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전 공사 기자 간담회 통쾌하고 감동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01.05
taeyongho_press-620.jpg 태영호 전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달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통일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북한 김정은 통치 체제의 실상 등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새해를 앞둔 지난해 말, 태용호 전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의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간담회를 접한 탈북민들은 2017년 새해에는 북한체제에 새바람이 불고 강력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들었을때 정말 통쾌 했다는 는군요.

김시연: 북한이 공포에 시달리는 노예국가라고 말 했을때 이것을 항상 우리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표현을 못했는데 그 사람은 이렇게 지칭, 표현을 하더라고요 판단이 정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여성시대에서 한국의 탈북민들은 태영호 전 공사의 기자 간담회를 어떻게 받아 드리고 느꼈는지 북한 보안서에서 근무했던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 씨로 부터 들어봅니다.

탈북자들은 같은 고향 같은 가족 같은 마음에서 테 전 공사의 얘기에 귀를 기우렸다며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공감했고 인상 깊었다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김: 김정은 정권이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얘기했을때도 너무 공감이 갔어요 이와 함께 북한정권이 3대 이상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부분도 정확한 판단으로 들렸다고 하는군요

김: 북한이 이제는 곪을 대로 곪아가지고 주민들이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가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랬다고 해도 그때 가서는 세대가 바뀌고 이미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향수가 남아 있던 사람들은 다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상황이니까 만약 김정은이 오래 살아 통치를 하고 끝나고 그 후세가 다시 잇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고 …..

그는이어 태용호 전 공사가 북한의 속 사정을 잘알고 외교관 생활을 해서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탈북이 늦어진것에 대한 후회도 한다는 부분에서 다른 탈북민들도 감동 했다고 말합니다.

김: 많은 탈북자들이 이미 나와 있는것을 아니까 그 분도 영국에서 탈북자들이 와서 사는것을 보면서 또 탈북자들이 와서 각 처에서 일을 하고 그 중 탈북기자의 글을 계속 정기적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빨리 탈북해서 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생각을 가지고 왔다는 얘기에도 감동했습니다.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남한 방송, 특히 드라마를 많은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본다는 내용도 역시 남한 방송의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김; 특별히 탈북자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다루는 드라마는 북한주민들이 더 열심히 챙겨본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그럴수 밖에 없어요 아무래도 거의다 탈북자들 가족이 북한에 거의 다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 가족은 별로 없을 거에요. 딸이 갔던 동생이 탈북했던 누구든지 이렇게 연결이 되어 그 많은 사람들이 피할 수 없이 그런 드라마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떨까 또 자신들도 한국으로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니까 탈북자들이 생활하는 드라마를 더 관심있게 보게 될겁니다.

김시연 씨도 이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를 본다면서 탈북 가족들이 힘들게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어 재미도 있지만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김: 주말 드라마라 저도 매회마다 챙겨보고 있어요, 약간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우리 탈북자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어 관심이 많이 가는 드라마입니다.

2016년에 탈북자 3만명이 넘어서자 한국 통일부가 정착지원 개선책을 발표 했는데요, 이제는 어느때 보다 북한에서는 탈북민들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김시연 씨가 한국에 와서 정착 할 때와 이번에 태전 공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특히 체제가 전혀 다른데다 북한의 교육과 생활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탈북민들이 많았는데요,

김: 저는 처음 한국에 왔을때 이게 바로 천국이지 다른 것이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석달 까지는 그때가 추웠는데 추운줄로 모르고, 제가 집을 배정 받은 것이 11월29일 이었는데 너무나 좋을 거에요 정착금을 저희는 300만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탈북 브로커 비용으로 주고해서 집에 돈도 없었고 또 기초 생활 수급비 한달에 65만원을 받았지만 많이 돈도 없는데 그냥 기쁘더라고요 직업을 구할 생각도 하면서 계속 돌아다녔어요 교회도 다니고 친구 만나러도 다니고 여기저기 돌아보고 그냥 천국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어요

천국 생활이 오래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누구나 처음에 좋았다 점점 힘든 점이 드러나면 천국이 환상이었구나 하면서 고달픔을 호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시연 씨는 특별히 정말 불만 스러운 점은 없었다는 군요

김: 저는 너무 고마웠던 것이 어디도 갈데 없어 중국에서 그렇게 쫒겨 다니고 잡혀가고 자식하고, 딸 하고도 헤어져서 딸은 남의 집에 보내고 나는 나대로 돌아다니면서 밤에는 불안해서 옷도 못 벗고 자고 하던 생각을 하니까 한국으로 오면서 비행기에서 제일 먼저 생각드는 것이 우리가 이나라를 위해 뭐 한것이 있어 우리를 받아주나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 할때 까지 우리가 흙 한삽 떠 보았던가, 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어요

처음에 한국 땅을 밟으면서 감사했고 미안했었다는 김 시연 씨는 살아 가면서도 다른 탈북민들과 마찬 가지로 일자리도 잡지 못해 힘들었지만 누구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김: 살면서 일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내가 선택해서 이런 자유민주국가에 이만큼 발전된 국가에 왔으면 그에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또 사람들 일자리를 얻어 취직해서 일 할 때 한국 사람들이 무시한다는 불만이 많던데 저는 그런것도 별로 못 느꼈어요. 한가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시간제로 일할 때 횟 집이었는데 거기 식단표 메뉴에 외래어를 많이 쓰니까 그것을 몰라 어려운 부분이 있어 사장님 한테 욕은 먹었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니까 불만은 없었어요.

김시연 씨는 딸과 함께 탈북했는데요 지금은 대학생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정말 잘 왔다며 북한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하기 싫다고 말합니다.

김: 대학도 중앙 대학교에 합격했지, 학점도 높게 나오고 장학금도 한달에 100만원 씩 받고 열심히 사는 것 보니까 내가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저 아이의 삶이 어땠을까 나는 둘째 치고 내가 딸아이를 여기 데려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태 전 공사도 외교관으로로 근무를 하면서 자녀들 모두 함께 탈북 할 수 있었다며 안심을 했는데요, 북한의 외교관이나 외국에 파견되는 관리들은 가족 모두가 같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북한의 이런 행태야 말로 비인도적이 처사라고 지적 합니다.

김: 북한에서 저희 사촌 언니도 남편이 러시아 대사관의 영사로 갔었어요. 딸이 둘이었는데 작은 딸인 어린 아이만 데려가고 큰 딸은 맡겨놓고 4-5년 가 있었어요 그러다 돌아왔는데 러시아에서 이것 저것 많이 챙겨 왔지만 그 때 가 있으면서 너무 큰 딸이 보고 싶어서 힘들었다고 그 언니가 얘기를 했었어요

이렇게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북한이 이들을 인질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분노 합니다.

김: 북한은 그래서 가족을 분리시켜 족쇄 처럼 묶어 놓는 거, 인질이죠 말하자면, 외국에 내 보낼때마다 다 그렇게 보내고 유학을 보내도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공식 여권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지만 탈북할 수 없는 그런 조건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탈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 지지 않고 지금처럼 극 소수의 사람들만 대단한 결심을 하거나 아니면 막다른 골목에서 할 수없이 오는 거죠. 제가 올때 아버지가 먼저 동유럽 루마니아에서 신발 공장을 책임지고 나가 있던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부인하고 동유럽에 데리고 나갔던 자녀만 데리고 탈북하고 그전에 북한에 남아 있던 딸을 미리 피신켜서 중국을 통해 탈북시켜 제가 올때 같이 국정원에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아주 어렵게 탈북하는거죠.

이렇게 가족이 탈북하는 것이 어려운데다 탈북에 성공 하더라도 부모 형제 친척들을 생각하면 발길이 쉽게 떨어 지지 않아 탈북을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태 전 공사 부인이 빨치산 출신 오백룡과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가족이 모두 함께 영국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오백룡하면 김일성 다음의 1,2,3 인자에 들어가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고 태 전공사의 부인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가족들을 다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북한 사회에서 빨치산 가문은 가까운 친척이 탈북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특권층 이라는데요, 아울러 외교관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세계 정보를 검열 할 수 있어탈북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네요.

김: 외국 공관에 나가 있는 사람들, 북한 정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 텔레비젼을 시청하도록 하면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한국의 정세를 파악해서 북한의 정책을 만드는데 참고한다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북한이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아무런 발전을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을 떠날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김: 매일 이런 정세를 파악하다 보니 더 잘 아는겁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 특히 주민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하지만 알면 알 수록 깨어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북한에 있는 이들 친척들은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을텐데요, 최고위층의 친척이라는 점을 감안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한데요.

김: 아마 오백룡 혈연관계의 태 전공사 부인측은 좀 봐 줄 수는 있을것 같아요 그 가족들에 대한 정부의 신뢰가 높고 그리고 주민들도 다 빨치산 항일 투사 가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쪽 가족들은 덜 할텐데 태 공사 측 가족은 공개적으로 하지 말고 비밀리에 하라는 말이 나왔데요 인권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떠드니까 김정은이 그런 지시를내렸다고 하는데, 아마 비밀리에 잡아서 처벌하거나 영원히 나오지 못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낼 것 같아요

북한정권은 이렇게 믿는 가문의 혈연관계 였기 때문에 탈북을 하리라고는 전혀 의심 하지 않았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김정은 으로서는 더 큰 배신감에 따른 분노가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워 합니다.

김: 김정은이 그 젊은 혈기에 이런 분노를 어떻게 누르고 있을지 상상이 가는데요, 예전에 황장엽 선생님이 탈북 했을때도 김정일이 얼마나 노발 대발 했으면 한국에 황선생을 사살하라는 사람까지 까지 파견 했겠어요 그 정도 였는데, 이번에도 김정은이 더 젊고 정치 경험은 없고 앞 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이번에 태영호 전 공사의 기자 간담회를 접한 주변의 아는 탈북민들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김: 우리 탈북자들을 대변해 북한의 상황을 정확하게 얘기해 줄수 있고 또 일반 탈북자들과는 좀 다르니까 믿고 의지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분이 앞으로 탈북자 사회를 빛내주면 우리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대한민국 사회에 더 떳떳해 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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