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모두를 위한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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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쪽 젊은이들과 남쪽에 정착한 탈북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젊은 그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안녕하십네까? 반갑습네다. 평양의 별무리 식당에 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대하신 우리 장군님의 은혜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피자를 먹을 수 있게 되지 않았습네까? 하지만 예약을 해야 됩네다. 피자 먹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네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분들께서도 피자를 집에서 편안히 먹을 수 있도록 오늘 첫 번째로 피자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석 웃음)

청취자 여러분, 피자라는 이탈리아 요리를 아십니까? 얇은 밀가루 지짐 위에 각종 남새, 토마토, 치즈를 올려 화덕에서 구운 이탈리아식 빈대떡입니다. 스파게티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요리인데요. 이탈리아 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손쉽게 맞볼 수 있는 대중화된 서양 음식입니다.

"피자는 지짐의 일종으로 ... 피망이 없으면 요 고추로 대신해도 됩니다. (관객석 웃음) 치즈는 염소고기 식당에서 구할 수 있지만 없으면 요 두부를 대신 사용하셔도 일 없습네다" (관객석 웃음)

평양 말투로 한 여성이 또박또박 피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요. 어떠세요? 한번 만들어보실 수 있겠습니까? 이 장면은 '별삐쟈'라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배우의 말투도 그렇고 영화 속 뒤로 보이는 방의 모습도 배우 오른쪽 가슴에 달린 붉은 초상휘장까지 영락없는 북한산 영화로 보이지만 이 영화는 남한 사람이 만든 남한 영화입니다.

서울 황학동과 미아동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31살의 김황이라는 젊은 예술가가 만들었습니다.

이 영리한 젊은이는 영화를 DVD 알판 500장에 담아 평양으로 들여보냈고 이 DVD를 본 북쪽 사람들은 일종의 감상문을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를 위한 피자>라는 작품에 담겼습니다.

오늘 <젊은 그대>에서 이 작품을 만든 김황 씨와 이 특별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ACT- 서강대 공연장 현장 소리

지난 10일과 11일 두 차례, 서울에서 이 작품이 공개됐습니다.

"표 살 수 있어요?"

"자리가 없어요. 정말 한 자리도 없어요."

"그럼 볼 수 없나요?"

봄 페스티벌이라는 일종의 문화제에 초청작품으로 공개된 것인데 입소문이 났는지 앉아서 보는 자리뿐 아니라 복도자리까지 100석 남짓 되는 공연장은 꽉 찼고 예매 없이 기자 명함을 믿고 쳐들어간 저는 문전박대 당할 뻔 했습니다. 관객들은 대부분이 젊은 학생들이었는데 어떻게 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재미있을 것 같아 왔다"고 말했습니다.

표 사는 사람 인터뷰 - "(이 영화 보시려고요? 표가 없다고 하나요?) 네, 사실 북한이라는 곳에 대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재밌어서 보려고 했는데요, 자리가 없다네요..."

공연장에 들어서자 영화가 상영될 검은 화면이 설치돼 있고 그 앞에 의자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습니다.

공연은 '별삐자'를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놀새가 되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놀새떼하면 또 춤 아니갔습네까? 작년 남조선에서 인기있던 노래들을 꽈악 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춤을 제대로 출 수 있는지 알아보갔습네다...."

'별 삐자'는 앞에서 소개한 '삐쨔 만들기' 외에 '외국려행 짐싸기', '놀새되는 법', '크리스마스 즐기기' 등 짧은 영상 5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상은 각각 5분, 다 합해 30분도 안 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주인공 인경과 영환은 피자를 소개하고 남한 가수의 춤을 알려주고 뽀뽀도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은 바로 발동작입니다" (관객석 웃음)

<별삐쟈>를 볼 때 관객들은 텔레비전 희극 방송을 보는 것처럼 유쾌해했지만 이어지는 기록 영상은 달랐습니다.

기록 영상에는 '별삐쟈'를 북쪽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과정이 자세히 담겨있었습니다. 중국과 선이 있는 탈북자를 통해 북한과 밀수를 하는 중국 단동의 조선족을 소개받고 그를 통해 DVD 500장을 평양 암시장으로 넘겼습니다. 북한까지 DVD의 배달료는 배달을 맡아준 사람의 부인과 딸이 입을 남한 옷 몇 벌과 신발이었습니다.

ACT - 기록영상 나레이션

기록 영상이 끝나고 화면 앞에 마련된 의자 5개가 채워졌습니다.

의자에 앉은 5명은 가슴에 손바닥만 한 큰 꽃을 달고 진한 북쪽 사투리로 편지를 읽어줍니다. 편지는 모두 북쪽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엄마... 집에 도적이 들어 이불이 하나도 없어요. 이불을 좀 보내주세요, 동복도 좀 보내주세요... 저번에 엄마가 보낸 물건은 9월에 도착했는데 돈은 절반밖에 안 온 것 같아요. 사실 물건이나 돈도 좋지만 우리는 이것이 오지 않아도 어머니만 오시면 됩니다..."

북한에서 온 편지들은 분명 팍팍한 북녘의 삶을 담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웃음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이 집에서 키우던 염소를 데려간 걸 놓고 "염소도 선군 정치 받들러 전선으로 갔다"는 둥 "집에서 키우는 개가 언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는데 동네에 이런 똑똑한 개가 한 두 마리가 아니다"라는 등 하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졌습니다.

"존경하는 승팔이 형에게 드립니다. 형님 몸 건강한가? 형님은 조선에서 저는 중국에서 대중영화 사업하느라 참 고생이 많습니다. 사실 시디알 보내주고 저는 그걸 조선에 팔고 조선인민들은 비록 숨어서 보지만 미친 듯이 열광하는 걸 보면 형님이랑 저랑 참 위대한 사업하는 것 같습니다. 형님 이번에 보낸 시디 50개는 일주일 늦춰 보내드리겠습니다. 단속이 심해 빨리 팔 수 없어서 그래요... 그리고 돈 좀 있는 사람이 보는 건데 시디 케이스 좀 깨끗이 보내주쇼 (웃음)..."

그리고 이 편지와 함께 북쪽에서 '별피자'를 본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도 소개됐습니다.

"남조선에 사는 인경 동무에게.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지만 왜 그런지 친한 동무에게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이 글을 전합니다. 저는 대동강 구역 문수거리에 사는 22살 평양 처녀입니다. 며칠 전에 시디알판을 하나 봤어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특히 동갑내기일 것 같은 인경 동무의 연기가 너무 재미나서 인상에 남았습니다."

또 북쪽에서 피자를 만드는 장면을 찍어 보내온 동영상도 공개됐습니다. 동영상 속 아코디언 연주가 현장의 아코디언 연주자에게 연결되면서 <모두를 위한 피자>는 막을 내렸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김황 : 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왕립 미술학교라는 곳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모두를 위한 피자>를 만든 김황이라고 합니다.

기자 : 미술을 공부했다면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황 : 정체성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 문제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기자 : 그런데 왜 하필 피자입니까?

김황 : 남북 소통의 매개체로 음식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찌개를 하나 놓고 함께 나눠먹듯이 음식을 매개로 마음과 얘기가 오가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에 첫 번째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2008년 12월에 열었다는 소식이 유럽에 크게 소개됐습니다. 이런 소식이 북한의 국가 봉쇄 정책과 맞물려서 굉장히 역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피자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기자 : 이 영상을 북한에 들여보냈을 때 북한에서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나요?

김황 : 그건 확신했습니다. 왜냐면 미리 이 피자 DVD를 북한에 가지고 들어가신 분들과 이미 그렇게 해주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거래상의 관례입니다. 제가 DVD를 들여보내긴 했지만 그쪽에서 받았는지 잘 모르잖습니까? 그러니까 받았다는 일종의 증거를 저에게 주게 돼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쪽에서 나온 반응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정확했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는 단순한 메모 정도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기자 : 남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많이 웃었어요. 북쪽 관객들도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김황 : 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면 제가 이 작품을 이집트, 남아공, 브뤼셀, 영국에서 전시를 하고 한국에 온 것인데 다들 웃는 부분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쪽 사람들도 똑같이 공감합니다.

기자 : 북쪽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로 뭘 보여주고 싶으셨던 건가요?

김황 : 첫 번째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따뜻함입니다. 남한의 젊은 친구들도 북쪽 친구들을 기억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당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잘못됐지만 변혁은 멈춰져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남쪽 관객들에게는 북쪽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주로 보여주는 것은 북한의 헐벗고 굶주린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유머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 베를린 장벽의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얘기한 걸 봤습니다. 어떤 뜻입니까?

김황 : 베를린 장벽 사이에 토끼가 살았습니다. 토끼가 장벽 사이에 굴을 파서 동서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굉장히 화제가 돼서 언론에도 보도가 되고 케네디 대통령도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 토끼를 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베를린 장벽은 결국 무너졌죠... 물론 이 토끼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런 시도들이 그런 토끼 같은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그널 Fade IN-

관객 인터뷰 - "교과서에서 보던 것 신문보도에서 보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북한 문제에 관심 있으세요?) 신문이나 뉴스로 볼 때는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정말 다른 국가라고 사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남쪽 사람 대부분에게 피자는 전화 한통으로 대문 앞까지 배달되는 손쉬운 음식, 장마당에서 파는 시장 피자도 있습니다. 반대로 북쪽에서 피자가 '장군님의 은혜'로 일부 계층에게만 허용됩니다.

이 공연처럼 '모두를 위한 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젊은 친구들의 신선한 시도들이 계속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여 주인공 역할을 한 박희정 씨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북쪽의 동갑내기에게 한마디 전했습니다.

"떨리네요...제가 최고급 피자로 대접을 해드릴게요. 꼭 만나서 놀러 다니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이제 이 영상물은 스위스와 이스라엘을 거칠 예정이고 김황 씨는 앞으로도 이 작업들을 계속 진행할 계획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젊은 그대>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저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