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 원두막-시원한 들바람 맞으며 수박 한통 갈라 먹는 맛…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밤잠이 잘 안 올 지경입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고 밤에도 25도가 넘어가니 더위에 여름 나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름철, 이런 더위를 보상해줄 만한 것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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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서 물장구, 달달한 수박에 참외, 자두, 포도 같은 여름 과일. 또 수박 얘기가 나오니, 바로 생각나는 것이 원두막입니다. 수박 한통 밭에서 따올려 원두막 마루에 올라 쩍 갈라먹는 맛. 여름 더위도 이쯤이면 참을만할 것 같습니다.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이 여름에 어울리는 원두막 얘깁니다.

서울에서 이현주 기자가 전합니다.

경상남도 마산부터 경기도까진 중부 내륙 고속 도로. 충청도가 끝나고 이제 경상도로 이어지는 괴산 즈음, 고속 도로 휴계소를 들렀습니다.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하얀 식신 건물 앞에 웬 원두막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번씩 눈길을 주기도 하고, 앉아서 음료수도 마시고 앉아서 잠깐 졸기도 합니다.

원두막 앞에서 빗질을 하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더니, 마침 이 휴계소 소장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 볼거리 차원에서 갖다 놓은 거든요..근데 손님들이 생각보다 더 좋아하세요. 주말 되면 사람이 이것보다 훨씬 많은데 앉아서 쉬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누워서 쉬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웃음)

망루처럼 높이, 밭을 다 내려다 볼 수 있게 높이 지어진 그런 원두막은 아닙니다. 바닥에서 약간 올라와 사람이 걸터 앉을 수 있을 높이에 마루 바닥도 나무로 잘 깔아 놓은 모양새가 과수원 옆 원두막엔 비할 수 없습니다.

원두막 바닥 옆에 만든 사람 명패가 붙어 있어, 저희는 이 원두막을 만든 윤봉구 사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문경 새재로 들어서는 길목, 상주쪽으로 조금 올라간 마성면 신현리에서 윤 사장의 원두막 작업 장이 있습니다. 길가에 나무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고 안에서는 원두막 만드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안녕하세요 윤 사장님? 전화 드렸던 자유 아시아 방송 기자에요 아유 들어오세요. 죄송해요 늦었어요 생각보다 막히더라구요..

막 현장에서 원두막을 설치하고 돌아왔다는 윤 사장은 올해로 8년째 원두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 원두막을 만들땐 이걸 여러채 만들어서 사업으로 운영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친구 부탁으로 하나 만들어준 원두막이 입 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주문이 들어오고 이젠 업으로 원두막을 짓고 있습니다.

“처음에요 민속품을 하다가 나무를 많이 모았어요. 촌으로 다니는데, 촌에서 집을 뜯으면 나무가 참 좋아요..요즘 구할 수 없는 나무가 많이 나와요. 그래서 손재주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걸 시작했는데 처음엔 혼자 했어요. 한 15일 걸리더라구. 처음 만든 건 지금 보면 우스워.”

얼마 전엔 뜻밖의 주문도 받았습니다. 개성 공단에 입주한 한 남측 업체가 북한 개성에 설치한 원두막을 주문한 건데요, 벌써 한 채가 만들어져 개성 공단 , 남북 근로자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윤 사장은 일본에도 보내고 미국에도 보내봤지만 북한에 간 것이 그래도 제일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화가 왔는데 좋대. 그리고 북한에 보낸다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

나무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여서 여름엔 열심히 만들고 겨울엔 나무를 찾으러 다닙니다. 가격은 놀랄 정도로 비싼데요, 3평짜리 원두막 한채에 3천달러가 넘습니다.

밭 지키려고 만들어 놓던 원두막으로 치면 열채도 지을만한 돈이지만, 요즘은 주문이 밀립니다. 정원이 있는 개인 주택부터 마을 회관, 휴계소 같은 곳에 이런 얕트막한 원두막을 한채 들여놓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면에서 요정도 떨지잖아요 이게 제일 시원해요. 여름에도 선풍기 필요없어요..사람이 딱 걸터 앉을 수 있는 높이 거든요 제일 좋아요.”

매미 소리와 함께 논에는 벼가 밭에는 옥수수, 수박, 참외가 익어 갑니다. 어르신들도 옛날부터 없는 사람 살기엔 겨울 보단 여름이 좋다고 하셨는데요, 더운 여름은 일손이 바쁜 봄,가을보단 조금 느긋하게 흘러갑니다.

‘원두’는 참외 오이 수박 딸기 호박 같은 작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이런 작물은 밭에서 바로 따먹는 것이 더 맛있었고 또 이런 작물을 지키기 위해 막을 세웠다 해서 원두막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네 기둥을 세우고, 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에 마루를 정하고 지붕은 볏짚이나 보리 짚으로 이엉을 엮어 비가 새지 않도록 두세겹을 올려서 사다리를 달아 놓는 원두막의 수수한 모양새는 남북이 다를리 없습니다.

원두막 마루에는 더위를 쫓는 부채, 파리 잡는 파리채, 수박 참외 몰래 따먹으로 오는 동네 아이들을 쫓기 위해 소리 나는 놋요강이나 천정에 포탄 판피도 달아 놓는 것도 아마 비슷할 듯합니다.

‘서리’ 라는 말을 북에서도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쪽에선 아이들이 떼를 지어 밭에 들어가 밭 작물을 한두개 몰래 따오는 장난을 ‘서리’라고 부릅니다.

안양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강원도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이춘식 할아버지는 서리하면 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습니다.

“도지라고 아나? 소낙농이 밭이나 논이나 빌리면 임대료를 내는 걸 도지라고 한다고.. 내 옛날에 이 도지 때문에 겪은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해줄께. 초등학교 때 인가 밭에 가서 노란 참외를 몇 개따서 먹었다고. 근데 동네에 새로 시집온 새댁이 이걸 보고 가서 집에가서 어머니한테 얘기한 거야. 얘가 남의 밭에서 참외를 따먹더라. 집에 와서는 어머니가 난리가 난거지. 남의 밭에서 참외를 따먹었다고… 아이고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 그때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 그 밭 주인이 도지를 물라면 어쩌냐 “ 였어요. 어머니는 그 사람이 돈을 물어내라면 어쩌냐는 뜻에서 말한 건데 내가 어린데 도지라는 말을 어찌 아누. 그래서 나는 도지가 무슨 개 같은 무서운 짐승이라고 생각한거야. 그 얘길 듣고 나니까 어찌나 무섭던지, 도지한테 물릴뻔했는데 매 맞아 아픈 건 다 잊고.. 그때부터 그 밭 주인집에 가서 도지를 찾아 봤어..내가 그 도지가 뭔지 알때까지 한 일년은 열심히 찾았던 것 같네..어찌나 무서웠는지 (웃음)”

이렇게 혼이나고는 다시는 서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춘식 할아버지, 재밌도 이 할아버지는 밭이 아닌 집 옆에 원두막을 지었습니다. 시집오면부터 원두막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졸랐던 아내에게 선물을 한 것이랍니다. “ 우리 집 사람이 시집 오자마자 원이 그거나 내가 맨들어 준거야. (웃음) 시원하고 정자 같고 좋대나 그렇게 조르는 사람은 또 첨 봤네 (웃음)”

그래서 이젠 동네 사람들이 여름밤이면 이 원두막에 모여 앉아 수박도 먹고 참외도 먹고 잠도 자고 동네 사랑방이 되버렸습니다.

아마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 북쩍거리는 재미가 좋아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원두막을 졸랐던 모양입니다.

남쪽엔 요즘 시장에 나가보면 노랗고 길초롬한 참외가 팔립니다. 예전엔 개똥 참외부터 먹참외 백참외 청참외도 있었는데요 어느샌가 당도가 높고 부드럽게 씹히는 개량 품종으로 통일이 돼버렸습니다.

수박은 예나 지금이나 동그란 모양은 같지만 크기는 점점 커지고 속은 더 달아졌습니다.

과일 품종은 이렇게 개량돼서 점점 좋아지는데, 사람들의 인심을 통 개량되질 못했습니다.

남쪽엔 몇년전, 동네에서 서리를 하다 들킨 동네 아이들을 수박밭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심이 각박해졌다고 혀를 끌끌 찼지만,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바뀌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엔 참외 서리를 하다가 주인한테 들켜도 그냥 냅다 호통이나 맞고 그걸로 마는 거야.. 지금은 안 되지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 야단나지 지금은..”

북쪽에도 인심 사라지기는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원두막에 올라 소일 삼아 지키던 그런 풍경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 이제 군인들까지 동원되고 있다고 합니다.

함경도 출신으로 북한에서 평생 농사일을 하다가 2003년 남쪽으로 온 김일영씨의 말입니다.

“도둑을 맞을까바 90년대 2천년 이럴때는 강냉이 밭에도 그런 원두막을 가득 지어놓고 지키고 그랬어요. 그전에는 안 그랬죠. 7,80년대는 사람들의 쉼터도 됐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거기가 경비 서는 초소나 다름이 없죠.”

이런 수박이나 참외, 토마토 같이 원두막을 세워 지켜야 하는 작물들 이게 어디 주민들의 입까지 올 수 있나요.. 간부들을 위해서 키워지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일이고 이렇게 몰래 나서야 맛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던 김일영 씨는 북한을 나와, 중국으로 와서야 먹고 싶었던 수박을 양껏 사먹을 수 있었습니다.

“참외 수박, 제가 어릴 때는 잘 먹었죠. 그런데 우리 얘들 경우엔 못 먹었어요. 정말 한 몇 년에 한번에 먹였을까..그래서 중국에 내가 애들 데리고 들어왔는 데 그때부터 잘 먹었죠 (웃음)”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입 밖에 먹어 본 적 없었던 수박의 맛은 고향의 것이 훨씬 더 달게 기억됩니다.

수박뿐 아닙니다, 여름철 드물게 먹을 수 있었던 자두, 살구의 맛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살구 자두 나무가 집 옆에 있었어요.. 어릴때 거기 아버지가 경비를 섰는데 아버지는 경비를 서다가도 내가 가면 뭐..자두도 정말 잘 익은 것 ( 웃음 ) 그걸 찾아서 주시던 것도 생각나고..이런 저런 생각이 나네요.”

김일영씨가 먹었던 살구가 남쪽 살구보다 맛이 좋았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맛이 기가막히게 좋았다고 기억 되는 것은, 지금은 고향 땅에 묻혀 있는 아버지 때문일 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 계시는 이 곳에서 그 맛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여기와서 살구 사먹어 보셨어요? 네. 근데 여기 살구는 진짜 맛이 없어요. 근데 이북에 백살구랑 참 맛있거든요.. 우리가 없을 때 먹어 그런 지는 모르지만, 너무 맛있어요.”

더운 여름날 어떻게들 지내고 계십니까.. 원두막에 올라 매미 소리 자장가 삼아 수박 참외 양껏 먹고 누워 쉴 순 없더라도 바람에 땀 식히면서 한숨 한번은 돌릴 수 있는 그런 여름 되시길 멀리서 빌어봅니다. 오늘 남북 문화 기행 ‘원두막’ 편 김동률의 ‘귀향’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