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 행사에 나타난 3대 세습 우상화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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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1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열린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지난 4월15일 북한에서 큰 행사를 치루었죠, 해마다 태양절이라고 해서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는 최대 명절 이었는데요, 하지만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도발가능성을 내 비쳐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 시키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역시 군사 퍼레이드, 대규모 열병식이 펼쳐진 가운데 김정은이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참석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김시연: 주변의 간부들에게는 가혹하게 하고 주민들에게는 엄청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것은 김일성의 영향력을 그대로 이어 받기 위한 행동이고 또 그런 점을 이용해서 주민들이 김일성을 따르듯이 그렇게 자기를 따르도록 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느껴요.

보안서에서 일하다 탈북한 김시연 씨는 3대에 걸친 세습 독재자들은 왜곡되고 변형된 종교의 우상화 작업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오늘 여성시대에서 얘기 들어봅니다.

김시연 씨는 북한에 있을때도 이런 명절을 지냈지만 그때나 지금 전혀 변함없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며 동원된 주민들의 모습도 여전하다고 안타까워 합니다.

김: 뒤에서는 욕을 하다가도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나타나면 특별하게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옆에 같이 있다보면 바이러스가 전파 되듯이 가만히 있을 수 없이 감정이 동하게 되더라고요.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학생 시절 김일성 환영행사에 동원되었을 때 당시 늘 신처럼 생각했던 김일성을 직접 만난 것도 아니고 차창너머로 보았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감격 했다는데요

김: 저도 열 여섯살때인가 그 때 김일성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순방마치고 러시아에서 청진역으로 해서 들어왔어요 그래서 김일성 환영하는 행사에 김일성 동상이 있는데 그앞에 꽃다발인 진달래 대열, 해바라기 대열, 손풍금 대열, 무용대열 등이 파트별로 짜여져서 서있어요 그래서 저는 김일성 동상 중심 맞은편에 손풍금 대열에 서있는데 김일성이 탄 차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김일성이 동상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차창문을 내리고 내다 보면서 손을 흔들더라고요 그때 김일성을 보았는데 눈물이 왈칵 나는거에요, 항상 말로만 듣던 수령, 신 처럼 생각하던 수령이 정작 내 눈앞에 있다고 하니까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옆에서는 막 울면서 만세 만세하고 부르는데 저희도 같이 따라했어요.

북한의 명절이나 행사때 보는 북한 주민들의 이런 모습이 북한지도자3세대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세뇌를 당한 때문 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정말 대댠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정작 눈앞에 나타나면 그렇게 감동이 되어요.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를 겪어보지 못했고 외부 사회를 모르기 때문에 오직 그 지도자가 세상에서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다 보니까 그런 감정이 나는것 같아요.

그와함께 열띤 주변의 분위기가 사람을 흥분과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는 듯했는데 이런 현상이 바로 북한 지도자와 이에 충성하는 고위층들이 만들어가는 하는 북한만의 독특한 사교집단 같다고 지적 합니다.

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너무 심취되면 막 울고 열광을 하면서 기도 하잖아요 그거 비슷하게 김일성 자체가 자기를 신처럼 북한 주민들을 모두 세뇌 시키기에 북한 주민들의 머리 속에는 종교가 무언지도 모르는데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변종된 종교처럼 김일성이 사람들을 교육 시키는거죠.

이와함께 주민들의 생활 총화라는 것을 통해 끊임 없이 남을 비판하고 자신의 잘못을 들추는데 이 또한 기독교의 회개를 본뜬 사악한 종교 활동 이라고 꼬집습니다.

김: 일주일에 한번씩 생활 총화를 시키는 것도 약간 종교 활동 비슷한 느낌으로 하는데,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 가서 회개 하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것이지만 북한의 김일성이 생활 총화를 시키는 것은 너무 강압적이고 강도가 세면서 무섭게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행위를 더 심화 시켜서 자기를 신적인 존재처럼 만들고 주민들이 자신을 신처럼 모시고 따르도록 만든 변종된 종교같은 느낌이 있죠.

이런 현상이 무려 3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는데 3대 세습의 김정은 역시 주민들은 그런식으로 다루면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일이 지속되어 갈지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런 방식을, 특히 할아버지가 주민들에게 더 희망이 있었다고 보고 그 모습 외모를 많이 흉내내고 따라하고 주민들도 그것을 보면서 잘못하는 점도 많지만 김일성을 겹쳐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김일성의 집안이 일제 시대에서 해방을 시켰다고 생각하고 김일성이 피어린 투쟁으로 북한을 세웠고 이런 것이 사람들 머리 속에 꽉 박혀있기 때문에 그리고 김일성의 손자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거죠.

하지만 지금은 예전 김일성 떄의 얼굴만 보아도 감격하고 무조건 열광하는 하는 양상은 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는데요, 하지만 동원된 군중 속에도 감시자가 있기 때문에 쉽게 달라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 그런데 지금은 주변 간부들도 무조건 복종하지 않으면 처형하기 때문에 김정은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많으면 불이익 온다는 것을 너무 잘 알죠 그리고 주민들이 행사에 동원되면 보위부 스파이들이 다 나와 있어 거기서 개인 주민이 불순한 행동을 했다거나 만세도 건성으로 부르고 꽃다발도 건성으로 흔들었다면 꼭 잡아내거든요 그러니까 두려워서 마음은 어떻든 간에 열심히 흔들고 하는겁니다.

모든 행사마다 주민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보위부원들이 요소요소 마다 있어 주민들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억압이라고 표현합니다.

김: 김일성이 죽었을때 추모 행사를 석달을 했어요 그 때 당시 1994년도 였는데 그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는지 7월 일에 사망했는데 그 여름이 너무 더웠어요 그런데 주민들은 석달 동안을 매일 동상에 나가서 김일성을 부르면서 울고 불고 해야 되는데 부모가 돌아가셔도 석달 동안 매일 울고 불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매일 동원 시켜서 그렇게 하니까 그 어간에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잡혀가는 사람들도 있고 비판받고 제대로 참가 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안한다 수령님 돌아가시는데 왜 눈물 한방울도 안 흘리느냐는 식으로 보위부에서 추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힘들게 그 석달동안 행사하러 다녔거든요.지금도 여전히..더 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 같아요.

김시연씨는 강도를 더해가는 폭압정치에 힘들게 쥐어짜며 무섭게 다루는 것을 그 나라를 떠나 외부에서 바라 보니 북한의 변종된 종교 형태라고 하네요, 김시연 씨는 북한에 있을때 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김: 저는 북한에서 아버지가 외국 소설을 많이 가져다 보셨어요 그래서 소설책을 많이 보다 보니까 거기서 종교니 기독교니 하는 것을 보았지만 북한에서는 종교, 기독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종교는 소설 책 에서나 나오는 다른 나라의 얘기지 북한 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처럼 느꼈거든요.

그런데 가끔 씩 북한 뉴스에는 초청받은 외국의 손님들이 사찰이나 교회 혹은 성당을 방문 헀다는 내용을 들었을때 큰 혼란을 느꼈다고 전합니다.

김: 외국인들을 초청해서 북한에 데려오면 이들을 평양의 절이나 교회를 데리고 가서 참관 시키더라고요 그런데 뉴스에서 이렇게 나와요 “오늘 에티오피아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김정일을 만나고 평양에 있는 절에 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목사를 만나 예배를 올렸다” 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종교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저거는 뭐지 그러면서 크게 관심을 갖거나 별다른 의문점을 갖지 않았어요.

북한의 종교정책은 명분상의 종교 허용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토지개혁과 노동정책을 통해 탄압과 행정적 간섭을 심화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종교 말살정책으로 일관했는데요 하지만 대외선전용으로, 남한 종교인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대남전략용으로의 기능만 눈 속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 태양절 경축행사가 한창인 평양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16일 부활절 예배가 진행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는데요, 평양에 체류 중인 해외동포들과 외국인들이 참가했다는 뉴스는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저것이 뭐지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 이라고 김시연 씨는 지적 합니다.

김시연 씨는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머물때 기독교를 접할 수 있었다는데요 당시 충격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김: 중국으로 탈북해 기독교를 처음 접하고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때 너무 감동이 컸어요 두만강 건널때 죽을 고비였을때 우리가 말로만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때는 하느님이라고 했어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마음속으로 하면서도 실제도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무의식 적으로 찾았는데 정작 중국에서 교회에 가서 예배를 처음에 드렸을때 감동이 너무 컸어요.

김시연 씨는 고향의 가족들, 친척 친구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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