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은 자신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세습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의 경우도 그렇고,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했던 루마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로므니아라 불리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는 북한 전 국가 주석 김일성과의 가까운 관계를 맺으려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식 개인숭배에 반한 나머지 루마니아에도 그러한 개인숭배를 조장하려 했습니다. 차우체스쿠는 김일성 전 주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권력을 넘기려던 것처럼1980년대초반부터 큰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72년 10월 조선로동당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고 부친 김일성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38살때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부친의 공식정인 후계자로 확정되었습니다. 1951년에 태어난 루마니아 독재자의 아들 '니쿠 차우체스쿠'도 1982년 31살때 루마니아 공상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부친의 후계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아내 엘레나는 2남1녀의 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 중 정치 무대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사람은 큰 아들 '니쿠'였습니다. 큰 아들 '니쿠'는 일찍부터 공산당 청소년회장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술고래인데다 특히 성폭행과 관련된 소문이 항상 따라다녔고 도박을 좋아했기 때문에, 경마를 포함한 외국 카지노에서 국가재산까지 잃었지만 루마니아 사람들 중에는 젊고 학력이 있고 바깥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던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경우 아버지 때보단 생활수준이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진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는 80년대 후반 반공산주의 혁명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아버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쏴 죽이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민간인들과 루마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니쿠'는 재판장에서 자신이 민간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건강이 안 좋아 감옥에 가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는 1996년 9월 26일 45살에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1989년 12월 유혈 혁명으로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그의 아내가 사형을 당하고,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독재자의 큰 아들 '니쿠'에 관한 것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는 정치 탄압과 공산주의 비밀경찰에 의해 투명성은 없었고, 국민들은 독재자와 그의 가족의 사생활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과 가족의 생활양식, 사생활에 대해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의 왕자 찰스, 찰스 왕자의 두 아들,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로라 여사 그리고 두 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20년 후라도 독재자 큰아들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루마니아 언론에서 옛날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큰 아들 '니쿠'에 대한 많은 기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니쿠'를 아버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인물로 위험인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생 동안 의미가 있는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술만 먹고, 여러 사회 신분의 수명의 여성들과 어울리는 악명 높은 술고래와 바람둥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최근 옛날 '니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에 신문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옛날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자녀였고, '니쿠'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혼란스러운 생활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는 낭만적인 남자이며 여성 앞에서는 부끄럼 때문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야 여자들과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가 루마니아 사람들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니쿠'는 자신의 부모의 독재 체제에 의해 루마니아 사람들이 인권 유린과 식량 위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쿠'도 부모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니쿠'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자식에게 너무 강했고 큰아들을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정치인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공산당 간부의 딸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쿠'의 친구들은 어머니의 지독하고 엄격한 태도에 반항하려고 그의 사생활은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차우체스쿠의 큰 아들인 '니쿠'가 아버지와 같은 잔인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원래 좋은 사람인데, 부모의 욕망과 엄격한 감시와 지독한 교육 때문에 너무나 불행해서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사람이었을까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부모가 그렇게 지독했어도 큰 아들로서 독재자와 아내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노력만 했더라면 부모에게 루마니아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로 왜 나가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이해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설립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혈적 혁명과 국민들의 희생 없이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체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니쿠'의 역사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 기회를 놓쳐 루마니아 역사에 있어서 아무 유산도, 의미도 없는 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독재자의 아들 '니쿠 차우체스쿠'가 구속됐으면 몇년동안 술을 못먹어서 간암에 안죽었을지도 모르고,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공산당 간부였던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에서 현재 기업가나 정치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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