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겨울방학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학생들이 방학식을 마친 후 학교를 나서며 즐거워하고 있다.
서울 신용산초등학교 학생들이 방학식을 마친 후 학교를 나서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3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남한에서는 12월 하순부터 2월 하순까지 겨울 방학 기간입니다. 북쪽도 지금은 겨울 방학 기간일 것 같은데, 방학,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저는 겨울 방학 때만 되면 시골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갔는데요, 언젠가 재래식 화장실 옆에 묻어 놓은 오줌 삭히는 통에 빠져 크게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도 이런 방학의 추억 한 두 가지는 가지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방학 하면 여러 가지 추억이 떠오르지만 남쪽에 온 탈북 청년들의 방학에 대한 추억은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아픈 기억도 많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오늘 <젊은 그대> 시간에는 남쪽에서 이들이 어떤 방학을 보내고 있을지 또 남쪽 학생들은 어떤 방학을 보내고 있는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진행자 : 오늘도 남북 청년들이 함께 하는 인권모임, <나우> 지철호, 김윤미 씨 함께합니다. 이제 겨울 방학이에요, 대학은 방학 시작했죠?

김윤미 : 벌써 시작했고요 2월말까지 방학입니다.

진행자 : 학창시절이 그리운 이유가 바로 이 방학 때문입니다. (웃음)

김윤미 : 저도 방학이 좋아요. 학기 중에는 과제 때문에 속상하고 짜증나는데 방학 동안은 그런 것이 없으니까 너무 좋아요.

진행자 : 그래도 마냥 놀 수만은 없는 것이 또 이 방학이잖아요?

김윤미 : 언제까지 과제를 내야한다는 그런 긴장은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죠.

진행자 : 대신에 자기가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고 놀기도 하고 그러는데, 두 분은 이번 방학에 어떤 계획 세웠어요?

지철호 : 학과 공부 선행 학습 좀 하고 영어가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영어 공부를 좀 하려고요.

김윤미 : 저도 빡빡합니다.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하고 싶은데 우선순위를 두고 계획을 세웠어요. 우선 영어 공부요. 영어 성적이 이번에 제일 낮았거든요. 방학이 끝날 때쯤 토익 시험도 쳐서 내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도 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캐드 패턴도 더 공부를 하고 금요일은 하루 비워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배우려고 해요. 2학년 때부터는 그런 수업이 있거든요. 그래서 새벽에 영어 학원 갔다가 아침 9시부터 포토샵 배우고 2시부터는 9시 반까지는 패턴 공부를 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는 영어 공부 복습을 해야 되요... (웃음) 하고 싶은 것은 더 많은데 경제적인 능력도 안 되고 해서 일단 이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진행자 : 두 분 다 알차게 계획 세워놓고 계시네요. 방학이 짧겠습니다. 여기 학생들 방학 동안에 참 많은 계획을 세워요. 겨울방학이 끝나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그 준비를 하는 거죠. 요즘 학생들 방학이 되면 외국으로 연수를 떠나거나 인턴사원 같이 직업 체험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라고 하는 시간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나요?

김윤미 : 친구들은 거의 영어 공부, 아르바이트. 왜냐면 용돈을 부모님들이 팍팍 주시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요즘 얘들은 학기 중에라도 금요일 떠나서 월요일 날 돌아오는 2박 3일 여행도 하는데요, 굉장히 재미있어 보여요. 저도 여유만 있으면 한 번 해보고 싶은데요, 이런 것을 해보려면 용돈을 가지고는 부족하고 돈이 드니까 얘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지철호 : 저도 주변 친구들 보면 아르바이트하고 하고 스키도 타고 기차여행도 하고 시골도 내려가서 체험도 하면서 밥도 해먹고 이런 것을 선호하더라고요.

진행자 : 학생들에게 방학 때 무엇을 하고 싶냐하고 물어보면 가장 많은 것이 영어 공부. 영어는 역시 남한 학생들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가 여행이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배낭 둘러매고 해외여행 가는 것이 참 유행이었습니다. 아까 윤미 씨가 말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서 떠나곤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도 여행 많이들 가나요?

김윤미 : 그냥 생각 속의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실제는 실행 못하는... 왜냐면 비행기 표도 비싸고 방학 동안에 할 일이 오죽 많아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직 때문에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요. 마음먹기가 쉽지 않아요.

진행자 : 제가 대학 졸업한 지도 이제 10년이 넘었으니까 그 동안 대학 생활도 많이 바뀐 것 같네요.

김윤미 :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니까요. 지금은 정말 얘들이 놀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철호 씨가 방금 얘기했지만 요즘은 겨울방학이면 스키도 많이 타러 가는데, 두 분은 가보셨어요?

김윤미 : 전 아직 못 가봤어요.

지철호 : 저는 가봤어요. 가면 뻥 뚫리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솔직히 북한에서는 배워 본 적이 없어요. 북한에서는 참나무를 깎아서는 타봤는데 여기 와서 스키를 타보니까 그것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사실은 얼마 전에 또 갔다 왔는데 열시부터 오후 4시까지 탔어요. 사람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켜서 타고 내려가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진행자 : 윤미 씨가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데요?

김윤미 : 이번에 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가려고요 (웃음)

진행자 : 열심히 공부하면 또 열심히 놀기도 해야겠죠? 어쨌든 방학은 좋습니다. 북쪽에서 방학을 어떻게 보냈나 궁금해요.

김윤미 : 인민학교 때는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많이 힘들 때였어요. 96년도 즈음이었거든요. 선생님들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어떤 선생님들은 교실에 잠깐 들어와서 떠들지 말고 있으라고 하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요. 남쪽 같았으면 그 시기가 가장 힘들고 고비고 또 공부도 많이 하고 기억에도 많은 남을 시기잖아요? 근데 저는 그 시기가 타임머신 타고 어디 갔다 온 것처럼 전혀 기억이 없어요.

지철호 : 저는 솔직히 인민학교 때는 미 공급은 아니었으니까 방학 숙제도 하고 썰매도 타고 했는데 고등 중학교 올라가서는 집일을 많이 했어요. 나무도 하고 부모님 도와서 장사도 다니고... 방학 숙제는 잘 안 했죠. 왜냐면 아까 윤미 씨가 말한 것처럼 선생님들도 생활이 어렵다보니까 자기 생활도 돌봐야하거든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는 거예요. 지금도 아마 좀 그럴 거예요.

진행자 : 96년에 철호 씨는 몇 학년이었어요?

지철호 : 저는 그때 인민학교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1학년 때인데, 혼돈의 시기였어요. 오로지 하나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 어떻게 하면 한 끼라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나 아니면 어떻게 하면 하루에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나... 그러다보니까 교원들도 굶어 죽고 부모님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까 저희 같은 것도 아빠가 엄마가 못하는 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했죠. 그래서 학교도 못 다니고 공부도 못 했죠. 근데 그렇게 해서 살았으니까 지금이 있는 것이죠.

진행자 : 어쨌든 지금은 방학 때 계획도 세우고 하지만 그때는 정말 먹는 것 하나 찾아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네요.

지철호 : 그렇죠. 정말 정신이 없었죠. 그때는 정말 미래나 꿈같은 것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살았는데요, 여기 와서는 먹는 걱정은 없으니까 이제 꿈이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그런 겨울 방학이 된 것이죠.

진행자 : 사정이 좀 나아져서 자기 발전이나 꿈을 생각할 수 있는 방학이 되어야 할 텐데요. 어릴 때, 겨울 방학하면 하기 싫었던 겨울 방학 숙제 또 시골 할머니 집 놀러가는 것이 생각나는데요, 북쪽은 어떤지 궁금해요?

지철호 : 방학 숙제는 저도 너무 싫었어요. 여기서는 시골 체험하기 위해라도 방학 때 조부모집에 놀러 가는데, 제가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할머니네, 친척집 놀러갈 때는 한입이라도 덜러 간 적이 많아요. 가기 싫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네 가면 손자가 왔는데 굶기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방학 때 좀 오래 가있는 것이죠.

김윤미 : 저도 그런 적 있어요. 할머니가 오라고 걱정해서 오라고 하셨는데 할머니가 참 욕을 많이 하셨거든요 (웃음) 그래서 가기 싫었는데 입을 덜기 위해서 억지로 갔죠. 그래도 미 공급 때는 할머니 때문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진행자 : 윤미 씨는 할머니 참 그립겠어요... 북한의 사정이 좀 나아져야 학생들의 방학도 여러 가지 추억을 가득 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철호, 김윤미 : 감사합니다.

한 탈북 여성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일 얘기가 나왔는데요, 자기는 아버지가 따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과일을 아이들에게는 한 입도 먹여보지 못하고 살아서 고향의 삶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지금 북쪽의 아이들, 부모 세대가 갖고 있는 즐거운 방학의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까?

윤미 씨, 철호 씨와 얘기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방학의 추억을 줘야 꿈도 희망도 미래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그대> 오늘 시간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