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후 장성택의 집권 원해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6.04.21
jang_kim_b 사진은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등과 함께 운구차량을 호위하는 장성택.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는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만 19살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의 법을 만들고 지역 발전을 위해예산을 확보하고 국민의 평화를 위한 외교 활동 둥의 일을 하는 즉 일꾼을 직접 뽑는 것입니다.

김: 처음에 너무 놀랐던 것이 후보자들이 막 경쟁을 하는 거예요 말은 들었지만 정작 눈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빨리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고 싶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인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찍으라고 하면 찍는 거예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처음에 선거, 투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네요. 찬, 반을 묻거나 아니면 여러 사람 중에서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뽑는 것이 투표인데요, 북한에서의 투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보안 서에서 일을 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의 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투표 때 북한에서 제일 바쁜 부서가 보안서의 주민 등록 과라는데요, 해방불명 또는 사망한 사람들을 정확하게 점검해서 총 투표할 인원을 확보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군요.

김: 선거 때는 행방불명이 되거나 혹시 돌아가신 분들이 사망신고가 안 되어 있거나 이런 일들을 정확히 검증 하면서 주민등록 과에서 대 정리를 하는 거예요 선거 투표에 참여할 모든 인원들을, 행방불명자 된 사람들의 행처를 찾고 또 아픈 사람은 몇 명이나 되고 어느 정도 아픈지도 알아보고 그래서 선거구 마다 투표함을 들고 인민반장하고 책임자들이 같이 환자가 있는 집에 투표함을 들고 가서 투표를 받아요. 그리고 거주 이동이 다 확인되어야 이사 간 지역에서 선거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되고...

특히 행방불명자에 대해 조사를 하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고 중요하다는데요, 하지만 북한의 치안상태로는 정확한 조사를 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김: 미 공급이 시작되면서 중국으로 간 사람들 장사 다니다 죽은 사람들, 여기 한국처럼 죽으면 정확하게 신고를 하고 경찰이 수사하고 이러 일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장사를 나가 맞아 죽어, 죽인 사람이 어디다 묻어도 알 수가 없어요. 조사할 길이 없죠.

행방불명자의 조사가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중국으로 장사를 하러간 사람이나 친척 집을 방문한 사람들도 모두가 강을 건너 돌아와서 선거를 반드시 하고 다시 가야만 한다는데요,

김: 선거에 빠지면 중범죄로 치거든요, 9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 갔던 사람들은 다 탈북 한 것이 아니고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까 중국에 가서 다만 얼마라도 벌어올까 하고 갔다가 팔려가거나 그냥 눌러 앉거나 한 사람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선거를 한다고 그러면 강을 건너서 북한에 나와서 선거하고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렇게 북한은 선거를 아주 중요하게 여겨요

행불자에 대해서는 내무반장들이 가정방문을 통해 가족들이 다 제대로 있는지 없어진 사람은 누구인지, 하지만 이들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사망으로 처리를 한다는군요.

김: 언제 장사하러 갔는데 언제부터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다 이러면 대체로 죽었다고 기록을 하는 거예요 선거전 까지 안돌아 오면, 행방 불명 되었다 또는 중국으로 갔다고 하면 이정권이 싫어서 도망갔구나 하는 느낌을 주니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죽었다고 기록을 하게 하더라고요.

한 지역에서 여러 사람이 나와 경쟁을 통해 선거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조사를 하는 이유는 투표율을 최대치로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 항상 99.9%가 투표 했습니다, 보도 시간에 이렇게 선거가 최대 성과로 끝났다고 방송하거든요 그러니까 정권이 선택한 사람은 무조건 지지해라 지지 하지 않으면 반대파 다 라고 보는 거죠

어떤 대의원 선거에서는 누가 나오는지 나온 사람을 왜 지지를 하고 뽑아야 하는지 주민들은 거의 모르고 가끔씩 지역을 위해 헌신하며 일을 한 지역민이 나올 때 만 알 수 있다는 거죠

김: 각 도 시 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열 몇 명씩 데려다 돌보고 있다든가 특별하게 주민들의 생활을 보다 낫게 하기위해서 부업으로 소 토지를 일구어서 농사를 지어 식료공장에다 원재료로 납품해서 식료품을 많이 생산했다든가 이럴 때는 얼굴이라도 아는 거예요. 그런데 얼굴도 처음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시의원이다 도의원이다 이러면 그냥 찍는 거죠.

선거유세를 위해 해당 지역에 다니면서 그 지역에 나오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약속은 물론 주인공은 찾아 볼 수도 없이 다만 모두 참여하자는 구호만이 동리를 떠들 썩 하게 한다는 데요,

김: 선거 전부터 엄청나게 떠들어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쉬는 시간에도 방송차가 다니면서 선거에 모두 한사람 같이 참가하자 모두가 떨쳐나 찬성투표하자고 하면서 방송을 하고 다녀요

한국에 와서 생각하니 반대투표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찬송 투표하자는 구호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며 여기에 어린이들은 물론 학생들 까지 동원 되었다고 김시연 씨는 그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김: 항상 겨울이나 초봄2월에 선거를 많이 했는데 저희는 그때가 방학 기간이거든요 저희 같은 어린아이들이 가창 대를 조직해서 너무 날씨가 추워서 몸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도 몇 십리마을 길을 돌면서 선거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거 분위기를 고취하는 거죠

당시 북한 사람들은 외부세계의 선거, 투표에 대해 전혀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으니까 어디서나 이런 식으로 투표를 하는 것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고 전 합니다.

김: 찬성투표만 잘하자 이거만 계속 강조하는 거예요 그때 북한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허무한 선거라는 것을 몰라요. 다른 나라에서는 자기가 선출할 사람을 뽑는다, 이런 것을 전혀 모르니까 선거라는 것은 국가에서 그렇게 지정해 준 사람을 찍는 것인가 보다 당에서 하라는 대로 무조건 해야 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선거 운동을 하기 때문에 거부감 그런 것은 없었어요. 단지 그 일이 너무 힘드니까 이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하는 거죠.

그러던 김시연 씨가 한국에 와서야 자유 민주주의 선거가 무엇인지 알았을 때는 북한과 비교가 되어 놀랐다고 말합니다.

김: 처음에 이명박 대통령 대선 무렵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하나원에서 나와서 며칠 안 있다가 선거장에 갔었어요. 그런데 가니까 아직 한국국민이 된지 1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1년이 지나야 투표권을 갖는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돌아오면서 너무 서운 했어요, 주민들이 자기 생각 자기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자기를 위해서 일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이런 것이구나....

김시연 씨는 탈북을 할 즈음에 중국을 드나들며 장사하는 지인으로부터 한국 선거에 대해 듣고는 정말 부러웠다고 말합니다.

김: 그분이 “김정일이 무언데 우리를 이렇게 못 살게 굴고 있는데 한국은 4년에 한 번씩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야 우리나라는 언제 뒤집히겠나“ 이러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분이 우리하고 가까웠으니까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런데 장사도 하고 중국도 몰래 잘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다 알아요 그러면 가족들에게 얘기하면 가족들이 듣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죠.

이렇게 마음이 통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끼리는 김정일이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김 씨 일가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정권을 이어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간절했었다고 하는데요,

김: 저희는 장성택,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정일이 죽으면,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비리를 하던 부화방탕 하던 상관없어요 그 사람이 개명 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돌아가는 소문이 김정일한테 개방을 하자고 몇 번씩 건의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김정일이 “나도 개방을 하고 싶다, 그런데 개방을 하면 이정권이 무너지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를 했었다고 그래요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다시 김정은이 새로운 후계자로 올랐을 때 그 곁에는 장성택이 있었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당시 장성택이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접견한 뒤 북한의 경제특구를 늘리는 등의 경험과 활동으로 북한 개혁 개방의 상징 적인 인물로 까지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 놓습니다.

김: 장성택이 정권을 잡으면 분명히 개방을 할 것이고 그리고 북한 사람들 누구도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김일성이 수많은 반대파를 처형 했잖아요 하지만 장성택은 김 씨 일가의 뿌리와는 무관하잖아요. 반대파를 숙청한 장본인도 아니기 때문에 만약 김정은이 정권을 갖기 전에 장성택이 오래 동안 정치를 해온 사람으로 얼마든지 정권을 뒤 엎을 수 능력이 있다고 북한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김정일 정권 바뀌면서 장성택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탈북한 많은 사람들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당시 기회를 놓치고 장성택이 무참하게 처형된 것을 정말 아쉬워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탈북자들도 모두 그랬어요, 장성택이 하면 이 나라를 개방시켜 그래도 비슷하게 한국을 따라 가면서 점차 통일이 될 수 있을 텐데 ...분명 그 사람을 통일을 하려고 했을 거예요 항상 통일에 대해 긍정적 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김 씨 일가는 자기네가 정권을 놓는 날에는 죽는 날 이니까 절대로 정권을 놓지 않으려는 거죠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참하게 처형된 후 그의 노선이었던 북한의 개방개혁은 더 심하게 후퇴 했는데요, 북한 관련 정치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장성택 같은 인물이 나오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기다려야 된다는 분석을 했습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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