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또 한 분의 6·25 전쟁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이 향년 93세로 별세했습니다. 최 대령의 유해는 7월 10일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6·25 전쟁영웅인 백선엽 육군대장이 별세한지 1주기가 되는 날이어서 국민들은 다시한번 조국을 지켜낸 전쟁영웅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최영섭 대령을 소개하자면 대한해협 해전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해협 해전이란 1950년 6월 25일 밤 9시부터 6월 26일 새벽까지 대한해협에서 한국 해군의 백두산함(PC-701)과 북한의 괴선박 간에 벌어진 전투를 말합니다. 북한은 6월 25일 새벽 일제히 38선을 넘어 총공세를 개시했고, 그날 밤에는 부산에 특공대원들을 투입하여 양동작전을 펼치려 했습니다. 이 기도를 저지한 것이 한국 해군의 백두산함과 두 척의 소형 함정들이었습니다. 백두산함은 6월 25일 오전 11시경에 동해상에서 남진하는 1천톤 급의 괴선박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오후 3시에 승조원 60명을 태우고 진해항을 출항하여 부산 앞바다를 지나 북상하다가 저녁 8시 10분에 영일만 부근에서 남진하는 괴선박을 발견하게 됩니다. 백두산함은 깃발신호를 보내면서 검문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후 백두산함은 두 시간 동안 이 선박을 추적하면서 발광신호를 통해 국기를 게양하고 국적을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괴선박은 응답없이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게다가 괴선박은 갑판 앞쪽에 함포로 보이는 물체를 그리고 중갑판에는 기관총으로 보이는 물체도 싣고 있었습니다. 이에 백두산함은 6월 26일 자정이 지날 무렵 경고사격을 했고, 괴선박이 함포와 기관총으로 응사함에 따라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고 한 시간 후인 새벽 1시 30분경 괴선박은 침몰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백두산함도 조타실과 주포가 피격되어 2명의 전사자와 2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습니다. 부산항은 한국 제2의 도시이며,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의 90%를 점령했을 때에도 유엔군이 병력과 군수 보급품을 상륙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교두보였습니다. 백두산함이 괴선박을 저지하지 못해 600여 명의 북한군 육전대원들이 부산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부산항을 파괴했더라면 6·25 전쟁의 양상이 사뭇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최영섭은 1950년 해군사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임관 4개월만에 6·25를 겪었는데, 백두산함에서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로서 대한해협 해전에서 활약했고, 그해 9월에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는 등 무공훈장을 네 개나 받은 참전용사였습니다. 1968년 대령으로 제대한 후에도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안보강연을 했고 전사자 유족 찾기 운동을 주도했으며, 강연활동으로 번 돈을 바다사랑해군장학재단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바다사랑해군장학재단은 민간인 해군 자문위원들이 주도하여 만든 재단으로 해군 전사자들의 유자녀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2014년에 설립되었습니다.
7월 10일은 백선엽 장군 서거 1주년이기도했습니다. 백 장군은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군 최고의 6·25 전쟁영웅입니다. 백장군은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고, 이후 서울 수복과 평양 수복에도 선봉에 섰으며, 전쟁 전에는 좌익 빨치산을 토벌했던 명장이었습니다. 백장군 서거 1주기를 맞아 7월 9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현지에서는 서욱 국방장관을 위시한 한국군 수뇌부와 주한미군 사령관이 참석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서 지난 7월 2일 취임한 폴 라캐머라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의 추모사와 함께 전직 주한미군사령관 7명이 보내온 추모사가 낭독되었습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은 백 대장을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추앙했고, 토머스 슈워츠 전 사령관은 “제가 군생활 35년 동안 만난 지도자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불렀으며, 틸러리 전 사령관은 “위대한 나라들과 위대한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애국자”로 칭송했습니다.
7월 10일에는 대전 국립현충원에서는 백선엽 장군 1주기 추모식과 최영섭 대령의 안장식이 함께 거행되었습니다. 백 장군 묘역에서는 국가원로회의,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등이 잇달아 추모행사를 열었고, 오후 네 시에는 고교연합 모임이 주최한 백 장군 명예원수 추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수백 미터 옆에서는 해군 군악대의 조가 연주와 조총이 발사되는 가운데 최영섭 대령을 보내는 안장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최영섭 대령의 가족은 대표적인 군인 명문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동생 두 명은 해병대 대령과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아들 넷 모두 육·해·공군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손자 1명은 해병대 장교로 그리고 다른 두 명도 병장으로 제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최영섭 대령을 보내고 백선엽 장군을 추모한 것은 그분 가족들만의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7월 10일은 온 국민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호국영령들에게 감사하고 그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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