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북 여학생 학창시절 체험기 ‘은경이 일기’
2024.09.30
올해 한국의 북한연구소에서는 도서 ‘은경이 일기’를 출판했습니다. ‘은경이 일기’는 남한에 온 여학생이 북한에서의 학창시절을 체험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주인공인 은경이는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국경지역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직장에 출근했지만 월급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해서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오늘날 북한 도시의 대다수 가정이 은경이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기는 북한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은경이의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담았습니다.
은경이의 일기에서 가장 많은 언급한 것은 학교에 바쳐야 하는 각종 물자와 돈 그리고 갖가지 명목의 동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은경이는 새해 퇴비부터 시작하여 토끼가죽, 고사리, 화목, 학교 꾸리기자금 등 각종 명목으로 물자와 돈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봄철 나무심기, 농촌동원, 인민군대 환송, 배경대 연습, 충성의 노래모임 등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일기에는 농촌동원 기간 동안 있는 집 아이들은 돈이나 물자를 내고 빠지고 힘없는 집 아이들만 동원되는 불공평한 상황,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가며 힘들게 농촌에서 일하는 과정, 학교에서 내라는 물자를 내지 못해 학교와 부모사이에서 학생들이 겪는 고민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편, 북한에서 힘든 학교시절을 웃음과 의리로 씩씩하게 견디어 낸 이야기도 담겨있어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감명도 줍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10대는 많은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신체적, 정서적, 지적 발달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자아정체성이 형성됩니다. 이 시기 학생들은 과학, 수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을 축적하고 전반적인 학습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고등학교 시기에는 자신이 선택한 과목에 대해 심화된 지식을 습득하고,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남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고 학습량이 많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특히 고등학교 시기의 학습강도가 제일 높습니다. 11월이면 전국적으로 학업수준을 평가하는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고 그 성적에 따라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입학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남한 학생들은 고등학생시기에 거의 대부분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냅니다. 남한에서는 학생들이 어른이 된 다음 되돌아보면, 고등학교 시기는 공부하던 추억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은경이의 학창시절 일기에는 공부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컴퓨터도 변변치 않아 재미없었던 컴퓨터 수업시간에 대한 단편적 기억과, 시험 때 커닝한 추억이 전부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빠르게 진화하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로봇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의료계, 법조계 등 다양한 전문 영역에 이미 도입되어 활약 중입니다.
북한에서도 현시대를 ‘과학과 기술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과학혁명, 교육혁명을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의 교육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학업에 관심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무적으로 10년 동안 군복무를 마치면 황금 같은 청춘시절은 다 지나가고 머리가 텅 빈 상태로 30대에 들어서게 됩니다. 북한 인력의 질적 수준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서 10월은 2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은경이 일기’에 의하면 북쪽지역에서는 감자 수확철이어서 학기 시작이지만 학생들은 감자를 캐러 1개월 동안 농촌동원 나갔을 것입니다. 지식도 기술도 없이 어른이 되는 북한 청소년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