 풀을 맥여가지고 밟고 물을 축이고 그걸 다 봤거든요.. 어머니 하시는 걸 그렇게 하고설랑 홍두깨던가 마는 게 있어요 거기다 해서 도닥거리기도 하고 다듬이에 두드리기도 하고.. 뭐 어려서 실컨 봤지요 …

남과 북이 나뉜지 반세기가 넘었어도 옛 기억은 같습니다. 최근 북한을 나와 남한에 정착한 이영옥씨는 예순 일곱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다듬이 소리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옛날의 추억을 되살립니다.

이영옥 : 다듬이는 시집오기 전에 썼댔어요, 우리 어머니가요 이불을 다 빨아가지고는 풀 다해가지고 그렇게 해서 이불 안.. 그런 걸 착착 펴놓고 방맹이 둘 가지고 막 장단 맞춰서 두드리지요 그렇게 해서 주름살을 짝 펴거든요 그렇게 하면 거기가 반들 반들해요 오랜 시간 하지요..

다듬이 질은 두사람이 두드리기 때문에 박자를 잘 맞춰야 합니다. 대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 하기 때문에 고부간에 절묘하게 박자를 맞추는 것도 사실 어찌보면 요즘말로 아름다운 팀웍, 말하자면 아름다운 협력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된 시집살이에서 오는 고달픔을 방방이 질로 풀어내는 한풀이 도구로도 제격이었습니다. 오억근 할아버지는 두드리는 박자소리에 따라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오억근 : 그냥 뚜드리니까 뭐 시어머니 마빡 뚝딱.. 시누이 마빡 뚝딱, 시할미 마빡 뚝딱.. 이 말을 번갈아 연상하며 방망이를 내려 쳤으니 얼마나 통쾌 했을까 다듬이질을 하고 나면 후련해 졌을 것이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며느리 다듬이질 하는 소리를 듣고 며느리의 심정 ,곧 불만과 스트레스의 분량을 가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듬이 소리가 또 다다닥 또 다다닥 4박자로 나면 정상이고 또다닥 또다닥 3박자로 빨리치면 무엇인가 불만이 있는 것으로 가늠했던 것이다.. 이렇게 표현했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쪽은 고된 시집살이의 한을 풀고 한쪽은 며느리의 감정을 가늠하며 또드라똑딱 또드락 똑딱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냈던 이 소리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남한은 물론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영옥 : 지금은 그런거 흔적도 없어요 예 지금 다 없습니다. 지금은 다 다리미가 나와서 전기 다리미로 다 다리니까.. 북한도 조선식 이불이라고 흰 안해가지고 조선이불 쓰는 곳도 아직 많지만 현대 이불들이 많이 나오니까 그런 방법으로 이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옷 보다는 먹는 것이 먼접니다.

이영옥 : 식의주.. 먹는 것이 첫째다 그거지요, 사람이 우선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옷이야 헐벗은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먹는것과는 타협 못하니까.. 그 전에 김일성 있을 때는 의식주라 그랫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식의주라 그래요, 살고 봐야 되니까…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 지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북한에서는 부녀자들이 밖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식량을 구해 오는 경우가 많아 지면서 남한보다 유교적인 전통이 강했던 북한의 가정 분위기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영옥 : 북한은 아직도 남자들이 배급을 주던 안주던 직장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다 장에 나가잖아요, 시장에요 그러니까 부득불 시장에서 이제 상품 한가지라도 더 팔자고 늦게 들어오는 때가 많으니까 남자가 직장에 나갔다가 먼저 들어오게 되면 부득불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게 되죠 능력이. 잘 벌지도 못하는데 저녁에 밥이라도 하고 뭐.. 빨래라도 해야지 어떻게 가만 있겠어요, 요즘은요 북한 여자들 얼마나 쎈지 모릅니다. 그래서 뭐냐면요, 남자들 생활력이 없고 그러면 시집도 안가구요 안살아요, 시집도 안가요 농민이 땅을 살 때는 이밥을 먹자고 사지 땅을 괜히 사나요 시집가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시집가서 이밥먹고 잘 먹고 잘 살자는 건데 그렇게 남편 일도 안하고 고생만 시키는 데 가서 뭘해요 안가는 사람 많아요, 여자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은지 몰라요 자기 구실 못하면 아이됩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생활은 편해졌어도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은 큰 아쉬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억근 할아버지는 다듬이처럼 옛것들이 사라지면서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도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오억근 : 지금 뭐 이런거 하는 사람이 있어요? 세탁소 갔다 주면 되는데.. 시절이 바뀌었죠 그러니까 인심은 강박해지고 정이라는 게 없지 않습니까..

오억근 : 나는 어린 시절 농가에서 주야장창 긴긴 밤에 다듬이 소리에 잠이 들고 자다가 눈을 떠도 다듬이 소리였다..

누군가 다듬이 소리는 어른을 공경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소리며 구심살을 펴고 바른 마음을 갖게 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소리,, 달님과 별님도 귀를 기울이는 소리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세월의 뒷편으로 사라져 가는 소리 가운데 하나지만 어려운 살림속에서도 서로에게 사랑의 끈이 되었던 이 맑은 울림은 오래도록 모두의 가슴에 남아있을 아름다운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