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나토(NATO)와 한국 해병대는 70세 동갑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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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워싱턴에서는 북대서양동맹기구, 즉 NATO회원국들의 외교장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나토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젠스 스톨턴버그 (Jens Stoltenberg) 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평화를 지키고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협력해 왔으며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나토의 당면 과제들에 대한 토의를 이어갔습니다. 나토 외교장관들은 러시아의 중거리핵폐기조약(INF) 위배 문제도 논의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가 사거리 500에서 5500km에 이르는 중거리핵무기들을 모두 폐기하기로 했던 1987년 중거리핵폐기조약을 위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러시아의 조약 준수를 촉구했으며, 러시아가 계속 위배할 경우 효과적인 억제책을 유지•강구할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나토는 1949년 4월 4일에 창설되었습니다. 당시는 2차대전 종전 후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누어지고 있던 시절이었고 나토는 공산주의 세계의 맹주였던 소련이 주도한 동맹체인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맞서 세계와 유럽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창설된 것이었습니다. 창설 당시 회원국은 미국과 유럽 11개국을 합쳐 모두 12개 국에 불과했지만, 회원국 중 많은 나라들이 6.25 전쟁에 참전하여 북한의 남침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주었습니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유럽의 공산주의 나라들이 붕괴하면서 회원국은 29개국으로 늘어났는데, 냉전시절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과 옛 소련의 일부였던 발틱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해체 이후 나토는 중동과 유럽에서 테러세력을 격퇴하는데 힘을 모았고, 반인권적인 독재정권과 싸우는 데에도 함께 했습니다. 나토는 지금도 세계 최대 동맹기구로서 2018년 나토회원국 전체의 국방비는 1조 134억 달러에 이르며 이중 70%는 미국의 국방비입니다. 그만큼 나토에 기여하는 미국의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이렇듯 워싱턴에서 나토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던 시간, 즉 한국시간으로 2019년 4월 5일 서울의 국방컨벤션 센터에서는 한국 해병대 창군 7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심승섭 해군 참모총장, 전진구 해병사령관, 루이스 크라파로타(Lewis A. Craparotta) 미 제3 해병원정기동단 사령관, 니콜슨 (L. D. Nicholson) 전 제3 해병원정기동단 사령관 등을 위시한 한미 해병장병들이 참석하여 동맹체제 하에서 함께 해온 지난 70년을 회고하고 한국 해병대의 발전방향을 논의했습니다. 한국 해병대는 1949년 4월에 창설되었으니 나토와 한국 해병대는 공히 70세에 태어난 달까지 같은 동갑내기인 셈입니다.

한국 해병대는 손원일 제독에 의해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380명이라는 소규모 인원으로 창군되어 전투를 위한 기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해병대는 1950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벌어진 진동리 전투에서 첫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당시 북한군은 6월 25일 기습 남침을 개시한 이래 아무런 준비도 없이 허둥대던 한국군을 몰아 부치며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7월 하순에 낙동강까지 내려왔고, 경상남북도의 일부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북한군 제6사단은 고성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마산과 부산을 함락시켜 공산통일을 완수하겠다는 야욕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 6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가 마산 서쪽의 진동리로 출동한 것입니다. 이 전투에서 한국 해병대는 북한군 수색부대를 섬멸하고 6사단의 동진(東進)을 저지하는 첫 승리를 거두고 부대원 전원이 일계급 특진이라는 영예를 안게 됩니다. 진동리 전투는 한미 해병대가 첫 만남을 기록한 최초의 전투이기도 합니다. 즉, 미 해병대의 코르세어(Corsair) 항공기의 근접지원을 받으면서 진동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후 자신감을 찾은 한국 해병대는 도솔산 전투, 펀치볼 전투, 장단 전투, 사천강 전투, 인천 상륙작전, 서울 수복 작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한국의 해병대는 전쟁 후에도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해병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면서 조국의 근대화에 기여했으며, 지속적인 연합훈련으로 다져진 한미 해병 간의 우의는 동맹신뢰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창설 70년을 맞은 나토와 한국 해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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