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역사를 바로잡을 기회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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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북한은 정전 65돌을 기념하여 제5차 전국노병대회를 개최하고 조국해방전쟁참전 열사묘와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릉원에 화환도 증정했습니다. 북한은 7월 27일을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켜낸 제2의 해방의 날로, 새로운 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아낸 긍지 높은 수호자들의 명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7월 27일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기념해야 옳습니다. 6월 25일 북한의 남한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고 남한은 그 침공으로부터 주권을 사수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먼저 남한을 공격하고도 1950년 6월 27일 방송연설을 통해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전체 인민이 조국을 사수하기 위한 전쟁에 참가하라고 호소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전쟁초기에는 불의의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고 전 전선에서 승전을 거듭하면서 남쪽 끝까지 밀고 나갔지만 미국의 참전으로 압록강까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국군이 참전했고 북한은 가까스로 재 진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내전이 아닌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지도부는 전쟁에 대한 지휘권을 상실했습니다. 공동사령관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팽덕회가 전선을 지휘했습니다. 그때부터 김일성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에서 당 사업을 지도하면서 전쟁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를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남한공산당 비서였던 박헌영과 이승엽 등 남한출신 간부들을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몰았고 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들씌워 처형하는 것으로 책임을 모면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으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남과 북 합쳐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전쟁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격화시켰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전쟁시기 사람들은 운명의 장난에 따라 북한군 또는 남한군의 편에서 싸웠습니다. 주민들은 전쟁 통에 가족 친척이 국군이나 미군에 의해 사망하면 북한편이 되고 북한군이나 중국군에 의해 잘못되면 남한편이 되었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살육하고 살육 당하면서 사람들은 서로 원수로 갈라졌고 이 상처가 지금까지도 깊은 곳에 남아 있어 아직도 우리는 분단국가의 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철저한 비밀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물론 남한의 적지 않은 주민들도 미국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옛 문서들이 공개되고서야 북한에 의해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문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승인해달라고 스탈린에게 무려 47차례나 간청했습니다. 김일성은 중국 모택동의 동의를 먼저 얻고 그의 지원으로 스탈린에게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지도부는 현재까지도 자기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까지 밀려갔던 위급한 전선상황을 변화시키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전국노병대회에서도 김일성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전략전술, 탁월한 영군술에 의하여 조국해방전쟁이 승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늘의 세계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북한지도부의 역사위조가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북한은 지금 폐쇄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지난날 주민들에게 한 거짓말이 마음에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방도는 있습니다. 솔직하게 과거를 인정하고 사죄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한 가장 적합한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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