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정치구호 없이 경제성장 가능한 방법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1.08.20

정치구호들을 보면 집단의 이상향이나 정책적 지향점 그리고 그 집단에 잠재하는 문제점까지도 파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금연이라는 구호가 사회에 넘친다는 것은 담배 때문에 폐암 등 폐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질환자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보건 당국이 주민들에게 흡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금연 구호가 많게 되지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구호가 있는데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자 빌 클린턴이 내걸었던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입니다. 당시 경쟁 후보에게 주는 핀잔을 구호로 삼았는데요. 1980년대 후반 냉전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정착시키던 상황에서 서구 선진국들은 대대적인 경제침체를 겪었습니다. 이때 당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던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이 내건 구호가문제는 경제야입니다. 이 구호는 10년이 넘은 보수당 집권이 경제 침체까지 이르게 했다는 주장을 넌지시 내비치며 민주당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당선됐지요.

이렇듯 정치구호를 보면 그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는 정권이 지향하는 이상 등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20일 북한의 로동신문은위민헌신이라는 정치구호를 내세웠습니다. “우리 당은….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할 것이라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북한이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천하려는 당국의 실천과제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의 2/3 정도는 인민들을 위한 열과 정이 뜨겁다며 김정은 총비서를 극진하게 찬양하고 칭찬하고 있고요. 따라서 당 일꾼들 또한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할 것을 당부합니다. 인민을 하늘처럼 받들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는 것이 당의 결정이고 투쟁의 이정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위민헌신이라는 구호를 극적으로 강조하는 기사를 보니, 당일꾼들이 인민들을 앞자리에 둔 정책 실행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일꾼이나 인민위원회의 행정일꾼들도 먹고 살만큼 로임을 받을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모든 공무수행을 위해서 인민들에게 현금이나 값 나가는 물건들을 뇌물로 받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위민헌신을 할 수 없게 만들지요. 이 현상이 난무하므로위민헌신'을 지나치게 띄워서 선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이어 나온 정론은영광의 시대를 떨치는 청년영웅이 되자고 하는데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찬란한 미래를 앞 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청년의 슬기와 기개를 온 세상에 떨칠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말을 주요 구호로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말에 진행된 청년동맹 10차대회 이후20여만 명의 청년들이 청년돌격대 활동을 진행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이어 청년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잘 서술했는데요. ‘수천 척 지하 막장이며 대건설장마다에서당결정 관철을 위해 헌신분투하는 청년돌격대원들처럼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위대한 수령의 존함으로 빛나는 영광의 시대'를 만들라고 염원했습니다. 청년 돌격대원들을 무료 노동력의 원천으로 활용하기 위한 구호는 19일에 나온 논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력갱생의 정신만이 애로와 난관을 뚫고 나갈 동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청년들에게 자력갱생, 간고분투, 백절불굴 등의 투쟁방식을 확고히 하라고 강요합니다. 수십 년간 혁명적 구호를 높게 들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은 반세기가 넘도록위민헌신은 물론이고 아직도자력갱생도 안 되고 있고 여전히 청년들의 무료 노동력을 이용해야지만 대상건설을 진행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도 과거 1961년부터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실행할 때 무수히 많은 정치구호를 내세워 국민들을 동원했습니다. ‘잘 살아보세라던가, ‘중단 없는 전진,’ ‘근면 협동과 같은 구호를 내세워서 일반 주민들이 국가가 계획하는 경제건설 캠페인을 실행하라며 추동했습니다. 전쟁 이후 폐허에서 나태해진 주민들을 다독이고 미래에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구호들이었는데요. 실제로 남한 주민들과 청년들에게 더 큰 동력이 됐던 것은 정부에서 내거는 구호들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이 오히려 국민들을 더 힘내게 했습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기를 지난 1966년에는 8%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1971년까지 2차 계획에서는 1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고, 3 5개년 계획으로 1970년대 중반에는 연평균 9.7%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습니다. 해가 다르게 발전하는 사회의 모습을 눈으로 본 국민들은잘살아보세또는근면성실'이란 구호 없이도 스스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고 경제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로동신문을 보면 언론이 내보내야 하는 사실과 현상, 사건 등 유용한 정보는 없고, 의미 없고 추상적인 단어들만 나열하면서 청년들에게 돌격대에 나가서 맨손으로 흙을 파고 몸으로 거대한 돌덩어리를 지고 운반하는 고된 노동만 강요하지요. 그 댓가로는 로임이 아니라 충성스런 돌격대라는 칭찬뿐입니다. 돌격대 대원에게 넉넉한 로임을 준다면 건강하고 토대가 좋은 청년들도 힘겨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텅빈 구호로 로동신문을 메울 것이 아니라 적은 금액이라도 로임으로 돌격대원에게 보상할 방안을 강구하는게 오히려 자력갱생와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는 길일겁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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