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박근 대사의 별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6-05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3월 25일 ‘행동하는 줏대 있는 외교관’이자 존경받는 보수주의자로 일생을 살았던 박근(朴槿) 전 유엔 한국대사가 향년 93세로 타계했습니다. 그가 통상의 은퇴 공직자들과 달리 오랫동안 세인의 관심 속에 널리 존경을 받았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박근 대사는 192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서 학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외무부에서 문화과장, 미주과장, 주미참사관, 주영(駐英) 공사, 주미(駐美) 공사 등을 거쳤으며, 스위스, 태국, 벨기에, EC, 제네바 등에서 대사로 근무했으며, 1988년 주 유엔 대사를 끝으로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박근 대사는 일생 내내 공산주의 사상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는데, 2002년에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위적 핵무장을 결단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여 핵무장을 주장한 최초의 전직 정부 고위관리가 되었으며, 2005년 맥아더 동상이 있는 인천 자유공원 현장에서 동상을 부수려는 좌익들에 맞섰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정부 공직자들과 후배 외교관들에게는 그가 세계현장에서 순간마다 펼쳐온 애국적인 외교활동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1983년 소련 전투기가 한국의 민항기인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소련 전투기는 비고의적으로 소련 영토에 들어온 007편을 미사일로 격추시켜 269명의 탑승객을 몰살시켰습니다. 박 대사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국제민간항공기구회의(ICAO)에 참석하여 명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소련 전투기가 사슴을 먹이감으로 삼는 맹수처럼 고의적으로 민항기를 격추시켰고, 소련 공산당은 무고한 인명들을 희생시킨 자신들의 폭력을 미화하고 있다”고 일갈하여 듣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1987년 북한에 의한 대한항공 폭파 테러 직후 그의 역할은 더욱 빛났습니다. 그러니까 1987년 11월 29일이었습니다. 대한항공 858편은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이륙하여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김포공항으로 가기 전에 최종 경유지인 태국 돈무앙 공항을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인도양 벵골만 상공을 날던 도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비행기는 추락했고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것이 북한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훼방하기 위해 벌인 대한항공 테러 사건이었습니다. 이 항공기가 아부다비 공항에 내렸을 때 하치야 신이치와 마유미라는 이름의 일본인 부녀로 가장한 남녀가 위조여권 소지를 이유를 공항에서 검거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즉각 한국에 알려 주었고 한국은 중앙정보부 직원들을 급파하여 이들을 붙잡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인 김승일과 김현희였습니다. 이들은 이 비행기에 탔다가 화물칸에 액체폭탄을 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렸고, 거기로부터 다시 제3국으로 도피할 예정이었습니다. 김승일은 청산가리를 입에 물어 자살했고, 김현희는 정보부 직원들의 제지로 자살에 실패하고 서울로 압송됩니다.

이 직후 박 근 대사는 사건을 즉시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며 북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했습니다. 박 대사는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북한과 투쟁하면서 ‘괴물과 싸울 때에는 우리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라는 니체의 말을 명심하고 있다”고 하면서 안보리 회의에 함께 참석한 북한대사를 향해 “망상에서 깨어나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준엄하게 질책했습니다. 북한 대사는 “대한항공기 폭파는 미국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안보리 대표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물론, 이듬해 서울 올림픽을 훼방하려던 북한의 기도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 국가들이 모두 참가하면서 12년만에 IOC 회원국의 대부분인 160개 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것입니다.

진실로, 박 근 대사의 별세는 많은 한국인들을 회상에 잠기게 합니다. 그가 떠난 후에도 외교관으로서, 공산주의와 싸운 애국인사로서, 보수주의 사상가 그리고 애국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로서 살아온 그의 일생은 후세들의 뇌리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