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여서시대에서는 격주로 탈북자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생활,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의 마음조리며 살았던 얘기 그리고 다시 중국을 탈출해서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사연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웃음으로 풀어놓습니다.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간 탈북여성 정경화 씨의 사연을 계속해서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라오스에서 메콩 강을 건너 한국으로 가는 있는 마지막 관문 이라고 할 수 있는 태국으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질문)
지난시간에 메콩 강에서 쪽배를 타고 처음에는 흔들거리던 배가 간신히 균형을 잡아 태국에 도착한 내용을 들었는데요, 태국에서 벌어진 상황은 어땠는지 들려주시죠.
답변)
죽느냐 사느냐 하면서 그래도 태국까지 들어서서 기차를 탔는데, 기차에서 그만 단속에 걸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태국에 들어와서 또 지방경찰에 잡혔어요.
질문)
기차에서 단속 됐다는 것이 기차 안에서 검문검색에서 걸렸다는 말인가요?
답변)
검문보다도 기차에 일행이 와락 올랐는데 방콕까지 가는 기차인데 기차 안에 손님들이 거의 없다보니 우리 일행 9명이 눈에 띄었어요. 옷차림도 그렇고 9명이 줄줄이 같이 움직이니까 아무래도 기차에 오르는 고객들을 다 보잖아요 조선말로 하면 승무안전원이죠 우리가 기차에 오른 다음 자꾸만 눈치를 보니까 기차에 오르자 기차가 떠나면서 승무 경관과 열차 승무원, 표 검색하는 사람과 경찰이죠. 그 사람들이 우리가 탄 기차 칸으로 와서 영어로 물어보더라고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해서 귀를 기우려 보니 저팬? 일본이냐고 물어요. 우리가 아니라고 하니까 코리아냐고 해요 그래서 내가 자신도 모르게 노스 코리아라고 했어요.
질문)
남한, 사우스 코리아라고 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답변)
그렇죠, 그런데 경찰이 알겠다고 슬쩍 웃으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 경찰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어리벙벙했어요.
그런데 내막은 태국에서 북한 탈북자들이 많이 잡히잖아요? 후에 알고 보니 우리 같은 북한 사람들을 잡으면 태국에서 벌금을 내고 한국까지 가니까 이 사람들이 또 한 건 올렸다며 좋아한 것입니다. 벌금을 받을 테니까 ....한 정거장만에 내리라고 해요. 경찰관이 같이 내려서 우리를 그 정거장에서 가까운 파출소로 인계했어요. 우리를 인계한 경찰은 다시 기차타고 가고 우리는 그 파출소에 남게 됐습니다. 결국 기차타고 한 정거장 만에 잡힌 겁니다. 파출소에서는 모두 눈만 말똥말똥 뜬 채 파출소의 경관들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거의 한 시간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중국말을 하는 태국 사람을 데려 왔어요. 우리는 중국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한명 한명씩 이름대고 고향이 어디고 중국 어느 곳에서 떠났는가, 조사를 받았어요.
조사한 뒤 통역하는 사람이 중국말로 내일 재판을 받고 재판 결과가 나오면 다시 방콕으로 가야 한데요. 우리는 어떻게 되든 방콕까지 가면 되니까 그곳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2-3일내로 방콕에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침이 되자 다른 곳으로 이송 했어요. 그곳에서 방콕이 한 12시간 거리가 되는 것 같은데 그냥 지방 경찰로 이송을 하는 거예요. 지방경찰에서 또 심문을 하더라고요. 이송된 곳에서 또 통역이 필요하니까 한국말 하는 사람이 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더니 한국 사람을 데려왔어요. 그분이 얘기하기를 자기는 한국 사람이라는 말은 못하고 우리보고 힘들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이 했다며 김정일이 자국 내 많지도 않은 국민들을 돌보지 않아 이렇게 고생을 시킨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김정일에 대한 말이 우리가 듣기에도 창피했어요. 먹여주지 못해 이렇게 나와서 고생한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니까 이 사람은 북한 간첩은 아니고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그 사람한테 우리를 북한으로 보내지 않게 여기다 말 좀 잘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일행 9명이 모두 제발 북한으로만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 한국 사람도 ‘북한으로 가면 절대 안 되죠.’ 하면서 말을 잘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이 태국경찰에게 통역을 해서 우리 9명의 문건이 다 됐어요. 그런데 재판받는 기간 동안 감옥에 있어야 된다고 해요.
질문)
그럼 그 감옥에서 얼마나 있었어요?
답변)
한 달 걸렸어요. 지방감옥에서 한 달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 얼마나 지루한 지 세상에 일주일이면 될까 보름 지나면 될까 그런데 27일 지나 그 문건대로 재판을 받았어요. 재판받을 때 그 한국 분을 데려왔는데 재판에서 특별한 말은 없고 벌금을 한 사람당 물어야 한다고 해요. 우리는 중국에서부터 중개인이 태국 돈을 다 바꾸어 주어서 개인이 태국 돈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벌금을 물더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에 벌금은 물 작정이었죠. 지금 벌금이 얼마인지 생각이 안 나는데 ....
질문)
벌금이 얼마였는지 잊어버리셨군요. 큰 액수의 돈은 아니었나요?
답변)
네, 그때는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요구 하는 대로 돈을 다 냈어요. 돈 내고 이틀을 또 기다렸다 차가되면 방콕으로 보낸다고 했어요. 그런데 또 이민 수속하는 절차를 밟더라고요. 난민수용소로 가는 절차를 밟기 위해 외국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들렀어요. 거기서 보니까 정말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1-2년씩 기다리며 우리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도 보았어요. 하긴 우리보다 한심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만큼 자유가 없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자기마음대로 다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보다 한참 낫죠. 그러나 우리 보기에는 남방 사람들이라 얼굴도 까맣고 어지러워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보다는 그래도 자유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이민 수용소 가는 절차를 한 명씩 밟다보니 3시간정도 걸렸어요. 그리고 그곳을 떠나 12시간 동안 걸려서 방콕으로 왔어요.
질문)
12시간이나 걸렸군요.
답변)
네 그 전날 오후 3시에 떠났는데 다음날 새벽 3,4시 에 도착했어요. 우리는 방콕에서는 태국경찰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태국 말을 하나도 모르니까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다녔죠. 난민수용소에 가니까 정문에서부터 한사람씩 이름을 불러서 들여보냈습니다. 새벽이라 잠깐 눈 좀 붙이고 아침이 되니까 밥을 주더라고요. 아침이 되니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고 말소리가 우리 북한말 소리가 들려요.
질문)
북한말 들으니까 반가우셨겠어요.
답변)
네 북한 말 들으니 이제 우리가 제대로 왔구나하는 생각도 나고 북한 사람들을 보니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빨리 이곳에 와서 한국에도 빨리 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반갑고 .... 아침을 먹고 수용소에서 다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고 절차를 또 밟아서 아래층에 있다가 탈북자들이 모두 같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문을 여는데 다 철창문이죠. 난민수용소래도 감옥과 같아요. 철창문을 열었는데 우리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중국에서 춥기 시작할 때 떠났는데 12월인데도 태국은 덥죠. 그런데다 인원이 400명 정도 있었는데 400여 명 이 있는 그 안에 모든 사람들이 붙어 있는데 그저 숨이 탁 막히더라고요 발 디딜 자리조차 없어요, 정말 난민수용소에 400여명이나 있었으니 정말 놀라셨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 들어야겠어요. 다음시간에 계속해 주시죠. 말씀 감사합니다.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 지난해 초 한국에 입국한 탈북여성 정경화씨의 얘기였습니다. RFA 이원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