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남북한 삐라전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0-06-22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16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지상전선과 서남해상의 많은 구역을 개방하고 철저한 안전 조치를 강구해, 예견돼 있는 각계각층 우리 인민들의 대규모적인 대적 삐라 살포 투쟁을 적극 협조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한의 통일부가 대남전단 살포 행위를 판문점 선언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19일 “북남합의에 위반되는 삐라 살포 망동을 그대로 묵인하고 방치해둔 당사자들이 무슨 낯짝에 위반 타령을 늘어놓는가하면서 삐라폭탄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삐라는 적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적어 사람들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항일투쟁시기나 전쟁시기 일본이나 미국을 반대해서 삐라를 뿌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연지대 가까운 남쪽으로 가면 남한에서 보내는 삐라가 많이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남한으로 삐라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민은 많지 않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북 삐라전에서 북한이 우세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남한은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가 복구되지 못해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매우 어려웠고 상층부의 부패도 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삐라를 보고 혹해서 월북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남한에서는 삐라 단속을 간첩 단속과 동일하게 엄하게 했고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에게 발견 즉시 신고하도록 교육했습니다. 삐라를 주워서 바치면 공책이나 자, 연필 같은 학용품도 주었습니다.

북한도 삐라에 대한 단속을 엄하게 했습니다. 남한에서 보내는 삐라를 보면 줍지 말고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주워서 보는 순간 삐라를 읽게 되기 때문에 삐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북한이 유일사상체제수립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던 1970년대에는 김일성종합대학학생들이 황해도에 농촌동원 나갔다가 삐라를 주워 친구들과 같이 돌려보았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간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삐라살포는 점차 뜸해졌고 특히 2000년 4월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2007년에는 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을 폐지하면서 학용품 포상조차 없어졌습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남한도 정보의 왜곡이 많아 북에서 날려 보내는 삐라(대남전단)를 보고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다릅니다. 사실 이제는 남북이 상호비방을 시작하면 북한이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북한은 삐라에 쓸 내용이 없습니다. 삐라란 상대방이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어 주민들이 정부를 반대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남한은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곳이라서 알려줄 새 소식이 없습니다. 또한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해서 남한주민들이 북한을 좋게 보도록 해야 하는데 남한이 하도 발전해서 무엇을 선전해도 북한이 낫다는 인식을 줄 수 없습니다. 특히 북한 지도자에 대한 선전은 민주주의가 옳다고 믿고 있는 남한주민들에게 독재체제가 좋다고 선전하는 것이되어 오히려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서 남한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남한에 대규모 삐라살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남한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삐라를 보고 감동한 것이 아니라 안쓰러워했습니다. 30~40년이 지나 오래간만에 보는 삐라인데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어 북한의 침체상황이 삐라에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삐라가 조잡스럽고 들어 있는 비방 내용도 유치하고 너무 직설적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북한이 삐라살포에 대한 선전을 너무 해서 남한 주민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삐라살포를 한다고 하도 뉴스가 많이 나오다보니 인터넷에 수천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 글들을 보면 삐라살포가 대남전이 아닌 희극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신문도 외면당하는 남한에 부질없이 삐라를 보내기보다는 그 종이로 학생들에게 교과서와 학습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북한체제유지를 위해서 더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