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달력 속에 되살아난 북한의 옛 교회 모습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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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평양 장대현 교회 모습.
사진-사단법인 우리민족교류협회 제공
안녕하세요? 여성시대 이원흽니다.

1900년대의 북한 황해도 소래교회, 초가지붕너머로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나고 막 새잎이 돋은 수양버들이 늘어진 운치가 고향의 내음을 물씬 풍겨납니다. 사립문이 활짝 열려진 교회 문을 향해 아기를 등에 업은 젊은 새댁, 아이 손을 잡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엄마, 두루마기와 저고리차림의 남성 교인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수묵 채색화인 조선화 형식의 옛날 조선의 농촌 초가집이 바로 교회당 이었던 거죠.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황해도 소래교회 라는 북한 체 글씨와 리차국 북한 화가의 이름, 그리고 붉은 도장 낙관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남한에서 제작한 아 잊혀진 북녘 옛 교회라는 제목의 2012년 올해 달력이 좀 늦게 선보였습니다.

cut: 북한 화가들에게 의뢰해서 그렸는데 동양화입니다.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수채화로 2012년도 달력을 제작한 남한 사단법인 우리민족 교류협회의 송기학 이사장의 얘기였는데요 여성시대, 오늘은 잊혀 진 북한의 옛 교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달력을 만든 사연을 전해 드립니다.

찬송가: 주 은혜 놀라와

북한 교회 그림이 들어간 달력제작 사업은 지난 2005년도부터 시작되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올해는 경제적인 형편으로 달력 사업을 중단하려고 하다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송 이사장은 전합니다.

송: 올해는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이북 5도민 기도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서 그쪽 사람들을 접촉하다 보니까 굉장히 관심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달력을 늦게 시작해서 올해는 늦게 나왔습니다.

달력을 만든 목적은 많은 남한교회가 언제든 때가 되면 북한 교회의 재건을 희망하며 다짐하고 있어 그렇다면 북한 교회의 자료를 확보하자는 차원이라는데요,

송: 한국교계가 북한교회의 재건을 희망하고 있다면 어떤 교회들이 어디에서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자료는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차원에서 시작을 한 겁니다.

올해 달력에 실린 북한 교회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남한 사람들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한 그런 교회인데요. 송 이사장으로부터 어떤 교회들인지 들어보죠.

CUT: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셨던 산정현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개성 북부교회, 황해도 풍천 읍 교회, 그때 당시에 가장 큰 교회로 알려진 황해도 사리원교회, 당시 교회 교육기관으로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강서감리교회, 또 우리나라의 최초의 목회자를 배출한 평양신학교, 장대현 교회에서 성령 폭발 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원산중앙교회, 우리나라 주일학교의 태동이라고 할 평양 남산현 교회, 우리나라 교회 역사의 부흥 전환점이 되었던 평양 장대현 교회, 황해도 소래교회는 전 세계의 선교사상 선교사가 그 나라를 들어가기 전에 그 민족에 의해 순수하게 교회가 만들어진 것이 기독교 사상 처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최초의 교회이자 우리민족의 손에 의해 건립된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 대동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님이 순교하셨는데 토마스 목사님의 순교를 기념해 설립한 교회 처음에는 평양 조왕리 교회라고 했는데 나중에 토마스 기념교회로 바뀌죠. 그리고 함남 북청 성결교회 이렇게 1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북한 교회는 한국의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고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기에 교회 복원은 남한교회들의 오랜 염원으로 실질적인 준비 작업이라고 강조합니다.

CUT: 통일이 완벽하게 남한 체제화 된다면 모르지만 통일되기 전에 중국과 대만과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면 그 때 한국교회가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은 땅이 개인이 사고 팔수 있는 북한구조가 아니잖아요, 그러려면 중요한 것이 옛날에 교회가 있었던 그 자리를 북한에도 종교법에도 있다는데 물론 당국의 문제겠지만 예전에 종교부지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놓을 필요가 있어서 시작된 사업입니다.

송기학 이사장은 지난 2007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회주의 국가 종교법에 지금 현재의 건물이나 토지가 과거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증명되면 관련 종교 기관에 되 돌려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합니다.

송: 북한 중국, 러시아 측과 관계를 하다 보니까 사회주의 국가에 그런 종교법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북한에 드나들 때 도 그런 유사한 종교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이런 취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진행하다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당시 2007년도에 평양 대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계신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했었죠. 그 때 북한당국의 협조로 만수대 창작사가 북한의 유명한 화가들에게 직접 지시해 성사된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송: 제일 처음 제작할 당시 2005년도 달력은 조심스러워서 한국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그러다 북한화가들에게 의뢰해서 그렸는데 이런 과정에 북한을 드나들면서 북측화가들에게 교회 그림을 진행해 온 일이었습니다.

북측 더구나 만수대 창작 사 소속의 북한 내 유명한 화가들이 북한에서는 철저하게 금지된 교회그림을 그린다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고 송 이사장은 전합니다.

송: 이 일이 계속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는 북한에서 그려온 것은 맞은 것이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그려왔다는 것은 말씀 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에서 새를 가장 잘 그린다는 리창옥, 생동감 있는 소나무를 잘 묘사한다는 리명국 등 교회 그림 작업에 참여한 4명이 모두 북한에서는 유명한 화가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900년대 당시 교회그림이라 글로나 말로 전해진 교회의 모습은 있었지만 고증을 거친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네요. 더구나 당시에는 카메라도 귀했기 때문에 남겨진 사진조차 없어 더욱 어려웠다고 얘기합니다.

송: 그때 당시만 해도 사진기가 흔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다보니 옛날의 교회의 모습이 어떤지 찾기가 대단히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면 미국의 어느 장로회의 파송선교사가 가서 일했나 하는 것을 추적하면 선교사들이 선교회에 보고했던 보고 문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를 스케치를 한 것이라든지 옛날의 선교사들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흑백사진을 찾아가지고 지금 그림은 칼라로 되어있는데 그래서 교회 색깔문제는 우리가 100% 당시 모습의 색깔이라고 할 수는 없죠.

이러다 보니 달력 그림들은 교회 모습은 거의 원본 그대로이지만 주변 배경은 당시의 색깔이 좀 다를 수 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직접 그 교회를 다녔던 실향민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송: 실향민들과 당시의 상황을 펼쳐 놓고 보았더니 사진 보는 것과 똑같다고 감탄하시더라고요.

해방되고 나서 북한 쪽의 교회는 남한 쪽 교회보다 그 수가 훨씬 많았다는데요 당시 교회에는 여성신도가 많았었다고 하는데요,

송: 우리나라가 행방당시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쪽에는 한 3.000여개의 교회가 있었고 남쪽에는 1.000 여개의 교회가 있었어요. 지금 현재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구조로 보았을 때 3분의 2 정도가 여성신도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북한 쪽도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실향민들도 북한교회 달력에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아직 못 본 분들은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실향민 최연화 할머니 (78세) : 고향이 황해도 재령인데 거기 감리교회도 있었고 장로교회도 있었어요. 신도는 여성들이 더 많았죠 남자들보다. 고향의 기억은 친구들과 성당, 학교 다니던 기억들이 잊혀 지지 않아요.

배재현 장로님: 세상을 뜬 우리 집사람이 평양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낙랑 교회라고 하던데 집사람이 있었다면 아주 반가워 할 거에요. 나는 대구에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주일학교 다니던 시절이 그립죠. 그런데 예전 교회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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