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장마당 물가가 왜 국가 기밀인가?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4.09.06
[권은경] 장마당 물가가 왜 국가 기밀인가? 2020년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연합뉴스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바깥 세계의 소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가 닿는 것, 그리고 북한 내부 소식이 바깥 세계로 나가는 것도, 북한 당국은 극도로 예민하게 대응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전 세계인이 걱정하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들 중 핵심이 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북한에서 국내외 소식, 즉 정보의 이동을 차단하는 정책이 사실은 북한 당국이 자랑하는 정책들과 모순 관계에 있어 보이기에 이런 말씀을 드려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노동신문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발행하는 중요한 기관지인데요. 이 노동신문이 자랑하는세상에 부럼 없는나라 북한의 소식을 정작 북한 주민들은 이 세상에 자랑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북한 정책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뜻입니다.

 

노동신문은오직 인민의 권익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데로 지향시키고 인민의 복리를 위한 정책을 부단히 확대 심화시킨다는 취지의 지방발전 계획을 자랑하며, 지면 곳곳에 환히 웃는 북한 주민들의 사진을 내보내고 있지요. 지난 6월 노동신문 기사에서는 농촌 살림집 현대화 정책으로새농촌 마을이 방방곡곡에 일떠섰다며, ‘어느 소식부터 먼저 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난감해하는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라고 성과를 묘사하면서 춤추며 밝게 웃는 농촌지역 주민들 사진까지 선보였습니다. 이 정도로 축하할 일이면 북한 주민들도 이 기쁜 소식을 외부 세계로 전달하는 것을 막을 논리적인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인민들을 제일 앞자리에 둔 사업과 정책들을 집행 중이고, 인민들도 당국의 지도에 열렬히 환영하며 따른다고 노동신문으로 강조합니다. 그 내용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인터넷에서 다 볼 수 있기에,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도우리가 주민들을 위해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노동신문 기사 내용을 말 그대로 살펴보자면, 국제 사회의 가치와 기준으로 평가해도 자랑거리이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지요. 따라서 오히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외부로 자랑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 당국의 기치, 즉 사회주의 혁명사업을 더 공고히 한다는 취지에 합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형법 등 각종 법률에 근거해서인지, 혹은 관행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인지 북한 주민들이 내부 소식을 외부로 알리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데요. 형법에비법적인 국제통신죄를 정하고로동단련형부터 엄중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로동교화형까지 내립니다. 그 외에도국가비밀누설죄도 있어서 이 항목에 저촉되면정상이 무거운 경우 5년부터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합니다. 행정처벌법에도국방비밀누설행위에 대해무보수 노동처벌부터 강직, 해임, 철직 처벌을 한다고 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말 신의주의 한 40대 여성이 중국으로 출장간 화교 출신 남편과 손전화 연락을 했던 것이 보위부 감청에 걸려 체포되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습니다. 남편에게 장마당 물가를 알려준 것이 화근인데요. 보위부는장마당 물가도 국가 기밀이라며 노동교화형 3년을 선고했고, 판결에 따라 그 여성은 백토리교화소에 수감됐다고 합니다.

 

세계 시장은 이제 인터넷으로 거의 하나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한국에 앉아서 어제 새로 출판된 영국의 소설책을 주문해서 1주일 안에 배달 받을 수 있고요. 중국에서 제작한 싸고 편리한 서랍장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구입할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저 멀리 유럽 여러 나라의 과일 가격도 1초 만에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데요. 정보와 소식을 인터넷에서 한데 모아서 서로 자랑하며 다 같이 활용해서 널리 퍼트리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죠. 하지만 북한 장마당의 쌀 가격만 국가 기밀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보다 장마당 물품 가격이 국가 기밀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 발상이고요. 사실 국가 기밀이 될 법한 군사시설이나 국경 상황은 전화 통화가 아니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공위성으로 세계가 이미 다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소한 경제 상식을 부부 사이에 주고 받거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을 국가 기밀을 누설한 행위로 처리하는 것은 조사했던 보위원들이 너무 행정 관료주의에 빠져 있었거나 인민의 편의는 안중에도 없이 실적 쌓는 데만 열을 내고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도 여러 나라들과 무역도, 국제 관계도 정상화할 것을 상정하고 준비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라 전제하고 말씀 드리자면요. 북한 주민들이 시장가격에 민감하게 대응해서 경제적 감각을 익히는 것이 오히려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고, 탄력성 있고 회복력 있는 시장 운영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당국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소한 국내 소식들이 북한 국경을 넘나드는 것에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서 무고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충을 안길 필요가 굳이 있을까요?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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