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북에서 태어난 내가 너무미안해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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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애란 박사.
21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애란 박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여성 박사인 이애란 씨가 최근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에 1년 5개월간 억류되었다 혼수 상태로 미국에 돌아와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씨를 추모하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보다 넓게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는데요,

리: 오토 웜비어 씨는 북한으로 가기전에 저희 식당에 와서 저녘 한끼를 먹고 갔어요 그때 특별히 활달했고 아주 건강했고 북한에 대해서도 다른 학생들 보다 아는 것이 많더라고요

활달했고 건강한 그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웜비어의 억울한 죽음에 아직도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있는데요, 여성시대 오늘은 탈북여성 이애란 씨의 오토 웜비어의 죽음과 관련된 미국 방문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이애란 씨는 지난 1997년에 가족들과 함께 탈북해 이화 여대에서 식품 영양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북한 전통음식 연구원장과 경인여대 교수로 재직했었습니다. 지금도 요리 연구가로 북한 전문 음식점 능라 밥상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북한 방문 길에 올랐던 오토 웜비어가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북한에서 기자 회견을 할 때만 해도 오토 웜비어 라는것을 몰랐었다는군요

이: 그날 얘기를 잠깐 했는데 이름을 몰랐어요 이런 일 때문에 웜비어가 미국으로 돌아와 사망했을때 그때 우리 식당에 왔을때 시간하고 똑같은 시간이네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와서 기자 회견 할때 너무 얼골이 부어가지고 잘 못알아 보았어요 또 TV 니까,  그래서 잘못 보았나 그랬는데 나중에 정상적일때 사진을 보니까 그 학생이 맞더라고요

그때서야 대학생인 웜비어를 기억해 내고 15년 노동교화형 받고나서 젊고 건강했던 대학생이 1년 5개월만에 식물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 2015년 크리스 마스 다음날이었는지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설을 평양에가서 보낸다며 중국으로 거쳐서 평양에 간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되었고… 저희들은 북한에서 수감되었을때 상황을 너무 잘 알지 않아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혀가서 살아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북한의 보위부가 일반 사회에서는 듣고 보지도 못한 죄명을 씌워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 거이라며 이는 당한 사람만 알 수 있다는데요, 하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웜비어 씨에게,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전합니다.

이: 보위부라는데는 벙어리도 말을 시킨다고 할 정도로 고문이 심하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국가전복 기도죄라고… 말도 안되죠, 그런데 식물인간이 되어서 나오는 것을 보고 제가 북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상당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제가 만났던 친구라 사망한 날 새벽에 연락받고 저녘부터 추모제를 광화문 앞에서 했어요.

이 추모제에서 탈북자 최정훈 씨가 북한 보위부에서 자행되는 고문의 실상을 전한 것 중에 한부분 들어봅니다.

최: 북한에서 감옥에 갈 때는 자기가 사람이라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되요. 그런데 오토 웜비어 같은 경우는 너무 두렵고 공포스럽기 때문에 무언가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며 잘못이 없다, 분명 이랬을겁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는 대화가 안돼요 일단, 첫째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를 먼저 보여주면 그런 상황에서는 대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토 웜비어는 그게 안되는거예요 그러니까 북한 보위부가 얘가 자꾸 반항하려는구나, 죄인 주제에 무언가 자꾸 설득 시키려는구나 하고 굉장히 무섭게 다루었을 겁니다 그게 수법인거에요 북한 말로 길드린다고 해요, 그래서 엄청 무섭게 다루는데 그때 북한의 범죄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은 심리적 타격이 굉장히 큽니다. 그런데다 너는 15년 형이야 이렇게 되면 인생을 포기할 정도죠.

이애란 씨는웜비어의 장례식때 그의 모교인 버지니아 대학 친구들이 푸른색 리본을 단것을 보고 푸른색 리본을 한국에서 만들어 가지고 미국을 오게 되었는데 평화를 누리며 자유롭게 북한 주민들이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와 고통을 가한 북한이 어떤 나라 인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 버지니아 대학에서 불루리본, 푸른색 리본은 가슴에 단것을 보고 거기 착안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세우고자 하는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이 리본을 웜비어 가족과 그가 다니던 버지니아 학생들에에 전해 주어야 겠다 그리고 사실 웜비어가 당한 고통은 북한 주민들이 지난 70년 동안 당해온 고통이고 지금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통이고 또 김정은 정권이 이 땅에 존재하는한 미래 지속적으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이 고통을 끝내야 된다, 끝내기 위해서는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로 웜비어의 억울한, 살해된 죽음에 같이 분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웜비어의 묘소를 찾아갔는데 아직 비석도 세워지지않아 저희들이 피란리본 가지고 간 것을 그곳에 얹혀 놓고 묵념을 했어요.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 학생들을 만났어요

이애란 씨는 이어 웜비어씨가 다니뎐 모교를 방문해 그의 친구들, 학생들에게 북한 여행을이런 만행을 알리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도움을 호소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북한인권의 실상을 그냥 말로만 듣는것 보다 웜비어의 희생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웜비어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기위해서는 북한인권 문제를 빨리 국제사회에 더 광범위하게 전개되도록 해야된다, 그래야 웜비어가 북한 당국에 희생을 당했지만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북한의 실상을 듣고 그 학생들이 상당히 깊은 슬픔에 잠겨서 저의 이야기에 동의 했습니다. 지금 방학기간이라 많은 학생들이 모이지 못했는데 가을에 모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면 한번 더 오시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학생들은 웜비어 죽음의 슬픔을 나누며 북한 정권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도 나왔다고 하는군요

이: 이 학생들이 제게 웜비어의 고문, 어떤 고문이 있었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때인 11살때, 평양에 가보려고 기차역에 차표 사러나갔다가 잡혀가서 감옥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었고 그리고 제가 지인을을 통해 들은 북한의 고문 실태를 알려주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아직도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웜비어의 사건을 계기로 이 사실을 유엔에서 철저하게 규명 함으로서 유엔이 그 역할을 다 해 줄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이: 유엔은 20년이상 대북 식량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단체가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상식적인 비인도적인 그런 행위에 대해서도 바로 잡아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헤요. 그러니까 오토 웜비어의 이 사망 원인을 국제기구인 유엔이 나서서 적극적인 규명을 해야 되고 그리고 북한을 유엔 회원국에서 제명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양을 방문 했던 미국 대학셍인 여행객이 이유도 모른채 세상을 떠나자 미국민들의 북한 여행을 금지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미국 정부는 27일 미국 시민의 북한 관광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해 30일 후부터 발효됩니다.

이: 그 여행이 북한의 인질 작전에, 인질전략에 이용되기 때문에 관광하는 사람들의 돈주머니에서 돈을 뽑아내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생명을 인질로 잡는 행위를 하는 것은 바로 반 인도적인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이애란 씨는 이번 빙문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파란 리본은 나누어 주었다며 여기에 담긴 의미가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인류의 평화를 지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되기 원하는 상징으로서 이 파란리본에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태국기 성조기를 부착해서 만들었는데 이 리본이 많이 확산 되기를 간절이 바랍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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