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부터 1989년까지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는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바로 저의 모국인 루마니아였습니다. 1965년부터 1989년까지 루마니아를 강권으로 지도하며 국민을 굶기고 인권을 심하게 탄압했던 당시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아내인 엘레나는 군사재판에 의해 사형을 당한지 20년후인 지금 또다시 화제거리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25일 총살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아내인 엘레나의 유해가 지난 7월 21일 신원 확인을 위해 발굴되었습니다. 이어서 앞으로 6개월동안 유전자 감식을 통해 전문가들은 차우셰스쿠 부부의 유해인지 확인할 예정입니다. 차우셰스쿠 부부의 막내 아들 발렌틴 차우셰스쿠와 딸 조야가 2008년 부모 유해 발굴 요청을 루마니아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차우셰스쿠와 엘레나의 무덤에 묻혀 있는 유해가 다른 사람의 유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차우셰스쿠 부부가 사형을 당하고 묻힐 때 과거의 탄압으로 복수심에 불탄 국민이 무덤을 파고 유해를 꺼낼 것을 우려해 무덤위에 있는 십자가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썼던 것입니다. 차우셰스쿠 부부가 사망한후 큰아들인 니쿠가 1996년 간암으로 사망했고, 딸인 조야도 2006년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차우셰스쿠 부부의 유해 발굴을 목격한 가족은 막내 아들과 사위뿐이었습니다. 2006년에 사망한 차우셰스쿠 부부의 딸 조야의 남편이던 미르체아 오프란에 따르면 그 유해가 차우셰스쿠 부부의 유해라는 것을 유전자 검사 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해 발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중에서도 그 유해가 확실히 차우셰스쿠 부부의 유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아내보다 차우셰스쿠의 유해가 땅이 더 건조하여 지난 20년동안 더잘 보존되었고 총알을 맞은 흔적으로 구멍이 많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차우셰스쿠와 엘레나의 유해가 발굴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사악한 공산주의의 유산을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직후 소련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루마니아를 짓밟은 뒤 공산주의 국가로 변화시켰습니다.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루마니아의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 역사를 잔인하게 짓밟아 없앴습니다. 그들은 루마니아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교도소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소위 엘리트 계층, 즉 지식인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1965년 차우셰스쿠가 주도권을 잡은 뒤 루마니아의 공산당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차우체스쿠의 당시 나이는 47세였습니다. 1967년 그는 대통령이란 직책을 만들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집권 초기에 그는 중국 공산당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으며, 또 루마니아를 어느 정도 외부세계에 개방하면서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 차우셰스쿠가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의 개인 숭배, 평양의 건축, 웅장한 도로를 접하며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쉬티를 평양과 같이 대중들이 모여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동시에 루마니아의 중공업을 대규모로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이 두가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연히 루마니아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1970년대와 80 년대에 루마니아의 정부는 외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많이 빌려 중공업에 투자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수도 부쿠레쉬티에 커다란 건물을 짓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람에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외자가 필요했습니다. 외채를 갚기 위해 루마니아는 농산물과 식료품을 해외에 수출해야 했고, 외국산 소비제 수입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일반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빵, 우유, 식용유나 계란과 같은 기본 식료품을 사려고 일주일에 몇번씩 새벽부터 가게앞에서 줄을 서야했습니다. 정부가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정전이 잦아지자 사람들은 석유를 사용하는 조명기구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석유 조명기구를 책상에 올려 놓고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력난 때문에 루마니아의 하나밖에 없는 텔레비전 방송국도 저녁마다 2시간밖에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 등의 다른 동구권 나라들의 공산 체제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공산독재 체제의 희생자로 남아있던 루마니아 국민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1989년 12월 21일에 루마니아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군사 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유혈 혁명을 통해 루마니아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은 루마니아 정치, 경제, 사회의 발전의 첫걸음일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된 후 루마니아의 시련과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앞으로 북한 세습 독재 체제에 어떤 의미를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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