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평상과 모깃불-정겨움 넘치는 '한여름 밤의 풍경화'

이제 저녁이면 메미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더 큰데요… 여름도 거의 끝나갑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돗자리 들고 동네 어귀에서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에 하늘에 별 보며 잠을 청하셨습니까..? 멍석 깔고 하지 감자에 옥수수를 들고나와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쑥 모깃불도 놓아보셨습니까..?

아마 이런 여름밤은 모두 우리 머리 속에만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 양쪽 다 여름밤 풍경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남북 문화 기행 오늘은 이런 여름밤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평상과 모깃불 얘깁니다.

서울에서 이현주 기자가 전합니다.

서울과 불과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경기도 안양에서는 난데 없이 '평상' 놓기가 한창입니다.

안양 시청 안, 자원봉사본부에서는 이번 여름, 평상을 만들어 동네 어귀, 동네 공터, 경로당 등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곳에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안양시에서, 이렇게 도심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평상을 직접 만들어 설치하기로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안양시 자원봉사 본부 김경일씨의 말입니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동네에서 좀 사람들이 같이 모여 앉아 담소도 나뉘고 쉴수도 있고 아이들이 주변에서 놀면 봐 줄 수도 있고 이런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 해보자는 생각에서…”

지난 겨울, 남쪽 사회 전체를 놀라게한 안양 어린이 유괴 사건을 계기로, 이웃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동네를 함께 지켜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서 두 차례나 평상을 만들게 됐습니다.

평상 만들기엔 무료로 돕겠다고 팔걷고 나선 안양시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동원됐습니다. 나무판을 놓고 서투른 못질과 니스칠로 반나절이나 걸려 만든 평상이 거의 40개. 모두 제자리를 찾아 갔습니다.

아마 들으시면서 평상이 뭐야 하신 분들 있을 것 같습니다. 북쪽에서 오신 분 중에 이 ‘평상’이라는 말을 아시는 분들이 거의 없던데요, 평상은 나무로 만든 판판한 침상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마당에 옮겨다 놓을 수 있는 튓마루 정도로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될 듯 싶습니다.

사람이 걸터앉을만한 높이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한 4-5명이 엉덩이를 걸치고 앉을 수 있는 넓이의 마루판을 얹습니다.

대나무로 마루 판을 만들면 바람이 더 잘 통해서 좋지만, 어떤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든가 어떻게 만들라든가 하는 정해진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마루를 만들고 다리를 달아서 사람이 걸터 앉을 수 있게 하면 그게 평상입니다.

농촌에는 어느 마을이나 해묵은 팽나무나 회화나무 등 아름드리 정자 나무가 있어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는데요, 이 정자 나무 아래에 꼭 이런 평상을 놓았습니다. 그러면 평상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주고받는 동네 사랑방이 됩니다.

그렇지만 꼭 큰 정자 나무 아래가 아니여도, 집 앞 마당이나 동네 어귀에 내어 놓은 작은 평상도 여름철 동네 사람들 모이는 작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경상북도 봉화 출신 김영식씨의 얘깁니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장기도 두고 얘기도 하고.. 평상이 예전엔 동네 쉼터였죠”

평상에선 조상들의 지혜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걸터앉을 수 있는 평상의 높이는 바닥에서 45 센치 정도 올라서 있어 바람이 가장 잘 통하는 위치에 마루를 올려놓았고 여름, 부엌 아궁이에 밥하느라 더운 방안을 피해, 바깥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평상은 만들만한 나무도 구하기 쉽지 않거니와 만든데 품이 들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돗자리나 멍석이 평상을 대신하곤 했는데요, 북쪽에서도 여름 밤이면 멍석과 돗자리 위에서 여름을 나던 기억, 있으실 껍니다. 평양이 고향으로 남쪽에 정착한 탈북자 김춘애씨의 말입니다.

“하모니카 주택이란게 있어요. 아파트 살다가 하모니카 주택으로 이사를 왔는데, 여름에 더워서 나가면 1호집 2호집 다 나와 앉아 있어요 (웃음)”

평상이나 돗자리, 멍석 위에서 자다가 밤에 후두둑 떨어지는 비에 놀라 방으로 뛰어 늘어오기도 하고, 밤이면 간식으로 내오는 노릇하게 찐 하지감자와 옥수수도 맛보구요. 아마 이 삶은 감지가 눌어붙은 버찌 바닥 긁어 먹는다고 형제들이랑 투닥거리던 기억, 많이들 있으실 겁니다.

또 마당에 자욱한 연기를 만들던 쑥으로 만든 모깃불 향 냄새에 도란 도란 어른들 얘기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들던 기억은 남북이 다르게 말할 수 없는 함께 기억하는 여름날의 풍경입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남쪽 사람들이 사는 모양에 따라 여름밤 등장하던 평상이나 쑥 모깃불은 이제 찾아보고 힘들어졌습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공동 주택 비율이 점점 높아졌고, 사람들이 손이 많이 가는 주택보다는 설비가 잘 된 도시형 아파트 생활을 선호하니 평상이 놓일 만한 마당이 있는 집은 도시에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평상 대신, 사람들은 전기로 돌아가는 선풍기과 전자 냉풍기(에어컨)으로 여름을 나고 쑥 모기불은 전자 모기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평상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요즘 이 아파트 베란다에 평상을 놓는 것이 또 유행이라는데요, 한 베란다 평상 제작 업체 사장의 말입니다.

그래도 예전하고는 평상의 의미가 다릅니다. 예전엔 동네 사랑방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냥 가족끼리 쉬는 공간입니다.

북쪽도 멍석 돗자리 깔고 여름 보내는 건 옛말인 것 같습니다. 일단 당에선 이런 동네 사람들의 모여 앉아 한담을 하는 모양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 모여 떠들 여유도 나눠 먹을 음식도 부족해, 여름밤은 예전같이 않습니다. 자강도가 고향인 탈북 방송인 김태산 씨의 말입니다.

“ 옛날엔 그랬어요. 나와 앉아서 호박죽도 쑤어먹고 모깃불 피우고 모기 너무 물면 들어도 가고..그리고 빈대가 많았어요 그때. 불을 뜨겁게 때서 밖에 멍석 펴놓고 자기도 하고.. 근데..그 이후부턴 농촌이 힘드니까…”

매미 소리 가득한 안양 중앙 공원 안. 이곳에선 더위를 피하러 나온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다가서 평상 얘기를 하자 서울이 고향인 양일주 할아버지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더울때 나와서 거기서 앉아서 부채질 하고 수박 쪼개먹고.. 참외 먹고. 그때가 어렸을 땐데 그때가 제일 좋았다 그렇게 생각이 되지 뭐…”

가족, 또 이웃이 함께할 여유가 있고 세련되고 비싼 음식은 아니여도 함께 나눌 음식이 있었던 시절, 바로 그 시절이 할아버지의 좋았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절을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 더운 여름날 가끔 평상이나 멍석 돗자리 쑥 모깃불 냄새를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평상하면 김태산 씨도 얘기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포부가 있습니다.

“그래서 난 텔리비젼랑 보면 동네 사람들 모아서 뚝딱뚝딱 해먹고 그런거 보면 부러워. 그래서 내 죽기 전에 통일만 되면 나 자강도 넘인데, 내 고향에 가서 이장할려고 그래. 내 고향에 화물차 하나 가지고 가서..남포쪽에 가서 소금 실어다 원가에 팔아주고 젖갈도 놔두고 일생 좀 먹게 하고 이장해가지고 이렇게 뚜꺼운 평상도 짜가지고 놓아두고.. 여기서 모여서 얘기도 하고 술도 한잔 하고..”

아마 그 평상이 고향에 설치될 될 여름, 그 여름은 냉장고 안에 들어 앉은 것 마냥, 어느 때 보다도시원한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그 해 여름’ 삽입곡 ‘여름 이야기’ 함께 들으시면서 남북 문화 기행 , 평상 편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