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오길남 박사의 부인 신숙자 씨와 두 딸을 가족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한국의 '통영의 딸 송환을 위한 국제 켐페인' 대표단이 워싱턴 디시를 방문해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한인사회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대표단의 열린 북한 방송의 권은경 국제팀장은
권: 저희는 궁극적으로는 송환을 하는 것이고 오 박사님 가족을 박사님 곁으로 데려 오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미국을 방문한 권 팀장을 비롯한 대표단은 유엔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이 세 모녀의 "구금은 강제적이다"라는 공식 발표가 있은 이상, 이들을 송환해 가족의 품으로 데리고 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 했습니다. 오늘 여성시대에서 대표단의 활동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일 년 동안 국제연대 ICNK, 북한 반인도 범죄철폐연대를 설립하고 유럽과 미국 등지를 다니며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두 딸을 구출하기 위한 국제 운동을 펼쳐 온 권 은경 팀장은 1년 동안의 활동 결과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는데요,
권: 작년에 처음으로 저희가 ICNK 라고 국제연대를 일본 도쿄에서 창립 했을 때 오 박사님을 처음 초청해 국제무대로 모시고 왔던 겁니다. 그때 오 박사님이 창립대회 때 본인의 사정을 국제 엔지오에게 호소하고 그 이후로 저희가 오 박사님 건을 틀어쥐고 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는 유엔 임의적 구금 실무 그룹에 오 박사님 건 청원서를 제출 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 운동의 방향과 속도가 빨라지고 국제적으로 이어져 나갔는데요, 그래서 올해 5월 말에 유엔의 임의적 구금 실무 그룹에서 오 박사님의 가족 신숙자 여사와 두 딸 규원 혜원을 임의적 구금상태에 있다 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고 그 조치로 즉각적인 석방, 적합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권 팀장은 지금은 유엔으로부터 오 박사의 가족이 임의적 구금상태 라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구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인권 단체의 도움이 필요 하다고 강조합니다.
권: 저희는 현재 일종의 재판의 판결문을 받았는데 그것을 집행할 집행권은 사실 유엔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해야 할 주체는 엔지오, 저희 사회단체 인권단체에서 해 나가야 할 일입니다.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고 미국 의회의, 그리고 미국 정부에 도움을 받아 석방을 해내는 일이 저희들이 할 일입니다. 작년에는 이 문제를 전 세계에 그리고 국내에 알리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이제 구출해 내는 일을 하는 거죠
오 박사의 가족 구출을 위해서 이제는 실행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권 팀장은 강력한 주체들의 힘이 합쳐진다면 이 문제는 해결 될 것 이라고 자신합니다.
권: 오 박사님 가족을 데려 오기 위해서는 제3국에서 특히 북한당국의 영향력이 덜 미치거나 아니면 미치지 않는 그런 곳에서 오 박사님과 따님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북한 당국이 저희 사회단체 사람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기꺼이 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으로 저희보다 좀 더 강력한 미국 정부, 미국의회 그리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힘도 있는 인권단체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두 딸이 아버지 오 박사와 만날 만한 구체적인 장소도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권 팀장은 밝혔습니다.
권: 미국정부 측에서 오 박사님의 딸들과 면담을 할 수 있게 북한과 외교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런 중립국들 독일이나 체코, 폴란드, 스위스도 포함해서 이런 중립국들을 통해서 북한 당국에게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 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게끔 뒤에서 종용하고 밀어준다면 문제가 좀 더 쉽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을 통해 통영의 딸 신숙자 씨 모녀에 관한 소식은 많이 전해 졌습니다. 오길남 씨의 아내 신숙자 씨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유학생인 오길남 씨와 결혼해 오 씨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당시 독일의 좌파 친북 인사들의 유인으로 가족과 월북했습니다. 오 박사는 북한에 가서 북한의 실정에 눈 뜨고 가족을 남겨둔 채 탈출 했습니다. 그러자 신 씨와 두 딸은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당해 비참하게 살아 온 것으로 전해졌고, 북한은 지난 4월 신숙자 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고 통보 했었습니다. 오길남 박사는 자신은 자책하고 가족을 그리며 아주 힘들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국제, 국내 인권단체로부터 많은 격려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권 팀장의 얘기 들어보죠.
권 : 87년 처음 북한에서 나왔을 때 정말 꽃제비 같은 생활을 하면서 92년 까지 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독일 사회에 있는 좌파 지식인들 그러니까 오 박사님을 유인해서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역할을 했던 좌파 친북 지식인들에게 계속해서 호소하면서 큰 좌절 하면서 정말 힘든 생활을 했죠. 92년도 까지는 거의 절망적 이었다고 봅니다. 윤이상 씨로부터 변절자라는 얘기를 듣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라는 그런 설득을 당하면서도 과감하게 그렇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거의 본인은 죽은 목숨 이라고 생각까지 하시면서 92년 남한으로 들어오시게 된 거죠.
오길남 박사가 남한으로 들어온 당시 또 그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큰 엔지오, 사회단체의 활동 인권 단체의 활동이 사실상 없었는데요, 물론 한두 군데 국제적인 인권 단체들이 관심을 갖긴 했으나 성과도 없었고 국제적인 큰 여론도 형성되지 못했고요 그런데 2000대 이후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오 박사의 안타까운 사정이 전해 진거죠. 권 팀장은 그전 까지 오 박사는 정말 힘들고 외로운 시절 보냈다고 전합니다.
권: 겨울 내내 딸들을 생각하면서 보일러를 안 키고 집에서 냉방으로 그냥 넋을 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살았지만 거의 죽은 목숨으로 장기간 동안 생활을 했습니다. 대외 활동도 안하시고 친구도 안 만나시고 오로지 딸들과 가족을 그리면서 그렇게 힘든 고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저희 젊은 사람들이 같이 활동하는 사회단체 북한 인권 단체 들이 오 박사님 주위를 가득 채우고 또 모시고 등 떠밀며 서로 이것저것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 만나겠나,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는 오 박사 스스로 두 딸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가족을 꼭 찾겠다는 신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권 팀장의 말입니다.
권: 최근 유엔의 답변을 받고 박사님이 스스로 이런 것은 어떤가, 이런 활동은 어떻겠나? 독일에 가서 이런 저런 활동을 어떻겠느냐며 제안까지 하시면서 아주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또 지난번에는 올해 안에는 만나야 하지 않겠나 하고 직접 그렇게 말씀을 하실 정도로 희망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과거에는 설마 만나는 것이 가능 하겠나? 라고 생각했는데 저희도 희망에 같이 부풀어 올랐죠. 왜 못 만나겠나, 북한당국도 외국으로 향해서 개혁 개방하고 변화되는 모습도 보이려고 행동을 취하고 있고 만약 북한당국이 개방하는 행동의 하나의 일환으로 두 딸과 오 박사님을 만나게 해 준다면 그야말로 국제 신뢰를 얻는 하나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 거죠.
방미 대표단의 권 팀장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인 90년대부터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왔는데요, 이제는 오길남 박사의 가족 구출문제가 국제적인 엔지오의 역할 그리고 국제 인권기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되었고 또 통영의 딸 국제 운동을 위해서 국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권: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한창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였기에 탈북자 분들이 대거 중국을 통해 탈출하고 그런 시기에 저도 공교롭게 북한인권 문제 관심을 가진 선배님들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북한인권 문제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고 꼭 해결하고, 돕고 또 새로운 북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과거부터 이루어졌던 그런 체제 속에서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체제 자체가 개선되고 북한 체제가 사람이 사는, 사람을 키우는 그런 체제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지금까지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이제 미국에서 오길남 박사 가족 구출 국제 캠페인을 마치고 돌아가는 대표단은 이번 방미 활동으로 또 무언가 달라지는 상황을 그리면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네요.
권 :작년 11월 달에 저희가 여기 워싱턴 디시에 왔을 때는 미국 정부에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고요 그리고 이번에 왔을 때는 이제 같이 힘을 모아서 석방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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