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기행]운동회-북에선 먹을 것 없어 오전에 끝내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은 밤잠을 설치며 운동회 날을 기다려 보신 경험, 있으시죠? 특별한 놀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 시절에는 봄이나 가을에 학교에서 열리는 운동회는 온 동네 잔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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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벗어 놓고, 산뜻한 운동복 한 벌의 단촐한 차림으로 , 삼삼오오 친구들과 짝을 지어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남북 문화기행, 오늘은 운동회의 그 아련한 추억 속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진행에 이수경입니다.

운동회 날 아침이면 온 동네가 분주했지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없는 이웃도 가을 하늘에 펄럭이는 만국기와 학교 밖까지 들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에, 오늘이 바로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구경 갈 채비에 나섰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 일찍부터 먹을 거리를 좌판에 늘어 놓고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으던 장사치들의 목소리도 이 날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운동회 날이 되면 가장 바뻤던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아이와 식구가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구경 갈 이웃과 친척에게 연락도 해야하고, 돗자리부터 할머니 양산까지 꼼꼼히 챙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운동회 날 먹을 점심으로 간단하게 피자나 샌드위치를 사가는 경우도 늘었다지만, 하루 종일 뛰어 노느라 땀을 흘릴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이고 싶은 것은 변함없는 우리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59살의 서울에 사는 주부 이미영 씨는 운동회 날은 먹을 것이 담긴 보따리 짐만 몇 개씩 꾸려야 했다고 기억합니다. 모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들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던 아이가 음식 보따리가 책가방보다 더 무겁다며투덜되는 소리를 달래면서 말입니다.

이미영

: 우리 애들 때는 밤을 좋아 해서 밤도 삶고 아이스 박스에 음료수도 시원하게 해서 넣고 과일하고 김밥 여러 가지 많았어요. 전 날부터 장을 봐다가 김밥 재료 만들고 해야 할 것도 많았고 좋아하는 것은 다 싸줬어요. 한보따리씩 가져갔어요. 가서 먹고 남아도..

운동회에서 열리는 경기는 학교 마다, 학년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공굴리기와 기마전, 단체무용, 이어 달리기와 줄다리기 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기 종목이라고 합니다. 종목에 출전한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편을 위해서 흙 먼지를 뒤집어 쓰고 열심히 뛰고 또 뛰었지요.

(운동회 달리기 응원소리)

혹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형이 물려 준 헐렁한 신발 때문에 뒤쳐지기도 하지만, 이날 만큼은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다시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내 친구와 내 식구들이 뒤에서 든든하게 응원을 해 준 덕분이었겠지요.

주부 이미영 씨는 뭐니뭐니 해도 운동회의 최고 절정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이어 달리기, 계주였다고 말합니다.

이미영

: 재밌었던 것은 아이들이 한복입고 무용하는 것, 그리고 애들이 달리기 하면 엄마나 아빠 선생님 이름을 부르고, 관중석에 있다가 쫓아 나와서 애들하고 손잡고 달리기 하고 그러는 게 재미 있었습니다. 달리기 하다가 종이를 주워서 종이에 적힌 데로 이름을 부르면 같이 뛰고…운동회가 애들도 한달 전부터 무용 연습하고 게임 준비하고 힘들어도 재미 있었습니다.

운동회의 결과는 양 편이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에서는 청군이 앞섰지만 응원과 질서에서는 백군이 앞섰다..뭐 이런식으로 말이죠. 어릴적에는 왜 또 무승부일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졌다고 실망하는 아이들도 이겼다고 우쭐되는 아이들도 없게 하기 위한 어른들의 작전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처럼 운동회가 마냥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탈북자 지현아 씨는 얼마 전 6살 난 아들과 함께 남한에서 첫 운동회를 경험했습니다. 지 씨가 기억하는 북한의 운동회는 남한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지현아

: 보니까 거의 비슷해요, 공차고 달리기, 계주 달리기, 부모님들도 많이 오셔서 구경도 하시고 나름대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나쁘게 보기 때문에 우리 어릴적에는 미국놈 까부수기라는 경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수류탄 던지기도 있었고 .. 운동장도 틀렸어요 여기서는 운동장에 의자도 있고 그런데 북한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요.

다만 오랫동안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운동회를 점심시간 전에 끝내고 있다고 합니다. 운동회라고 특별한 배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살림에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챙겨 줘야 하는 어머님의 걱정도 덜기 위해서 입니다. 탈북자 지현아 씨는 북한의 운동회는 의자 하나 없는 허허 벌판 운동장에서 맛있는 도시락도, 시원한 음료수도, 구경 나온 이웃들도 없지만, 노동 동원에서 벗어나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그날 하루 만큼은 아이들에게 더 없이 행복한 날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지현아

: 북한 아이들은 방과 후에 농촌 지원을 나갑니다. 그런데 운동회날은 오전에 운동회하고 오후는 쉬잖아요 그래서 그날은 어쩌다 하는 휴식일이기 때문에 학수고대 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운동복을 단촐하게 입고 두편으로 나누고 압록강편, 두만강편 이렇게 약속도 하고, 그리고 연필이나 학습장 같은 책도 나눠주고 그런게 있어서 그날을 많이 기다립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운동회조차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나 봅니다.

얼마 전 북한의 한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바쁜 농사철이라 부모님들은 참석하지 않은 채, 아이들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 소풍을 겸한 간단한 운동회를 열었다고 남한의 한 대북지원 단체가 전했습니다. 이 일로 유치원 원장과 교양원 4명이 해임됐다고 합니다. 이유는 어린이들을 제대로 교양하지 않고 운동회를 여는 것은 식량 낭비라며 엄중 처벌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운동회는 일종의 정치적 집회와 사업으로 보기 때문에 상급당의 허락이 없이는 열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아이들, 평소에도 농촌지원이다 땔감사업이다 해서 일년 내내 방과 후에도 각종 노동 동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년에 한 두번 열리는 운동회도 자유롭게 즐기기 못한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탈북자 지현아 씨는 말합니다. 언젠가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편을 가르지 않고 모두 친구가 되는 운동회가 열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 운동장에서 자신의 아이가 뛰어 노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