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수교 75주년을 맞이하여 축하 서한을 주고받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운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며 “지난 75년간 교역, 인적 교류, 개발협력 등 전방위적 협력을 해온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23년 9월 9일에 서명한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발효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도 서한에서 “FTA 파트너십까지 약속한 마당이므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화답하면서, “이를 계기로 디지털, 과학기술, 해양, 기후변화, 에너지 분야에서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우선, 두 나라는 맥아더 장군이 구해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1944년 10월 20일 필리핀에 상륙하여 점령군인 일본군을 몰아냄으로써 필리핀 국민의 해방자이자 영웅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시에도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반전시키고 한국을 공산화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한국과 필리핀의 수교는 1949년에 이루어졌는데, 필리핀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 그리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로는 첫 번째로 한국과 수교한 나라입니다. 다음해에 6·25가 터지고 안보리가 결의 83호와 84호를 채택하여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자 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9월 19일 지상군 7,420명을 파병했는데, 이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최대 규모의 전투병력 파병이었습니다. 전쟁 동안 필리핀군은 1950년 11월 개성-평양 간 주보급로 경계작전, 1951년 4월 연천 군자산 전투와 율동 전투, 1952년 5월 연천 아스널 및 에리고지 전투, 1953년 7월 강원도 양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을 치렀으며 전사 112명, 부상 229명, 실종 및 포로 57명 등의 인명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처럼 한국과 필리핀은 함께 공산군과 싸운 우방국이며, 8월 9일을 ‘한국참전용사 기념일’로 지정하여 6·25 참전 필리핀군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를 반영하듯 양국 대통령들이 축하 서한을 주고받던 3월 3일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 상공에서는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스 T-50 8대와 필리핀 공군의 FA-50 4대가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는 우정의 비행을 선보였습니다. 필리핀 공군이 사용하는 FA-50PH는 2014년부터 한국으로부터 12대를 수입한 한국산 전투기인데, 결국 한국산 비행기 12대가 필리핀 에어쇼의 개막식을 장식한 것입니다. FA-50은 한국이 만든 최초의 다목적 경전투기로써 한국 공군에는 2013년부터 배치되었습니다. FA-50은 전투반경이 짧은 것이 단점이지만 20mm 기관포, Sidewinder(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AGM-65 Maverick 공대지 미사일 등 무장능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출용 FA-50 블록 20은 AIM-120 암람 공대공미사일, AESA 레이더, JDAM 정밀유도폭탄 등을 갖추고 있어 F-16의 성능에 비견되면서도 수출 가격은 대당 400억원(약 3050만 달러) 정도로 훨씬 더 싸기 때문에 가성비 측면에서 호평을 받습니다. 현재 필리핀,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이 운용하고 있는데 폴란드는 한꺼번에 무려 48대를 수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필리핀 공군은 FA-50을 마라위 전투(Battle of Marawi) 등 반군 토벌전에 투입하여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필리핀 간의 교류도 매우 활발합니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필리핀을 방문하며, 2023년 한국의 총수출 6,300억 달러 중 약 1/5이 아세안으로 수출되었는데, 이중 10%가 필리핀 수출이었습니다. 양국 간 연간 교역액은 2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으며, 금년 중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경제교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여기에 비해 북한과 필리핀의 관계는 매우 소원한 상태입니다. 북한과 필리핀은 1990년에 수교 협상을 시작하여 2000년 7월에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상주공관을 개설하지 못한 상황이며 연간 교역액은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여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를 결의하자 2017년 필리핀은 이 교역마저 중단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남북이 해외에서 경쟁하기보다 협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