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토사구팽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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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가안전보위상이었던 김원홍이 결국 출당 철직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성은 간부들과 주민들의 사상동향을 감시하고 처벌하며 간첩을 잡아내는 등 방첩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도 방첩기관이 있고 조직의 특성상 일정한 특권이 보장되지만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국가안전보위성의 권력은 무제한합니다. 수령을 보위한다는 미명하에 모든 사람들의 일거일동을 감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구금, 조사, 재판 등의 과정을 비공개로, 보위성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아우슈비츠로 전 세계가 비난하는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국가안전보위성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기관입니다. 지어 북한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당 간부도 보위성과 척지는 것을 피합니다. 죄 없이도 얼마든지 정치범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안전보위성의 수장인 김원홍의 위세는 요란했습니다. 그는 김정은 등장 이후 장성택을 비롯하여 군과 당의 많은 간부들을 숙청하는 데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에 따라 그의 권세도 높아져 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도 지도자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에 도취되어 무분별한 숙청을 진행한 후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간부들과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그를 제거하려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늘 하던 수법대로 국가안전보위성에 대한 집중검열에 들어갔고 결과 그는 총정치국 국장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총정치국에 대한 집중검열이 진행되었고 결국 출당 철직 되었습니다. 높은 간부가 출당 철직 되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길을 걸은 보위성 간부는 김원홍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간부 숙청은 일상사이지만 보위성 간부들의 끝이 더 좋지 않습니다. 초대 국가안전 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도 숙청되었고 1부부장이었던 김영룡도 숙청이 눈앞에 닥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때 인민무력부 보위사령관으로 김정일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군인들과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간첩으로 몰아 처형한 원응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위사령관 직에서 해임되었고 그 후과로 중병을 얻어 급사했습니다.

북한뿐이 아닙니다. 소련에서 스탈린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숙청에 앞장섰던 내무인민위원부 위원장 예조프의 운명도 비참했습니다. 그는 스탈린에게 아첨하여 내무위원장이 되었고 동지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고문 처형하고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어 사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1935년~1938년 사이에 대규모 숙청을 지휘했는데 그 때 희생당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70만여 명, 비공식적으로는 1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이 강화되는데 불안을 느낀 스탈린은 그를 배제하기 시작했고 결국 1939년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내무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된 베리아 역시 스탈린에게 충성을 보인 대가로 출세하였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점차 스탈린의 신임을 잃었고 간부들의 원망을 샀습니다. 결국 그도 스탈린 사망 이후 체포되어 실각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국가안전보위성은 주민과 국가를 보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독재국가에서 정보기관은 지도부의 권력유지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면서 온갖 어지러운 일을 다 맡아 하는 하수인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생각에 권력이 너무 강화되고 있다고 느껴지면 그 동안 주민들에게 가해진 정치적 탄압은 지도자의 뜻이 아니라 개별적 간부의 결함이었다는 누명을 쓰고 지도자를 위해 희생되어야 합니다. 토끼를 잡으면 쓸모 없는 사냥개는 삶아 먹는 법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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