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개인 검열 강화로 북한이 잃는 것들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4.05.24
[권은경] 개인 검열 강화로 북한이 잃는 것들 평양 대동강변에서 한 남성이 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AP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북한 당국이 주민들이 자체로 제작해, 서로 영상을 돌려보는 행위를 비사화주의로 여긴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북한 전문 인터넷 언론인 아시아프레스가 내부소식통을 인용해 전한 소식이었는데요.


소식통은 일반 주민이 촬영하고 편집, 제작한 영상물을 지인들과 돌려보는 것이 단속 대상이라며, 인민반에 수시로 컴퓨터 검열을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또 거리에서 규찰대나 보안원의 검열에 걸리는 경우에는 손전화부터 빼앗아 조사한다고 하는데요, 이 조치를 ‘4.27지시’라고 부른다며 5월 초 인민반 회의에서 하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2020년 말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들어간 영상물과 출판물을 찾아서 보거나 유통하는 행위를 불법행위로 심각하게 처벌해 왔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주민들이 사적으로 촬영한 영상물마저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한국에 나와서 살고 있는 탈북민 청년들에게 들은 바로는, 북한 청년들이 컴퓨터로 하는 활동 중에 가장 즐기는 것이 친구들과 함께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사소한 취미마저 통제 단속한다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통제 수준은 외부에서 상상하는 정도를 초월하는 건 아닌가, 우려가 큽니다.

 

북한 당국은 감출 것이 뭐가 그리 많아서 주민들의 사생활까지 침투하고 통제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공유하고 돌려보는 귀여운 사적인 놀이 영역까지 끼어들어 ‘금지’, ‘간섭’하는 것은 불필요한 역량 낭비로 보입니다. 

 

물론 한국 등 보통 나라들에서도 영상 촬영과 유포를 무조건 다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고, 그걸 불건전한 용도로 유포하거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불법행위로 형법에서 심각하게 처벌합니다. 그러나 촬영 대상자가 촬영 목적에 동의하고 촬영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는 개인적인 사진과 영상들만 올려서 공유하는 사회연결망 응용프로그램이 많습니다. 나만 보고 즐기기에 아까울 정도로 풍경이 멋진 곳으로 여행 갔을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또 아주 우스꽝스럽거나 사랑스러운 상황도 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해 이런 인터넷 사회연결망에 공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책이나 영화를 소개하며 내용을 평가하고, 관련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영상으로 촬영해 공유합니다. 또 기계를 고치는 방법이나 물건을 조립하는 방법 등 쓸모 있는 정보들을 영상으로 공유하는데요, 물론 자신이 공개하고자 하는 대상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아는 친구와 지인으로 제안할 수 있고, 아무나 봐도 무방한 사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것은 그 정보가 필요한 더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나누는 일이므로, 가치가 배가됩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단속과 통제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이런 것들을 다 놓치고 사는 것이죠.

 

공장에서 제조한 유형의 물건만이 가치를 창출하던 20세기는 오래전에 지났습니다. 글과 이야기, 생각과 철학을 담은 그림과 영상, 사진 등 모든 인간 행동과 사고의 흔적들이 높은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는 시대이며 유용한 정보들과 지식이 엄청난 부를 창출하는 사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 당국은 무한한 가치를 보유한 주민들의 예술적, 문화적 잠재력을 기초 뿌리부터 멸절하는 조치를 내린 거나 다름없습니다. 근시안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일반 나라들에서는 심각한 사생활 침해이자 주거침입 행위가 북한 당국의 지시로 수시로 일어난다는 보도도 놀라운데요. 인민반의 단순 숙박 검열도 인권유린에 해당하며 컴퓨터를 강제로 검열하는 행위 역시 사생활 자유의 심각한 침해라는 점을 강조해 봅니다.



한국은 헌법으로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고 정해두고 사생활 보호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개인 살림집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어떤 사진과 영상들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내 주거공간을 침입한 사람을 신고하고 나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비밀번호를 걸어서 잠가둔 손전화를 다른 사람이 비밀번호를 탈취해서 내 손전화의 자료와 영상, 사진들을 검열했다면, 이것도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처벌받습니다. 사생활 침해가 이렇게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보통나라들에서는 일상적인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안들이 북한 법률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북한의 ‘청년교양보호법'에는 청년뿐 아니라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도 나열했는데요. ‘청년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시했습니다. 개인 영상 촬영과 공유까지 금지하는 북한당국의 지시야말로 청년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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