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영국 탈북민단체, 2017년 한해를 돌아본다] ➃ “엄마 이제는 나와 함께 해요”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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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 정착한 탈북민 박지현 씨(왼쪽)와 아들 박영준 씨.
영국 런던에 정착한 탈북민 박지현 씨(왼쪽)와 아들 박영준 씨.
RFA PHOTO/이원희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

영국에 탈북민들이 정착한지 13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04년에 탈북난민 1호 정착 이후 꾸준히 늘어 이제는 7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탈북민 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어린 자녀들이 중고등 학교 학생으로 그리고 대학생 세대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영국 멘체스터에 정착한 북한인권 운동가, 박지현 씨는 “유럽북한인권 연합”, 지금은 “커넼트 북한”으로 바뀐 대북 민간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영국 의회와 대학교 그리고 각종 단체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 특히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팔려간 여성들의 강제북송 저지와 그 여성들이 중국에서 그리고 북한 두 나라에서 겪는 참혹한 인권상황을 알리고 있습니다.

박지현 씨도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에서 낳은 아들을 둔 채 강제 북송으로 다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5살된 아들을 몰래 찾아 영국에 정착했습니다.

이 아들, 박영준 씨가 올해 런던 대학에 입학해 어엿한 대학생으로 성장했는데요, 박영준씨와 어머니 박지현 씨를 런던에서 함께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박영준 씨는 자신감에 차있었는데요, 올해 입학한 런던 대학이 너무 좋다고 자랑입니다.

박영준: 런던 대학이면 영국에서도 일러주는 대학이거든요 특별히 제가 다니는 대학은 비즈니스를 하는 대학이라 영국에서 이름있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만든 대학으로 정말 좋은 대학입니다. 학교생활은 즐겁고 친구들도 많아 좋습니다.

박지현씨는 이 아들과 함께 중국에서 몽골로 탈출하는 과정에 북한인 남편을 만나 한국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2008년 영국에서 난민 자격을 얻었습니다.

박지현: 5살 때 중국에 두고 가면서 저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북한이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내가 만약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내 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성장해서 대학생이 되었고….

한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국으로 온 영준씨는 이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꾸준히 열심히 노력 했다고 하네요.

박영준: 처음 배우는 과목들이라 제가 좀더 다른 과목들 보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인터넷이 좋으니까 인터넷도 뒤져보고 관련 비디오도 많이 보고 공부했습니다.

박지현 씨는 아들이 영국에 와서 처음 학교에 갔을 때 너무 안쓰럽고 걱정이 되었다며 그 때를 되돌아봅니다.

박지현: 영국에 왔을 때 첫 날에 저하고 남편이 학교에 데려다 주고 막 울었어요 영국은 다른 곳 하고 달라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문을 탁 닫아요 처음에는 아들을 감옥 같은데 넣는 것 같아서 철창 너머로 영어 한마디도 모르는 애를 그 학교 안에 두고 나오니까 걱정이 많았어요 처음 한 달은 애가 영어도 모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이러 저러 애기를 할 텐데 영어를 모르다 보니까 싸움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에 두 번 불려갔다 왔는데 그런 다음에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더라고요 보니까 혼자서 사전을 놓고 공부하는데 아이가 다시는 이런 일로 엄마를 학교에 가지 않게 하겠다고 하면서 공부를 하더라고요 자지도 않고…

또래 아이들보다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나서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엄마인 박지현 씨도 마음이 놓였다고 하는데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다만 북한에서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조금씩 도와준 것 밖에 없었다는 군요.

박지현: 다른 애들보다 많이 늦어지니까 새벽에 4시에 일어나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공부하고 영국에 온지 10달만에 사립학교 시험을 쳤어요 합격을 맞았는데 그 때는 장학금을 신청하면 갈 수 있었는데 그 신청을 할 줄 몰라서 못갔어요 그리고 중학교에 갈 때 시청에서 사립학교에 합격한 학생이라고 좋은데 학교를 보내 주었어요 그 후로는 모든 것을 자립적으로 다 했고 가끔 제가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은 9학년 까지 조금씩 알려주었고 그 후로는 혼자서 다 했어요.

영준 씨는 자신이 원했던 영국에서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고 아버지의 격려와 응원이 많은 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박영준: 엄마가 북한에서 선생님이셨고 머리도 좋으셔서 저도 조금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빠가 항상 공부할 때 집중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었고 당연히 엄마 아빠 덕분에 제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영준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표정에서 따뜻한 가정 특히 엄마 아빠가 자녀 들을 많이 응원하고 격려해 주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박영준: 당연히 그랬죠. 아빠가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시고 좋은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 알려 드리고 하니까 항상 든든하게 받쳐 주셨어요 아무것이나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 아빠가 받쳐 주셔요.

특히 엄마는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북한의 인권, 강제북송 당한 여성들이 북한의 노동교화소에서 인권이 완전히 말살된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하는 상황을 알리는 활동으로 분주하지만 엄마를 아주 자랑스러워 합니다.

박영준: 저는 엄마가 Facebook 이나 트위터 에서도 일하시는 것을 자주 보거든요 유엔도 가시고 외국에도 나가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니까 ... 저번에 국회에 가서 북한 인권에 대한 것을 증언하신 것도 알고 .. 항상 다니시면서 증언을 하시고 활동을 하시니까, 너무 바쁘셔서 어떤 때는 좀 좋지 않을 때도 있어요.

영준 씨는 어머니가 너무 바쁘게 어떤 일을 왜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 언제든지 어머니가 필요로 할 때 흔쾌히 돕는 지원자이기도 합니다.

박영준: 엄마가 자주 도와 달라고 하시기도 하고 해서 도와드리고 지금은 대학에 들어와서 시간도 좀 많아지니까 엄마가 일하시는 것을 통역도 해드리고 여러 가지로 도와 드리고 싶어요.

박지현 씨도 이제는 아들이 여러 면으로 많이 도와 주고 있어 든든하다고 하네요.

박지현: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너무 뿌듯해요 제 아들이지만 저에게 조언자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동료처럼도 느껴져요.

엄마가 다른 여성들이 선뜻 나서서 증언하지 못하는 일을 이렇게 앞장서서 하는 것에 대한 아들로서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요,

박영준: 저는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끼리 서로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 보기도 하거든요 그런 데서도 저는 자랑스럽게 BBC 방송에 가서도 엄마가 하시는 일을 자랑스럽게 어디에 가서나 얘기를 하고 있어요.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여성의 80%가 인신매매에 희생돼 성 노예가 되거나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박지현 씨도 탈 북해 중국인에게 팔려가 아들을 낳고 살다 강제 북송 당해 노동 교화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탈 북해 아들을 찾았는데 영준씨도 이 일을 잘 기억하고 있네요.

박영준: 저는 다 기억을 해요 조그마한 일도 다 기억해요 어릴 때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엄마는 먼데 가서 일한다든가 돈 벌어서 다시 돌아 오신 다던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엄마가 한참 되도록 아무 연락이 없으니까 정말 다시 돌아올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엄마가 다시 돌아와 주셨으니까 참…..

중국인 가족들은 엄마가 너를 버렸다, 이제 안 돌아 온다는 얘기를 자주했지만 영준 씨는 어머니가 다시 꼭 돌아온다는 믿음이 그 어린 마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박영준: 제가 말 안 듣거나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이것 안 하면 엄마가 안 돌아 온다 이렇게 하면 엄마는 너를 다시 보지 않는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을 믿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2년 후 엄마가 이 어린 아들을 찾아왔는데요,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하네요.

박영준: 그때는 다른 생각없이 좋았어요 그 어린 나이에 다시 엄마를 보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엄마를 보았다는 것 외에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엄마가 연락을 한 것이고 다시 돌아 왔다는 것 엄마가 약속을 지켰다 라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옆의 가족들이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던 자신의 믿음이 옳았다는거죠. 엄마가 중국인 가족들이 모르게 아들을 데리고 몰래 도망쳐 나옵니다.

영준 씨는 그때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드렸을까?

박영준: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저는 엄마, 엄마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크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저는 엄마 아빠만 있으면 돼요.

엄마 아빠 동생들 모두 5가족이 따뜻하고 아늑한 가정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데 혹시 북한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박영준: 우 !!! 그런 생각 해보지만 저는 지금 영국 생활이 익숙하고 영국사람이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집에서도 영국 방식대로 살고 말하는 것도 영국 방식이니까, 북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북한 소식은 자주 듣고 볼 수 있는데 북한에서 일어나는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 소식을 들을 때는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박영준: 요즘 따라 북한의 핵 실험, 핵폭탄 소식이 뉴스에 나오니까 저는 과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봐요, 북한이 정말 이런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는가 그래서 북한이 이런 것을 만드는데 이게 사실일까 거짓일까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해요, 저도 북한이 나쁘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아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너무 다르니까 제가 북한 사람이라는것이 부끄러울때도 있어요.

북한은 3대에 걸친 김정은 정권이 온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국가라는 면을 볼 때 영국과는 정말 다르다며 이 지구상에 이렇게 다른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박영준: 완전 다르죠, 영국은 자유로운 국가잖아요 가고 싶으면 아무 곳이라 갈 수 있고 공부 아무것이나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자유롭죠. 영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아 서로가 난민들이고 전혀 차별이 없죠 그런데 북한이라는 나라는 전체가 감옥처럼 그 감옥의 벽 안에서만 활동을 하는 것이니까 만약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 못 살 것 같아요.

영국에서 자유롭고 신나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며 사는 영준씨는 북한에 있는 같은 또래 대학생들, 젊은 친구들에게 꼭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박영준: 모든 말을 믿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저도 크면서 어른들의 말 이라고 해서 다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무엇인가 들었다면 자기 절로 알아보고 자기 절로 리서치, 찾아 보고… 말한다고 해서다 맞는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특히 국가의 지도자라도 그 말이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고 강조 하면서 듣고 그대로 받아 드리지 말라는 거죠. 그리고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나쁜 점이 있는데 자신을 위해 꿈을 이루려는 개인의 목표와 국가에서 강압적으로 주어진 목표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북한 당국은 꼭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박영준: 저 같은 나이에는 즐겁게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해야 하지만 북한의 젊은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목표가 주어졌고 무조건 그것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또 운이 좋았던 것은 두 번씩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엄마의 용기 였다고 전합니다.

박영준: 당연히 엄마 덕분이죠, 엄마가 저를 찾아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금도 중국에 남아 있을 수 있고 또 살아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없죠.

지금 런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부모들이 등록금 때문에 어려운 것은 아냐는 질문에 박지현 씨는 자신과 남편의 생각을 아들에게 이렇게 들려줍니다.

박지현: 저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 아빠도 그것이 바로 아들에 대한 투자이니까 아까워하지 말자고 이 투자가 앞으로 몇 십 배 큰 것으로 돌아올 것이고 또 너를 위해서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네가 투자 할 것이니까 지금 투자하는 것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북한은 교육도 모두 무상 교육이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사실은 무료가 아니고 일을 하고 받는 값이라고 강조합니다.

박지현: 국가 자체가 저희에게 무료 교육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저희가 일을 다 하거든요 늘 한 두 시간 씩 일하고 봄 가을철에는 1년에 600시간은 국가를 위해서 저희가 일을 하거든요 아무런 댓 가도 없이 그렇기 때문에 무료라고 할 수 없고, 여기 영국 대학생들은 편한 것 같아요 본인들이 하고 싶어하는 학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니까.

아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배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데요, 용감하고 씩씩한 박지현 씨도 역시 엄마였군요.

박지현: 고등학교에 갔을 때 집하고도 떨어져 있었어요 저희가 사는 멘체스타 쪽에는 법을 배우는 곳이 없어서 혼자서 따로 나가 있으면서 아르바이트 하며 살았는데 그때는 공부도 해야 하니까 시간제 일은 못하고 셀프 배달 했어요 자전거 타고 뒤에 배달 짐 메고 가끔씩 우리 사는 곳에도 오면 저하고 애기 아빠가 보게 되는데 눈물 나거든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지고 다니니까,

힘들면 그만 두라고 여러 차례 권유를 했다는데요, 하지만 아들은 이런 힘겨운 일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던 것을 알고나서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지현: 가끔씩 물어 보았어요 힘들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아들이 말하는 것이 배달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하는 스킬, 요령이 늘었고 자기가 앞으로 해야 될 회계 공부에도 마케팅처럼 이용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얘기 하니까 너무 어른스럽게 얘기를 해서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옆에서 잠깐 보아도 매사에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자신 있는 모습이 엄마의 내면에 감추인 보이지 않는 힘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지현 씨는 아들을 볼 때 가끔씩 지금도 중국에서의 일이 떠올라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다는데요,

박지현: 저 아들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서 태어났잖아요, 만약에 북송 되어서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면 사람취급 못 받는다고 해야 되죠 아마도 중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남들이 입당하는 당에도 갈 수 없고 군대도 가지 못하고 탄광이나 광산 같은 데서 일 할 수 있는 그런 형편밖에 안되잖아요 그런데 영국으로 왔기 때문에 자기의 꿈도 활짝 피울 수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는 박지현씨, 북한 주민들 그 누구에든 탈 북 기회가 온다면 …

박지현: 저는 기회는 사람에게 한번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기회는 계속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북한에서 살다 두 번 탈출을 했지만 그래도 꿈처럼 한국으로는 가지 못하고 영국으로 왔잖아요 이것도 우리에게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박지현 씨는 앞으로 북한에서 인민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놓지 거나 미루지 말고 꼭 잡으라고 당부합니다.

박지현: 언젠가는 단합해서 북한 정권 지도층과 싸워야 될 때는 지체하지 말고 함께 다 일어나야 되고 그 기회를 놓치면 북한은 언제까지 독재 체재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 기회를 꼭 잡아야만 앞으로 우리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이 주어지고 자유를 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 연말 특집방송:: 영국의 탈북민 한해를 돌아본다. “엄마 이제는 나와 함께해요”, 제작,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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