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개발 기지에서 피폭당한 근무자들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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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핵시험 후의 북한 풍계리 핵시험장에서 이전의 5차례 핵시험 때에 비해 훨씬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산사태가 일어났다고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인공위성업체 플래닛이 촬영한 제6차 핵시험 하루 뒤 위성사진에 따르면, 산사태는 풍계리 핵시험장 전역과 그 이상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해발 2천205m인 만탑산 쪽에 집중돼 있다고 35노스는 말했다.  사진은 북쪽 갱구와 산 정상 사이 능선을 확대한 핵시험 전후 비교사진으로 오른쪽 사진에서 산사태 흔적이 여러 곳 보인다.
제6차 핵시험 후의 북한 풍계리 핵시험장에서 이전의 5차례 핵시험 때에 비해 훨씬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산사태가 일어났다고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인공위성업체 플래닛이 촬영한 제6차 핵시험 하루 뒤 위성사진에 따르면, 산사태는 풍계리 핵시험장 전역과 그 이상 지역에서 일어났지만, 해발 2천205m인 만탑산 쪽에 집중돼 있다고 35노스는 말했다. 사진은 북쪽 갱구와 산 정상 사이 능선을 확대한 핵시험 전후 비교사진으로 오른쪽 사진에서 산사태 흔적이 여러 곳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의 6차 핵 실험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도 강도 높은 비난을 하고 있지만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딴 소리를 하고 있어 그들의본심은 알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소폭탄 핵실험이라고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데요, 북한은 핵 무기를 20여년이 넘게 비밀리에 준비를 해 왔었죠

김: 뒤에서 은밀하게 핵 무기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것을 안 것은 핵무기 만드는 기지에 뽑혀가서 일하던 사람들이 피폭이 되어서 거의 죽게 되니까 사회로 내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핵 무기를 만들고 있구나…..

오늘 여성시대에서 북한 보안서에서 일했던 탈북여성 김시연 씨로 부터 얘기 들어봅니다

음악: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살때 처음에는 핵 무기를 만들려는 북한에 사찰단의 조사가 있어서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김: 북한에서 핵 무기를 만드나 해서 조사가 들어왔었어요 그래서 핵 기지로 예측이되는 곳을 와서 다 돌아보고 갔어요 그것이 뉴스에 나와서 알았고….

IAEA, 국제원자력기구는 1992년 북한에 대한 핵 사찰을 했는데 임시사찰의 차원에서 진행되었고  북한측이 당시 위장한 ‘신고된시설’ 만 조사했기 때문에 북한 핵개발의 실태를 완전히 확인하지도 핵개발의 의혹을 불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이 외도 북한 주민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핵무기 연구작업에 투입되었던 인재들 또 군인들이 피폭 환자들이 돌아오면서 알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김: 핵무기 만드는 기지에 뽑혀가서 일하던 사람들이 피폭이 되어서 거의 죽게 되니까 사회로 내보내는 거죠. 사회로 나와서는 도당위원회 간부 등으로 다 배치가 되는거에요 그런데서 간부직을 주고 죽을때 까지 국가에서 먹여 살리는거죠 결국은 그 사람들이 몇년을 못 살고 다 죽거든요 그러면 사는 동안 국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식량과 부식을을 다른 일반 주민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메뉴, 식단을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주는 그런 체계가 되어 있어서 주변의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핵 무기를 만들고 있구나 알았어요

김시연 씨는 특히 도 당에서 일을 했던 친척을 통해 자세하게 알수 있었다는군요

김: 사촌 형부가 도 당에서 일을 했어요 피폭당한 사람들이 와서 간부과 지도원 부부장 이런 자리를 배치되어 있는데 아마 몇년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중 직접 피폭을 당해 사회로 나온 군인도 보았다며 핵무기 연구하는 시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 차별 지원을 했다고 전합니다.

김: 그중 한분이 군인으로 복무하다 왔는데 간부자리는 아니고 인민위원회 지도원 직책을 주는데 그 사람도 국가에서 배급을 끊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공급을 했어요 높은 간부로 간 사람들 보다 좀 낮은 지책인 분도 있었어요

국방대학이나 물리 대학, 즉 원자력대학에서 강제 차출된 인재들이 원자력 연구소에서 또 이들을 지원하는 군인들이 방사능에 피폭되면 육신은 완전히 망가져 얼마 살지못하고 죽음을 맞고 있다는 거죠

김: 북한의 국방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을 졸업하고 간 사람들은 직급에 높은 자리에서 연구를 하고 일반 군인으로 차출되어서 간 사람들은 기계나 장비를 옮기는 일 등을 하는데 핵무기 개발 기술자로 간 사람들하고 일반 병사롤 갔던 사람들 하고 분류가 되어요 그래서 사회로 방출되어 나올 때도 직위가 다르게 내려 보내요.

하지만 이들이 죽고나면 남은 그들의 가족들에게는 특별 공급은 끊긴다고 하네요.

김: 살아있을 때만 공급이 되고 죽은 다음에는 유공자 가족처럼 대우는 해 주지만 남한의 유공자처럼 특별한 하게 대우 해 주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가족들은 힘들어 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피폭당한 가장의 가족들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김: 핵무기 연구소로 부터 몇십 키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가족이 살 수 있는 동리를 만들어요 그러면 가족은 그곳에서 살고 남편이나 가장은 핵무기 연구소 실험장을 드나드는 거죠

하지만 북한 특유의 방식으로 세뇌된 가족들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한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김시연 씨는 말합니다.

김: 가족들은 남편이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 이렇게 목숨이 달린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 을 알아도 우리 남편이 나라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구나 당연히 대우를 잘해 주고 하니까 그만큼 충성해야 되고 가족들은 아무 의문이나 반론도 없어 스스로 받아 들여요 그래서 가족들도 거기에 대해 반항심이나 국가 지도자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지 않아요

이번에 6차 핵실험을 하기까지 거의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방사능에 피폭당해 소리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실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김시연 씨는 강조합니다.

김: 어느땐가는 한번에 3사람이 피폭당해 내려 왔다고 사촌 형부가 얘기를 했거든요 도당에 간부로 베치 되어서 온 사람이 3명이라고 이런 것을 보면 그 시점에만 피폭된 사람들이 온 것이 아니고 그전에도 그 후에서 계속 왔을 거 아니에요 또 현장에서 죽은 사람들도 있겠고요

초창기에 원자력 물리대학을 졸업한 건장한 청년 100여명이 그곳에 배치 되었는데 3년이 지나면서 죽는 사람이 생기고 이상한 병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다고 하는군요

김: 그렇게 현장에 내려와서 2-3년살다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 였으니까 핵무기 연구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들어요

북한은 20여년이 넘도록 핵무기 연구 개발 그리고 무기화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희생시키면서 공식적인 통계자료 조차 내 놓지 않고 감추고 있다는거죠.

김: 공식자료는 전혀 없고 절대로 공개하지 않아요 이 뿐아니라 간첩으로 외국에 파견되거나 비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비 공개입니다. 그에 연관된 사람들만이 그 사람이 그런데서 일을 했구나 이 정도지 그 안의 내막에 대해서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그 사람들도 사회에 방출되어서 나가면 너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발설하는 순간 너와 너의 가족은 다 죽는다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고 혈서까지 쓰게 하기 때문에 그래서 북한에서는 비밀이 유지되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비밀 사업을 했으면 나와서 절대 입을 안열어요. 입을 열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이 돌아 올 것이라는 잘알고 있어 얘기를 안해요

북한의 6차 핵실험 특히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 했다는 주장에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김: 항간의 소문이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말이 전해지다 보면 무언가 만드나 보다  또 북한도 군사 무기를 많이 만들어서 북한이 강한 나라가 되어야 만이 미국을 이길 수 있고 남한을 이기고 북한이 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 주민들이 당당하게 잘 살 수 있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계속 교육을 시키니까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그 무기의 파괴력, 인명을 얼마나 살상하고 있는지 또 이런 무기를 가지고 도발하니까 국제 사회에서 북한이 어떤 국가로 인식이 되고 또 어떤 국가로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죠.

북한은 늘 일방적으로 노동신문이나 텔레비젼을 통해 오로지 북한 식으로보도를 하고 있어 공정한 방송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거죠.

김: 성공했을 때도 신문에 내고 성공하지 못했을때도 신문 보도에서 성공을 한 것 처럼 내거든요 전에 인공위성 쏘아 올렸을때 불발되어 실패 했을때도 성공했다고 신문에 내거든요 그러면 북한 사람들은 성공했구나 그러죠 그러나 우리는 한국에서는 쏘았는데 날라 가다가 폭발했구나 다 알 수 있는데 북한 주민들은 절대로 실패한 것은 모르고 다 성공한 것으로 믿는거죠 액면 그대로 믿고 그것에 대해 의심을 별로 하지 않고 또 그런 것에 관심을 쏟을만큼 생활 여건이, 사는것이 힘드니까 그런데 마음의 여유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북한이 이번 핵 실험을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그렇다면 가공할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뉴스와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두려움이 컸다고 말합니다.

김: 뉴스에 나오는 것 보니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접촉만 해도 마비 상태가 된다고 하는데 서울은 물론 그 주변까지 또 어느순간에 핵을 터트리면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일 이니까 김정은을 어떻게 제지 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 선수를 쓰지 않으면 당하지 않을까? 김정은이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어떤 일을 저지를 지 모르니까 만약 일이 벌어진다면 엄청난 후과가 생길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일이 터질때 마다 북한의 가족들이 더 걱정되고 생각난다며 언제까지 이런 두려움속에서 그리워만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김: 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이 요즘도 계속 단속 통제가 심하다고 해서, 저도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한 꿈을 꾸어서 연락을 하고 싶은데 연락했다가 좋지 않을일을 만들어서 가족들이 힘들어 질까 보아 참고 있거든요 지금은 연선에서 핸드폰 가지고 카카오 톡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던데 특정한 사람 몇몇이 연락을 한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연락을 할 생각 조차 못하는것 같아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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