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탈북한 사촌언니 30년만에 만나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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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방콕 주재 일본 대사관에 진입한후 망명요청을 한 탈북자 가족 10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선글래스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지난 2003년 방콕 주재 일본 대사관에 진입한후 망명요청을 한 탈북자 가족 10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선글래스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북한의 내부 인권 탄압과 끝없는 남침 야욕, 국가 경제의 파탄, 그리고 핵 개발과 국제사회를 향한 거짓말 등을 조목 조목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북한은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는 말 까지 했는데요,

이번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대해 탈북민들은

김: 북한에서 온 우리 탈북자들은 아무래도 미국에 더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죠

북한에서 미국은 철천지 원쑤의 나라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미국을 맹 비난하는 선전 선동속에서 살아온 탈북민들 이었지만 북한을 탈출해 자유세계로 오는 순간 북한의 교육이 완전히 거짓과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군요. 여성시대 북한 보안서에서 일했던 김시연 씨와 함께합니다.

음악:

탈북민들이 미국에 대해 우호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한데요,

김: 중국정부가 강제로 북송해서 내보내는, 이건 완전히 반인도적인 행위잖아요 그런데서 탈북자들이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중국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또 미국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적극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김: 6.25 전쟁때 미국때문에 그나마 이 절반 땅이라도 차지해 지킬 수 있었고 그리고 미국때문에 우리가 그 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탈북자들은 아무래도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이번 정권도 미국과의 동맹을 더 강화했으면 하는 마음이고요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련 정책을 지지하죠 시진핑, 중국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해요.

물론 민주주의 자유국가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신뢰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부분도 있지만 북한의 핵 개발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른 미국 대통령보다 확실한 자신의 견해를 전하고 있어 이런 점은 신뢰가 간다고 탈북민들의 의견을 전합니다.

김: 북한은 상대로 확실하고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물론 국가마다 다 자기나라의 국익을 생각하겠지만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북한을 상대로 했을때 한국한테 이로우니까,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 대해서는 우리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요. 미국 거기는 그나라의 일 이니까 라고 생각하고 미국관의 관계가 항상 좋았으면 하는 입장이요.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중국,아시아순방에 대해서 북한도 나름대로 견해를 피력하고 있죠,

특히 절대로 핵 협상은 없다, 이 점을 강조를 하는데요

김: 그 사람들은 핵을 포기 함으로서 자기네가 정말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은 뒷전인거에요 그러니까 핵을 포기하면 정권이 무너지지 않겠나 이런 위기감 때문에 더 그러는것 같아요

한편 김시연 씨는 얼마전에 북한에 있던 사촌언니 가족들이 탈북해 지금 탈북민 정착 교육 기관인 하나원에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 지금 하나원에 있는데 며칠전에 전화가 와서 제가 면회를 갔었어요 그런데 언니는 금방 직행으로 왔거든요 지난 3월에 작은딸이 먼저와서 엄마 아버지와 큰 언니를 데리고 온 거에요 다행히 성공을 해서 온 가족이 다왔는데…

탈북의 길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도 있다고 하는데요, 중국 사람들과 오랜 동안 힘께 일하며 교제하다 보니 이런 탈북 방법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김: 나진에서 살다왔는데 두 딸이 나진에서 중국 대방들을 상대로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사업을 했데요 .그러다 그 대방들과 의논해서 우리가 중국으로 갈테니까 무사히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선을 놓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안전하게 왔더라고요

아주 어려운 환경도 아니고 그런대로 잘 살던 가정이 이렇게 온 가족이 탈북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컸다는데요,

김: 언니 괜찮게 살았는데 왜 탈북했느냐고 하니까 너~~~무 못살게 굴어서 사람을 너무 못할게 굴어서 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김정은이 예전 김정일때와 너무 다르다는 거에요 내라는 것도 너무많고 하루 이틀만 작업동원 나오라는 말을 안하면 “이게 무슨일이야 왜 작업동원에 안부르지? 막 이럴정도로 동원을 시키고 그렇게 사람을 들볶는데요

김시연 씨는 자신이 북한에 있을때는 굶는 사람들이 살기위해 탈북을 했다면 언니네 경우는 너무 사람들을 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북한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아 탈북을 했다는 점이 달라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야 사람이 자기가 벌어서 먹는데도 이렇게 자유가 없고 또 조금벌면 뒤를 캐고 하니까 숨을 쉴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빨리 가야겠다, 그런데 다행히 막내딸이 엄마 우리가 여기서 계속 살면 희망이 없다 빨리가자고, 앞으로는 이 정권이 점점 더 할거라고 하니까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가는 것이 우리한테는 정말 행운이라며 빨리 빠져 나가자고 무작정 막내 딸이 먼저 떠나고 후에 따라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주민들이 보는 김정은 정권은 오로지 정권 유지 밖에는 다른 생각을 전혀 못하는 것을 알수 있기에 앞날이 더욱 암담 하다는 것을 이제는 느낄 수 있다는 군요

김: 김정은은 국가에 돈이 없으니까 그나마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핵실험을 통해 자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오로지 그것에만 정신이 가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요.

사촌 어니네 가족은 탈북에 성공했지만 뒤따르뎐 친척은 성공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도 전하는데요, 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김: 사촌언니 오빠 아들도 같이 왔는데 자기네 1조가 떠나고 그 다음 조에 오빠 아들이 속해 있는데 북송되어서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보냈는데 빼 낼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아차아차한 위험한 순간들이 시시각각으로 따른데요 그런데 사촌 언니네 가족들은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다행히 운이 따라주어서 잘 왔다는 얘기를 했어요

사촌언니 가족은 브러커, 중개인이 아닌, 평소에 친분을 쌓았던 믿을 만한 사람들의 순수한 도움을 받았기애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김: 나진에 들어와서 장사하고 무역 거래하는 사람들 인데 딸 둘이 중국어를 열심히 배워 그 사람들과 언어 소통을 해야 되니까 한족들에게 번역을 하면서 여러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이들을 오래 사귀고 상대하다 보니까 도와달라고 해서 그들이 선을 놔 주어서 오게 된겁니다.

업무적으로 오래 알다 보니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아 브로커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탈출 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4 가족이 모두 오는데 인민폐 1만 위안이면 한국돈으로 250만원 이정도 밖에 안들었더라고요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싸게 해 주었지 브로커를 통해서 온다고 하면 더 위험해요. 항상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요시찰로 감시가 붙기 때문에…그런데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업하면서 차 이동할때 마다 실어다 주는 식으로 오다 보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돈도 적게 들고 그렇게 헤서 왔어요.

하나원에서 1시간 30분동안 짧은 시간 면회를 하다 보니까 시간에 너무 빨리 지나가 아쉬웠지만 다음에 언제든 다시 만날 수가 있으니 마음이 그렇게 든든 할 수 없다며 기뻐합니다.

김: 친척들의 안부도 다 듣지 못하고 시간이 가버렸다며 아쉬워 하는데 하지만 앞으로 언제든 만날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 다 자세하게 물어보지 못하고 간단 간단하게 물었거든요. 나오면 자세한  얘기를 해야 될것 같아요

이제 하나원에서 나와 집을 배정받으면 그 때는 자유롭게 시간제한 없이 모든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죠  북한에서는 그렇게 오랜동안 같이 살았지만 긴 세월동안 안부도 전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김: 제가 결혼하기전 아가씨 때 만난것 같아요 저도 그언니를 기억하는 것이 처녀때 였으니가 그때 만나고 거의 30년만에 보는거죠.

북한, 같은 하늘 밑에 살면서 친척들이 만날 수 조차 없는 나라가 이세상 어디에 있는지 외부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죠.

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때가 아니었는데도 거주 이동의 자유가 없잖아요 여행증을 떼어야만 오고 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또 특별한 일, 결혼식이나 사망하는 일이 없으면 여행증을 발급해서 먼 거리를 갈 수 없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한번 밖에 보지 못했어요

남한으로 탈출한 사촌언니네 가족을 만난 것이 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김: 오랫만에 가족 혈육이라고 만나보니까 한참 동안 울었다 얘기했다 울었다 하면서 …저희 집안 형제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고요 잘 다니지 못하다 보니까

이제 탈북민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오면 집을 배정 받아 정착에 들어가는는데 그때가 되면 언제든 자주 만날 것이라고 하네요.

김: 서울동작에 딸이 먼저 집을 배정받았데요. 그래서 일단 그곳 임대 아파트로 나오는가 봐요

요즘은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들어가 전 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 졌는냐는 물음에 대해서?

김: 언니 내가 북한에 있을때 먹고 사는 것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느냐 고 물으니까 “아휴 여전히 사는 것이 힘든데 그나마 장사를 해서 열심히 사느라고 하는데 주민들이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것을 그냥 놔 두었으면 좋겠는데 계속 못 살게 구니까,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지도자로 올라오니까 더 한다고 사람들이 진저리를 친다고 하더라고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온다는 믿을만한 소식들이 전해져 이에 관한 소식도 물었다는데요, 하지만 주민들은 제2 고난의 행군이 온다는 주변 소식에 대해 알고는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김: 우리가 살 때도 계속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고 노래처럼 고난의 행군 이겨내서 강성대국 건설하자고 계속 말 했었는데 주민들은 어차피 자기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사니까 그런든지 말든지…그럴거에요

이런때 일 수록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 가까이 있는 주택이나 건물을 모두 없애고 철조망을 든든하게 쳐서 국경지역의 탈북을 막겠다는 당국의 의지가 있지만 그래도 탈북민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탈출은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요,

김: 오자꾸나 하면 아무리 철조망쳐도 그 긴 국경연선을 다 칠 수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경제력이 딸리니까 자재도 부족하고 철근도 부족하고 이런 상황이니까 중요한 지점 물이 앝은 곳이라든가 도망치기 쉬운 곳을 철저하게 하지만 나진 쪽은 도방치려면 배만 타면 쉬워요. 거기는 러시아 국경 연선이어서 두만강이 엄청 넓고 바다처럼 깊어요 그러니까 그런 곳을 통해 탈출하려고 하면 배만 잘 탈 수 있으면 오히려 쉽게 건널 수가 있어요

북한 당국이 이제는 주민들이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지 계속 김씨 일가 체제에 변함이 없는한 탈북은 끊이지 않을 것 이라고 김시연 씨는 강조합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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