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가 갖지 못한 꿈을 실현시켜주기도 하고 내가 하고자 한 사랑을 영화 속에서나마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꿈과 상상력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영화 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안내합니다.
전 세계에서 3주째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공상과학 영화 "아이언 맨" (Iron Man) 입니다. 무기개발을 앞세워 전 세계 인류를 위협하는 적들에 맞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옷을 입은 주인공은 하늘을 날기도 하고, 커다란 자동차를 맨 손으로 들기도 합니다.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아이언 맨" 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수 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지난 2006년 한강에 괴물이 살지도 모른다는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만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괴물" 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1300만 명이라는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영화는 다양한 소재와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이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게 하고 꿈을 대신 이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영화는 남한의 영화처럼 인간사회에서 겪는 생활이나 사랑은 물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통로가 아니라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우상화와 북한 정부의 당 정책 정치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인 정성산 감독은 설명합니다.
정성산 감독: 남과 북의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가 틀리구요, 북한의 영화라는 것은 당 정책과 국가의 전략을 선전하는 하나의 수단. 일반 국민들을 동요하기 위한 정치도구라고 알고 있으면 되는 거구요. 남한이나 미국은 영화는 상업주의 영화인데 장르에 대해서 제한이 되어 있는 거예요. SF, 스릴러 액션 멜로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굉장히 천편일륜 적이에요.
주말을 맞은 남한의 극장가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가족과 연인, 친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매년 5000만 명의 관객이 찾는다는 영화관 이제 영화 관람은 남한 국민들의 문화생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영화산업도 발전했고,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고 있는 커다랗고 시설 좋은 극장이 곳곳에 들어서기도 합니다. 영화 관람은 지금도 여가시간을 이용한 문화 활동,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1순위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갈 무렵인 1959년부터 입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영화는 서민들의 가장 큰 문화 수단이었고 동네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이 들어설 때면 영화를 보려는 동네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환갑을 앞둔 정선순 씨는 그 때를 회상합니다.
정선순씨: 당시에는 영화를 본다는 것이 설레고 굉장히 큰일을 하는 것처럼 기쁘고, 즐겁고 동네에 영화관이 들어온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들뜨고... 청소년의 마음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겠지만 동네 학생들이 몰려서 무리를 지어 다닌 기억이 나요.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극장에 갈 수 있지만 전쟁 직후였던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에는 형편도 어렵고 극장도 많지 않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것은 1년에 한번, 어쩌다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영화 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기도 했고 영화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던 학생 시절에 선생님 몰래 영화를 보다 붙잡혀 혼나기도 했던 기억은 당시 청춘시절을 보낸 남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입니다.
정선순: 옛날에는 극장을 자주 갈 수도 없고, 극장을 가려면 20리 길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영화를 자주 볼 수도 없었어요. 학생 때는 지금처럼 영화 관람을 허용하지 않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을 엄하게 다뤘거든요. 한번 씩 갔다가 선생님에게 들키면 혼나기도 하고 정학을 받기도 하고.... 우리 나라가 옛날에는 일제, 6. 25를 겪은 후로 너무 어려웠고, 학생들이 영화라는 것은 상상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보내는 시기를 보면 너무 그때와 차이가 많고 생활하는 자체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이야 영화를 보면서 음료수나 과자 등 군것질도 많이 하지만 옛날에는 군것질은커녕 밀가루 빵 하나도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추억은 북한도 다르지 않습니다. 4년 전 북한을 나온 탈북자 이선화씨도 북한에 있었을 때 사극 영화를 즐겨봤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새 영화가 나왔다고 하면 친구들이나 직장동료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좌석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영화관에 서로 먼저 입장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며 근처 식당에 들러 음식을 나눠 먹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선화: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 하면 연인들끼리, 아는 친구들끼리 표를 사서 영화관에 가요. 춘향전이나 홍길동전과 같은 사극 영화를 너무 좋아했는데 그 때는 표가 모자라서 더 비싸게 파는 것을 사기도 했고, 진짜 좋은 영화라 하면 영화관에 엄청 들어가요.
이제 남한에서 영화를 직접 만드는 정성산 감독도 북한에 있었을 때의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정성산 감독: 영화관은 데이트 코스 같기도 해요. 데이트 하려고 하면 제일 나쁜 자리에 앉아야죠. 뽀뽀도 하고...(웃음) 시골 같은 경우는 아직도 개구멍으로 들어간다거나 화장실 통에서 옥상으로 들어가는 것도 많아요. 저희도 군 복무할 때 극장을 많이 들어간 본 적이 있으니까. (영화 좋아하셨어요?) 아유 ~~! 좋아했죠. 영화하면 북한 사람들 많이 좋아했어요. 그거 오면 학교 공설운동장 같은 곳에다 스크린 켜 놓고 했었거든요. 그럼 마을 사람들 거의 다 오죠.
북한 영화의 시작은 1948년,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항일무장투쟁 내용을 담은 흑백 영화 "내 고향" 이었습니다. 전쟁 직후 북한의 영화는 폐허 가운데 다시 뭔가를 이뤄낸다는 의미의 창조적인 내용이 많았고, 사회주의가 자리잡아 갈 무렵인 1970년 대에는 당 정책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영화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1970년 후반부터는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우상화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북한에서는 1978년 납북된 신상옥 감독이 북한 영화의 흐름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붉은 날개", "사랑 사랑 내 사랑", "도라지 꽃"등의 작품으로 당의 선전을 내세우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다루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겁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목말라 있던 북한 사람들에게 신상옥 감독의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성산 감독: 당시 신상옥 선생님의 북한의 감성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으신 분이죠. 신상옥 선생님이 만든 영화 같은 것은 난리가 났었어요. 미어터졌죠.
이선화: 최은희 하고 신상옥이 연출했다고 해서 남한에서 유명한 분들은 어떻게 이 사회에서 냈을까 궁금해서 "사랑사랑 내 사랑" 인가...그거 보러 갔을 때에 너무 사람이 많아서요. 그런데 사상적인 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영화가 별로 재미없는 거예요. 사상도 없고 뭐 봤는지는 재미가 없다고..
남한과 북한의 영화는 의미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지만 슬픈 영화에 눈물을 흘리고 재미있는 영화에 웃을 줄 아는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성산 감독은 강조합니다. "요덕 스토리"와 "빨간 산타" 등 북한을 소재로 한 뮤지컬과 영화를 만들었던 정성산 감독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다양한 소재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물론 전 세계인이 함께 보고 울고 웃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성산 감독: 북한에는 소재의 발굴이 제한돼 있잖아요. 하지만 남한이나 미국은 그건 것이 없는데 자유민주 사회라는 것이 창작가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항상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목표로 삼고 삽니다.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푭니다. 저는 재능과 능력이 된다면 북한 동포들을 위한 그런 영화...대작을 한 편만 만들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요.
영화를 통해 울고 웃었던 남한과 북한. 언젠가는 남북이 함께 한민족 특유의 소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서 세계 영화 시장의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남북 문화 기행, 끝으로 찬진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들으시면서 <영화> 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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