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기행]멍석-‘놀이터로...사랑방으로...’ 정이 담긴 다기능 공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예전처럼 쉽게 볼 수 없는 멍석. 짚으로 만든 네모랗고 둥그런 모양의 멍석 그 작은 공간 위에서 두런두런 모여앉아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로 밤 깊은 줄 모르고 얘기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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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문화 기행 이번 주 주제는 멍석입니다.

별 볼거리가 없는 조용한 시골마을에 외지 나갔던 반가운 사람이라도 오면 기름을 둘러쳐 구운 지짐이나 전 몇 접시 국물 한 두 그릇에 어른들은 대병짜리 농주를 권해가며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벌입니다.

날이 저물어 어두침침한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아이들은 졸려서 감겨오는 눈을 비벼가며 말판 옆에 자릴 트고 앉아 떠날 줄을 모릅니다.

멍석은 마당에 펴놓고 곡식을 말리는데도 사용이 됐고 때로는 잔치를 할 때 방이나 마루 대신 마당에 깔고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짚풀생활사 박물관 인병선 관장은 멍석은 정의 문화, 열린 공간을 상징하는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인병선

: 잔치를 한다고 했을 때 한옥의 내부 공간이 그리 넓지가 않거든요. 그러면 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위에다 차일을 치고 하면 하나의 공간이...안하고 밖에 통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과객이나 심지어 얻어먹는 거지까지도 배불리 앉아서 먹여 보내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멍석은 이렇게 깔개로도 쓰이지만 겉보리나 벼, 메밀, 고추, 콩 등 농작물을 널어 말리는 데도 사용이 됩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벼 말리기는 타작 후에 먼지를 날려 버리고 멍석에 널어 햇볕에 말렸다가 갈무리를 해서 뒤주에 담았습니다.

멍석은 잔치를 베풀거나 곡식을 말리는데 쓰이기도 했지만 여름 홍수 때 마을 둑이 터지면 흙이 쓸려 나가는 것을 막는데 이 멍석이 아주 긴요하게 쓰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쓰기 편하고 값이 싼 비닐이나 플라스틱 공산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짚을 이용해 일일이 한땀 한땀 엮어 만들어야 했던 전통 멍석은 우리의 생활에서 밀려나고 맙니다.

시골 마을에 가면 농기구 창고나 사랑채 벽에 둘둘 말아서 걸어놓은 멍석 요즘은 예전처럼 쓰임이 많지 않아 보기도 힘들지만 이제 달라진 용도로 멍석을 찾는 사람이 간혹 있어 아직 멍석이 완전히 우리의 주변에서 사라지진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사람들이 멍석을 찾고 있는지 서울시내에서 짚으로 만든 상품을 취급하는 한곳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상인

: 우리나라 것은 깨끗한데 그리 수량이 많지는 않아요. 북한 것은 간혹 군데, 군데 까마 잡잡한데 원래 멍석이란 것이 그런 겁니다. 대부분 식당, 주점에서 많이 사갑니다. 큰 식당에서는 멍석 몇 십장씩 사가요. 그리고 골프장, 민속행사... 우리나라 민속행사에 멍석이 안끼는 것이 거의 없어요. 떡판을 내리치더라도 밑에 뭘 깔고 하니까...

경길호

: 멍석 만들면서 소리해가면서 그랬죠...처음에는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이게 처음가사예요...

충북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명덕마을 유난히 경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

올해 일흔 여섯의 경길호 할아버지는 지금도 멍석이며 짚방석, 비 피하는 도롱이도 만들고 신발도 만들면서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만 되면 화투 치고 텔레비전 보면서 술 방 차려놓고 허송세월하기보다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일을 하자며 짚으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추위가 닥치면 이웃끼리 모여앉아 새끼 꼬고, 짚신 삼고, 가마니 짜고, 지게를 만들며 겨울을 난 것처럼 소암리 명덕마을 마을 회관엔 마을 노인들이 모여앉아 요즘은 추억의 물건이 되어버린 가마니, 소쿠리, 짚신, 멍석을 만들고 있습니다.

경길호

: 일하고 들어와서 아침, 저녁으로 만들고 비 오면 일 못나가니까 비 오는 날도 만들고..새끼를 꼬아서 만들면 20일 걸리고 꽈 논 것으로 만들면 한 15일 걸려요. 아침저녁으로 시간만 나면 와서 하니까 200x300만들자면 15일 걸려야지.

누구나 와서 털썩 주저앉아 정겨움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공간의 정겨움 북한에서도 멍석은 주로 농촌사람들이 사용을 하던 생활용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최근에 한국 생활을 시작한 한 탈북자는 말합니다.

탈북자

: 옛날에 텔레비전 없을 때는 저녁마다.. 재미있더라고요. 옛말도 듣고.. 지금도 어디 가서 쑥 향기를 맡으면 그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농촌들에서는 쑥불 없이는 지내지 못 하는 데가 많습니다. 특히 휴전선 넘어 황해도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논밭에 모기가 많아서 그런데 딴 방도가 없거든요. 집안은 덥지...밖에 나와서 모기쑥을 피고... 도시는 모기장을 치고 하지만 농촌은 모기가 하도 많으니까...

북한에선 지난 60년대까지 농촌에 여유로움이 있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70년대와 80년대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면서 멍석을 깔 작은 공간마저도 쪼들린 생활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야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 여성 이영옥 씹니다.

이영옥

: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손에다 봉선화 물들이고 하고 한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요. 어려우니까...마당도 뭐 심어 먹으니까 멍석을 펼 장소가 없어요. 남한에 오니까 비닐하우스를 하고 하는데 북한에는 자기 마당에다 해요 밖에서 뭘 하면 누가 훔쳐 가니까... 마당에다 먹을 것을 심으니까 멍석을 펼 자리가 없잖아요.

흥부전 판소리 중에서 한겨울에 흥부가 형 놀부 집에서 쫓겨나며 먹고 살 걱정을 하는 대목입니다.

가난하지만 자식들은 많았던 흥부 아이들 입힐 옷이 없어 멍석에 구멍을 내서 그 구멍에 아이들이 머릴 하나씩 넣고 어딜 가면 쭉 일렬로 다녀야했다는 흥부네 가족 거리에 앉아 거적데기를 몸에 감고 있는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남북이 갈라져 반세기가 지났지만 멍석을 놓고 남한이나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기억하고 쓰는 말이 있습니다.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 놓으면 못한다”라는 속담입니다.

이 역시 남쪽에서는 정말 옛말이 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멍석을 깔아주지 않아도 잘 논다고 합니다.

변변한 무대가 없던 시절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펴놓기만 하면 무대가 되는 멍석 그 멍석의 상징성을 이용해 신바람 놀자 학교 진홍 대표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즐길 수 있는 멍석극장을 만듭니다.

진홍

: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멍석 위에서 같이 놀고 일하고 멍석 위에서 식사도 하고 잔치도 하고 초상나면 또 그 위에서 마지막을 보내주는 그러한 모임도 갖고... 어떻게 보면 멍석이 한국 문화와 뗄 수 없는 밀접한...

이처럼 생활 곳곳에서 등장하는 것이 멍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멍석은 요즘도 먹고 마시는 업종의 상호에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멍석 갈비집' '멍석골 코다리찜' '멍석마당' '멍석식당'등 넉넉함과 정겨움을 풍기는 이름들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농사짓는 사람들도 아파트에 살고, 개인주택들도 모두 입식으로 고쳐 살고 있으니, 예전에 농촌에서 쓰던 쟁기니, 멍석이니 죄다 없어진 것이 당연한지 모릅니다. 속도를 다투는 현대에 살면서 편리함에 푹 빠져 우리가 가져야하는 소중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진홍

: 좀 불편함은 감수하면 되는데 편리함이라고 하는 현대적 물품 때문에 사람간의 정을 잃은 것이고 공도체적인 신명이나 삶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렸다고도 볼 수 있는 거죠.

서양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인간관계를 만들어 왔다면 우리는 멍석에 주저앉아 서로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나눔의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는 그 시절의 멍석에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남북의 문화기행 멍석 편 진행에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